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해보면, K-Pop 뮤직비디오는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반짝이를 한가득 붙인 탱크가 쇼핑백을 뭉개고 지나가거나, 금속 장식을 찬 팔을 엮어서 용을 만든다거나 하는 이미지들은 전 세계를 통틀어 봐도 쉽사리 만나볼 수 있는 화면이 아니다. 한국 바깥의 외국인들이 K-Pop 뮤직비디오를 보고 충격에 빠지는 건 단순히 카메라 앞에서의 과장된 반응인 것만은 분명 아니다.
물론 K-Pop의 나라에 사는 한국인들은 그런 장면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이상함이 '이상하지만 멋있어'라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큰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수많은 이상함으로 단련된 우리들의 눈으로 보기에도, 뭔가 특이점이 온 듯한 기이한 뮤직비디오가 종종 튀어나온다.
이번 주 믹스테잎은 그런 K-Pop 씬의 '이상함'을 담당하는 뮤직비디오를 되돌아본다. 웃기는 것도 있고, 설명이 안 되는 것도 있고, 심지어 살짝 무서운 것도 있다.
G-DRAGON "크레용 (Crayon)"
BIGBANG의 뮤직비디오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약을 빤 듯한 비주얼을 선보이지만, 그것의 '시발점'이라고 칭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은 다른 무엇보다도 G-DRAGON의 "크레용 (Crayon)"일 것이다. 감독 서현승의 맥시멀리즘적 미학이 터져 나오듯이 쏟아지는 이 작품은 그 전의 BIGBANG 뮤직비디오하고도 차원을 달리한다.
여장한 GD, 만화경이 생각나는 꾸물거리는 거울 방 세트, 텔레토비 동산처럼 생긴 초원에서 뚱뚱한 미식축구 슈트나 오리 튜브를 입고 날뛰는 GD... 어느 하나 말이 되지 않지만 곡 설명처럼 'Crazy한 지용'의 기운으로 가득 찬 뮤직비디오는 6년이 지난 지금 봐도 여전히 신선하다. 이후 BIGBANG의 "BAE BAE"나 "에라 모르겠다" 등의 안드로메다적 비디오는 전부 "크레용"에 빚을 지고 있다.
T.O.P "Doom Dada"
위에 설명한 GD의 "크레용"이 정신 산란하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K-Pop' 뮤직비디오의 영역 안에서 그러했다. T.O.P은 아니다. "Doom Dada"의 비디오는 팝 음악의 비디오를 넘어 실험적이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미지로 가득하다. 어떨 때는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살바도르 달리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제7의 봉인> 등 미술과 영화계의 고전들을 오마주한 "Doom Dada"는 일반적인 K-Pop 뮤직비디오에서 흔히 느낄 수 없는 감흥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K-Pop 씬에서 이 작품만한 이질감과 기괴한 분위기를 형성해 낸 뮤직비디오는, 아직까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티아라 "DAY BY DAY"
'인간은 신의 옷을 입고 싶었다...'는, 너무 비장해서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DAY BY DAY"의 뮤직비디오는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으로 정리가 가능할 것이다. <매드 맥스>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과 한국식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를 결합한다는 생각은, 대체 어떤 기획진이 떠올린 아이디어였을까?
하지만 2018년의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이 또한 티아라의 다사다난한 역사를 설명해 주는 한 장이 아닐까 싶다. 복고와 디스코의 거부할 수 없는 결합이었던 "Bo Beep Bo Beep"과 "Roly-Poly"에서 인디언(!) 콘셉트를 들고 나온 "yayaya"까지, 티아라는 누구보다도 대중적이었지만 언제나 이상하고 종잡을 수 없는 걸그룹이었고, "DAY BY DAY"는 그 괴상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빅스 "다칠 준비가 돼 있어 (On and On)"
발표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다칠 준비가 돼 있어"의 뮤직비디오를 다시 보는 것은 생각보다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이 정도로 저예산스러운 비디오였나? 왜 이 친구들을 갑자기 달로 쏘아 보내는 거지? 두 번 정도 나왔다가 갑작스럽게 멤버들과 엔딩을 장식하는 백의의 여성은 대체 누구지? 그렇다, "다준돼"는 생각보다 빈틈이 많아 웃음이 나오는 뮤직비디오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메이크업에 컬러 렌즈를 끼고 뱀파이어가 관에서 일어서는 듯한 합동 안무를 선보이는 빅스 멤버들의 모습은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전달한다. 깔끔한 곡과 맞물린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콘셉트가, 이런 빈틈들마저 받아들이게 만든다. 빅스가 그 이후로 '콘셉트돌'로서의 명성을 떨치게 된 근원에, "다칠 준비가 돼 있어"의 기이한 에너지가 존재한다.
오렌지 캬라멜 "까탈레나 (Catallena)"
아마 K-Pop 역사상 가장 엉뚱한 그룹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은 그 이름, 오렌지 캬라멜. 유닛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본진인 애프터스쿨보다 이들을 더 강렬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오글거릴 정도로 귀여움을 극대화한 이들의 음악을 뒷받침하는 건, 역시 극도로 과장된 캔디 컬처(Candy Culture) 콘셉트의 뮤직비디오.
그리고 "까탈레나"는 그 정점에 서 있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인어가 된 멤버들이 비닐팩 안에서 파닥거리거나 초밥 위에서 납작 엎드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바닷속 참치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그저 이 모습에 압도될 뿐이다. 4차원을 시도한 아이돌 그룹은 많이 있지만, 그것을 어떤 '미학'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팀은 오렌지 캬라멜이 유일하다.
크레용팝 "빠빠빠"
제작비 38만원으로 용마랜드와 스튜디오에서만 촬영된 뮤직비디오는 2013년 가요계를 대표하는 한 장면으로 남았다. 헬멧을 쓴 멤버들이 아무리 봐도 어설픈 안무를 추면서 펌프질을 해대는 게 전부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비웃던 사람들도 이게 노래냐고 화를 내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부터 해탈한 듯이 '빠빠빠 빠 빠빠빠빠'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크레용팝의 유일한 히트 싱글인 "빠빠빠"를 지금 다시 감상하는 건 묘한 감상을 자극한다. 나왔을 당시에도 이 곡과 비디오는 정말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이상한 작품이었지만, K-Pop이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진 지금은 정말 먼 과거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K-Pop의 산업화와 글로벌화가 고도로 진전된 지금, 앞으로 이 정도로 거침없이 '싼티'를 발산하는 작품을 또 만나볼 수 있을까?
이렇게 어떤 방식으로든 '괴상함'을 발산하는 뮤직비디오들은, 하지만 바로 그 괴이한 특성 때문에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생각해보면, 때로는 깔끔한 만듦새나 칼같이 맞춰진 안무보다 어떤 식으로든 충격을 안기는 게 더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불쾌하지 않은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