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이자 살인자, 대중음악 역사의 광인이 사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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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사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프로듀서, Phil Spector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현지시각으로 2021년 1월 16일 옥중 사망했습니다. 제목에서 그를 광인으로 수식한 이유는, 그가 음악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천재 프로듀서이자,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살인범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Phil Spector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아래의 곡을 먼저 들어보세요. 그리 오래지 않은 시일 안에 CF 삽입곡으로 나온 적이 있어 듣자마자 "아 이 노래!"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곡은 원래 The Ronettes라는 과거의 걸그룹이 1963년 발표한 곡으로, Phil Spector가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곡입니다. 영화 팬들에게는 "더티 댄싱"의 OST로도 익숙할 겁니다. 이후 바버렛츠가 리메이크를 한 것이 CF에 쓰인 버전이죠.
만약 The Ronettes의 원곡버전을 듣고 소리가 뭔가 다른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청각이 꽤나 발달했거나, 음악을 집중해서 들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잘 들어보면 목욕탕에서 녹음한 것마냥 소리가 울리는 느낌을 받으셨을 텐데요. 이것이 Phil Spector 녹음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에코를 추가하기도 했지만, 일단은 각 악기를 한 대씩이 아닌 두 세대씩 녹음해 소리의 레이어를 쌓아 올리는 녹음 기법이 선행되었음을 알아두시면 더욱 이해가 쉽습니다. 피아노 음을 녹음한다면 하나는 일렉트릭 피아노, 다른 하나는 일반 피아노, 다른 하나는 하프시코드, 이런 식으로 큰 카테고리 안에서 서로 질감이 다른 소리들을 같은 연주로 동시에 쌓아 올린 것이죠.
이를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라고 부릅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독창적인 녹음 기법이었는데요. Phil Spector는 바로 이 녹음 개념을 정립하며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로 떠오른 인물입니다. 때문에 그가 만든 곡들을 들어보면 당대의 다른 녹음들과는 다른, 상당히 풍성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지요.
이후 등장하는 또 하나의 전설적인 밴드, The Beach Boys가 앨범을 녹음할 때 차용한 방식이 바로 "월 오브 사운드"였습니다. 대중음악계의 절대적인 명반으로 통하는 [Pet Sounds]를 듣고 붕 뜬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면 바로 이런 녹음방식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Bruce Springsteen의 대표적인 명반 [Born To Run] 역시 같은 녹음방식으로 녹음된 앨범입니다. Phil Spector가 직접 손을 댄 앨범들은 아니지만, 영향력은 이후에도 계속된 것이죠.
전성기가 지난 이후에도 그는 The Beatles의 [Let It Be] 앨범과 George Harrison의 솔로 앨범 [All Things Must Pass]를 프로듀싱하는 등, 음악계에서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했습니다. 비록 이후에는 술과 약물에 중독되어 이렇다 할 커리어를 보이지는 못했지만요.
그렇게 대중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프로듀서로 남는가 싶었지만, 한참 후 사건이 터졌습니다. 2003년 라나 클락슨이라는 여배우를 살해했다는 혐의가 2009년 법정에서 확정된 것이죠. Phil은 그가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차량 운전사가 증언한 것으로 인해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사건 직후 차량으로 돌아와, 운전사에게 "내가 사람을 죽인 거 같아"라는 말을 남긴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하네요. 결과는 19년형이었습니다.
그는 복역 중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교정당국에서는 자연사로 발표했지만, 외신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보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입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역시 추모의 분위기는 아닙니다. 살인죄도 그렇지만, 그동안 그가 작업마다 보여준 광기, 이를테면 자신과 작업 중인 뮤지션에게 총을 겨눈다든지, 술과 약에 취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총을 겨눈다든지 하는 막장스런 행동들이 그동안 모두 까발려졌기 때문이었죠. 그는 좋은 의미에서도, 나쁜 의미에서도 모두 광인(狂人)이었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그리고 그의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이 감동과 위안을 얻었지만 아무도 그를 추모하는 이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화려한 이력을 갖춘 음악가가 초라하게 지는 것을 보며, 전설적인 입지를 다졌던 인물이 이렇게 떠나는 것을 보며 또 한 번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의 사망은 2021년 새해 벽두부터 대중음악계에 전해진 씁쓸한 소식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