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spa, 걱정과 기대 (정구원)

조회수 2020. 11. 27. 14: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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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과 문화를 '다른 관점'으로 살펴보는 시간

아마도 11월의 K-Pop 업계에서 가장 커다란 화제를 모았던 팀은 aespa일 것이다. 2014년 Red Velvet의 데뷔 이래 6년 만에 등장한 SM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이라는 점만으로 그 화제는 사실 예견된 것이었다. 예견되지 못한 상황이 있다면, 그 화제 중에 긍정적인 반응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재 aespa에 대해서 나타나고 있는 의견은 멋진 곡에 대한 찬사부터 임팩트가 없고 별로라는 의견, "논란"이라 이름 붙일 법한 반응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글ㅣ정구원 (웹진웨이브 편집장)


걱정: aespa는 새롭지 않다

잠시 2018년으로 돌아가 보자. 이수만 SM 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는 당시 기사에서 "미래에는 인공지능(AI) 연예인 로봇을 집에 두고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가 올 것"이라 강조하고, "연예인을 AI와 아바타로 만들어 각 가정에 보급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 구상이 aespa와 짝을 이루는 "가상 세계"의 아바타 멤버인 æ-aespa는 물론 aespa를 공개하면서 함께 출범한 SM 컬처 유니버스(SMCU)의 토대인 것은 분명하다. SM은 아마 꽤 오래전부터 이러한 콘셉트의 아이돌을 준비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해 왔던 것이 무색하게도, aespa의 데뷔곡 'Black Mamba'는 K/DA의 POP/STARS', (여자)아이들의 'LION'과 'Oh my god', 그리고 독일의 3D 비주얼 아티스트 티모 헬거트의 작업과의 유사성을 지적받으며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표절 시비도 문제가 되었지만, 아바타 멤버인 æ-aespa와 SMCU라는 세계관 자체가 기존의 K-Pop 그룹들이 보여주었던 것과 어떤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쏟아졌으며, NCT 때부터 불거졌고 SuperM으로 가속화된 "단일 그룹으로서의 정체성 대신 소속사 내 프로젝트의 활용도를 우선시하는" SM의 행보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멤버들을 마치 부품처럼 소모하는 게 SM의 방식이냐는 극단적인 의견도 나올 정도였으니까.

이 모든 논란의 핵심은 aespa라는 시발점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SM의 여러 비전들이 "새롭지 않다 (혹은 그렇게 느껴진다)"는 데서 비롯된다. 언제부턴가 (아마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K-Pop의 주도권을 잡은 무렵부터) SM은 K-Pop 내의 트렌드를 선도해 나가는 대신 기존의 자원 활용을 극대화하고 현재 유행하고 있는 트렌드를 참조하는 듯한 행보, 즉 보수화된 움직임을 보였다. 어떻게 보면 aespa는 "검증된" 사례(K/DA와 BLACKPINK의 스타일, 방탄소년단의 세계관)를 참고하려는 SM의 움직임이 낳은 자연스러운 첫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향성은 (그것이 황당하게 느껴지든 아니든) 계속해서 K-Pop 음악계를 선도해 왔던 SM의 그간의 모습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후발주자로서의 이미지를 덧씌우며, 표절 시비는 SM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던 이들이 그동안 그 행보 때문에 쌓여 왔던 불만을 폭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기대 : aespa는 깔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aespa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는 그 조합을 통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 중에서 음악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Black Mamba'는 자신의 레퍼런스로 읽힐 수 있는 모든 사례 – K/DA, BLACKPINK, (여자)아이들, EVERGLOW 등등 – 에서 "과했던" 잔가지를 쳐내고 깔끔한 곡을 만드는 데 모든 것을 집중한다. 베이스라인은 날렵하면서도 액센트가 필요한 부분엔 재빠른 잽을 날리고, 적재적소에 배치된 신시사이저와 비트는 좋은 뱅어(banger)에 감초가 되어 주는 끊기지 않는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네 명의 멤버들은 확연히 구분되는 목소리로 자신의 파트를 지탱한다.

물론 이것은 aespa가 앞서 말했던 레퍼런스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 기본 전제로 깐 상태에서 내리는 평가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그렇지만 검증된 공식을 다시 활용하면서도 여전히 좋게 들리는 곡을 만드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통해 좋은 곡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Black Mamba' 같은 익숙하면서도 즐거운 곡의 가치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Red Velvet('행복')과 f(x)('라차타')가 확연하게 새롭지만 곡 자체로서는 미묘한 매력을 지닌 데뷔곡을 내놓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aespa의 시도는 혁신적이진 않을지언정 다른 각도에서 성공을 거둔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aespa가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aespa에게는 다른 아이돌보다 조금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f(x)나 Red Velvet처럼 좋은 곡을 차근차근 쌓아 나가는 방식이든, EXO의 '으르렁'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게 만드는 훌륭한 트랙을 갑자기 내놓는 방식이든, SM이라는 단단한 지반 위에서 aespa는 아직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이 남아 있다. SM의 과거 아이돌들이 그랬듯이, 섣부른 판단보다는 지켜보는 것만이 이들의 진가를 깨닫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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