17살 소년의 몸에 60살의 남자가 갇히다

조회수 2017. 10. 21. 1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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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아날로그 감성 노래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는 여전히 복고를 이야기하고, 그 열풍은 지금도, 앞으로도 쉬이 사그러질 것 같지 않다. 패션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음악에서도. 아이유가 리메이크 앨범을 LP로 발매하고, 사람들은 턴테이블을 구입해 불편을 감수하고 음악을 듣는다.

EDM이 전 세계적으로 대중음악의 중심에 서고 미국, 영국 할 것 없이 차트 상위권에 DJ들 이름이 올라갈 때, 다른 한 편에서는 '세련된'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충만하고 뜨겁게 만드는 젊은 뮤지션들이 있다.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로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움으로 다가와 막연한 불안감과 우울, 삭막함을 따뜻한 소리로 위로해주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 전 세대가 교감할 수 있는 노래들을 소개한다. 일부러 아티스트들의 초기 곡들 위주로 선곡했다.

제이크 버그(Jake Bugg) - Broken

2011년 제이크 버그가 나타났을 때 영국의 대중음악계는 신선한 충격에 휩싸였다. 17살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독특하고 올드한 목소리로 부르는, 60년대를 연상시키는 인디 포크 록 사운드는 농익었으며 새로웠다. 영국 매체는 앞다투어 그를 '이스트 미들랜드의 밥 딜런', '브릿팝의 떠오르는 신예', '포크 천재'로 불렀으며, 독설가 노엘 갤러거는 그의 밴드 하이 플라잉 버즈의 투어에 오프닝 가수로 제이크 버그를 세웠다.


대중은 그의 음악을 '17살의 몸에 60살의 남자가 갇혀있다'고 표현했다. 12살에 애니메이션 <심슨>에 나온 돈 맥클린의 'Vincent'를 듣고 처음으로 음악을 하고 싶어했고, 도노반, 비틀즈, 지미 헨드릭스, 조니 캐쉬, 오아시스의 음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그에게는 당연한 평가였다.


네 장의 정규 앨범 중 아날로그 색채를 가장 잘 담아낸 명반은 2012년 발매하자마자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데뷔 앨범 <Jake Bugg>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Two Fingers'와 요즘 같은 쓸쓸한 날씨에 어울리는 'Broken'은 남녀노소 모두를 감동에 빠지게 할 명곡. 2014년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두 번째로 큰 무대에서 헤드라이너로 공연할 때 운 좋게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 주변의 관객들은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세대를 뛰어넘어 함께 즐기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허츠(Hurts) - Stay

맨체스터 출신의 신스팝 듀오 허츠는 80년대 신스팝/뉴웨이브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어준 밴드다. 아담(신디사이저, 기타)과 티오(보컬)의 첫 만남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2005년 맨체스터의 한 나이트클럽 밖에서 친구들이 난투극에 휘말리면서부터다. 너무 취했던 둘은 같이 싸우는 대신 밤새 음악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큐어, 킬링 조크, 프린스 등이 그들이었다.


가난했던 이들의 음악 여정은 험난했다. 하지만 두 차례의 밴드 해체 후 허츠라는 이름으로 2009년에 발표한 "Wonderful Life'라는 곡으로 성공의 길로 들어선다. 20파운드를 주고 댄서 한 명을 고용해 만든 싸구려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간 것. 허츠가 이야기하는 그들의 음악 '절망 속에서 만들어낸 희망의 감정적인 일렉트로니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레코드 계약을 맺은 후 이들은 전문가들과 함께 이 곡의 뮤비를 다시 만들 기회를 얻게 된다.)


슬픔과 즐거움 그 중간쯤 어디인 현실을 치명적인 매력으로 담아내 유럽 12개국에서 10위 안에 오른 1집 <Happiness>에 수록되어,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코러스로 간절함을 노래하는 'Stay'도 추천한다. 허츠는 티오의 섹시한 무대 매너로도 유명한데, 이들의 공연은 유투, 콜드플레이, 비욘세를 제치고 2011년 NME가 선정한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 최고의 무대로 꼽히기도 했다. 2013년 안산밸리록페스티벌에 참여했던 팬들이라면 내한공연을 펼쳤던 허츠와 함께했던 멋진 밤을 기억할 것이다.


멈포드 앤 선즈(Mumford & Sons) - I Will Wait

배우 캐리 멀리건의 남편인 마커스 멈포드(보컬, 기타, 드럼)가 이끄는 밴드로도 유명한 멈포드 앤 선즈는 2007년 런던에서 결성된 포크 록 밴드다. 컨트리, 포크, 블루그래스 등 복고적인 음악 자양분을 가득 흡수한 멈포드 앤 선즈는 일반적인 록 밴드의 전형과는 다른 악기 구성과 음악 스타일을 선사한다.


멤버 전원이 다양한 악기 연주에 능통하고 밴조, 만돌린, 아코디언 등 전통적인 포크 사운드를 위한 악기들을 곡에 담아내는 이들의 음악은 그래서 더욱 자유롭고 흥겹게 들린다. 이들의 블루그래스 색채 가득한 음악은 영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안겨주었는데, 빌보드 차트를 휩쓰는 것은 물론 1집은 미국에서만 320만장, 2집은 37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선이 굵으면서도 신나는 포크 감성으로 전세계를 사로잡은 멈포드 앤 선즈. 특히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 'I Will Wait'가 수록된 2집 <Babel>로 영국과 미국에서 앨범 차트 1위, 2013년 그래미 시상식의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2013년 헤드라이너로 공연하게 된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는 제이크 버그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함께 열광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조지 에즈라(George Ezra) - Budapest

영국의 포크 록, 블루스를 들려주는 싱어송라이터 조지 에즈라. 그는 밥 딜런과 우디 거스리, 리드 벨리 등 미국의 포크, 컨트리 블루스 뮤지션들의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아 당시의 진한 감성의 음악을 들려준다.


1993년생인 그는 18살에 쓴 곡 'Did You Hear the Rain?'으로 20살인 2013년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의 신인들을 위한 무대 'BBC Introducing'(제이크 버그, 호지어, 플로렌스 앤 더 머신, 팅팅스 등 많은 뮤지션들이 이 무대 출신이다)을 통해 데뷔했는데, 블루지한 기타 연주에 맞춰 저음으로 깊게 울리는 소울 가득한 목소리는 전혀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든다.


그의 가장 큰 자산인 올드 소울 목소리는 제프 버클리, 조니 캐쉬, 매튜 코비 등 다양한 포크, 컨트리 뮤지션들을 연상시키며, 나이를 초월한 감동이라는 음악적 깊이를 더해준다. 데뷔 앨범 <Wanted on Voyage>의 타이틀곡 'Budapest'는 이러한 그의 음악적 색깔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곡으로, 영국과 유럽 전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배우 이안 맥켈런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장난기 가득한 재미를 선사하는 'Listen To The Man'도 들어보길.

루미니어스(The Lumineers) - Ho Hey

루미니어스는 60년대 미국의 인디 포크 록을 들려주는 밴드로, 소박하고 편안하게 들리는 음악과는 다르게 드라마틱한 음악 여정을 가지고 있다. 2002년 제레마이어 프라이츠(드럼, 퍼커션)의 형제이자 웨슬리 슐츠(보컬, 기타)의 친한 친구였던 조쉬의 죽음을 계기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떠돌며 곡을 만들고 작은 공연을 하던 중 2010년 네일라 페카렉(첼로/보컬)이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떠돌며 음악을 계속하던 그들이 정착하게 된 건 경쾌한 멜로디의 'Ho Hey'가 2012년 드라마 '하트 오브 딕시'에 삽입되어 중독성 있는 후렴구로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으면서부터다. 이 곡의 성공을 시작으로 데뷔앨범 <The Lumineers>는 빌보드 차트 2위, 170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기록한 것은 물론 2013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신인', '최고의 아메리카나 앨범'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루미니어스 음악의 매력은 경쾌하고 쉽게 들리지만('Ophelia') 절대 가볍지 않은,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슬프고 섬세한 감수성을 기본으로('Slow It Down') 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오랜 공연 경험으로 다져진 탄탄한 연주, 사람들과의 공감은 머리에 꽃을 달고 떠돌며 노래하던 60년대의 소박하고 자유로운 영혼, 히피가 떠오른다. 지극히 미국적인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밴드지만 이들에게 받는 편안함과 감동과 위로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테임 임팔라(Tame Impala) - Elephant

2007년 호주 퍼스에서 결성된 록 밴드 테임 임팔라는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의 사이키델릭 록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네오 사이키델릭을 들려준다. 다섯 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케빈 파커 혼자서 곡 쓰고 연주하고 녹음하고 프로듀싱하면서 시작된 밴드인 만큼 케빈 파커의 프로젝트 밴드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이 다재다능한 재능을 타고 난 케빈 파커는 핑크 플로이드, 비틀즈, 라디오헤드 등과 비교될 만큼 60년대의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팝의 대중성까지 가미하여 완벽하고 중독성 강한 새로운 음악을 완성해낸다. 신디사이저와 드럼, 베이스 라인을 통한 입체적인 사운드 전개 위에 겹겹이 쌓이는 멜로디 라인, 그 위에 가볍게 어우러지는 보컬이 몽환적인 공간감을 자아내며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특징이다.


지금까지 발표한 세 장의 앨범 모두 음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사로잡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대표적인 히트곡 'Elephant'가 수록된 2집 <Lonerism>은 빌보드 200 차트에서 24위로 데뷔했으며, 2015년 발매된 3집 <Currents>는 2015년 호주판 그래미라고 할 수 있는 아리아 음악 시상식에서 '최고의 록 앨범'과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는 등 아날로그에 팝의 새로움을 더한 음악으로 탄탄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클릭 한 번, 터치 한 번이면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누군가는 LP로 음악을 듣기도 한다. 떨리는 손으로 턴테이블에 바늘을 올리고 한 면이 끝날 때까지 오롯이 음악을 감상하는 그 소중한 시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휴식과 편안함 혹은 작은 위로 때문이 아닐까.


아래 플레이리스트는 마치 그렇게 음악을 듣는 것 같은 낡지만 편안한 소리의 소중함과 새로운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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