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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냥 만화가 아니다!

조회수 2019. 4. 19. 11: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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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이라는 팽창우주

트릭의 계보와 코드로 읽는 『명탐정 코난』

 (* 글: 임지호 * 출처: 미스테리아 23호)

『명탐정 코난』은 셜록 홈스와 아르센 뤼팽을 읽고 자란 세대를 위한 작품이다. 한 번쯤 친구들과 암호를 만들어 공유했거나, 처음 보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추리해봤던 경험이 있는 독자를 위한 풍성한 만찬 같다. 에피소드가 길어지면서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지만 처음 갖고 있던 특징(추리와 모험)들은 최근작까지도 여전하다. 몇번이고 반복되지만 그 반복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나 ‘트릭’의 묘미.


기본적으로 『코난』은 아서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를 오마주하는 한편, 다양한 고전 추리소설들이 닦아놓은 트릭을 다채롭게 변주하고 있다. 《미스테리아》23호에서는 작품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는 9가지 코드의 트릭을 테마로 그 바탕이 되는 고전 추리소설들과 함께 『코난』을 들여다본다. 

1. 외부인 출입 금지 구역 
- 클로즈드 서클

클로즈드 서클은 본디 넓은 의미로 특정 상황에서 용의자가 한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특정한 저택 안에서 살인이 벌어졌다고 하여 반드시 그 저택의 관련자가 범인이라는 보장은 없다. 지나가던 누군가에 의한 강도 살인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만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반드시 유죄라는 자네의 가정은 얼토당토않은 거라니까. 자네는 외부인이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아예 무시하고 있거든.” ― S.S. 밴 다인, 「주교 살인 사건」, 『파일로 밴스의 고뇌』 


파일로 밴스는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 그 비판을 반박하지만, 일본 본격 미스터리에서는 이러한 논쟁을 깔끔하게 해결하기 위해 종종 공간적으로 외부와 두절되어 고립된 환경을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우연’에 의한 범행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고 ‘우연’을 인정한다면 독자가 추리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코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겠으나, 그것을 위해 거의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외딴섬과 눈 덮인 산장이다. 잘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월광’ 살인 사건」 에피소드에서는 월영도라는 섬에서 보내온 죽은 사람의 초대장을 무대로, 「산장 붕대 남자 살인 사건」에서는 외부로 이어지는 다리와 전화선이 끊긴 소노코의 별장을 무대로 사건이 펼쳐진다.

사실 섬을 무대로 한 클로즈드 서클이라면 전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김남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에 신세를 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등장 인물이 모두 피해자인 동시에 용의자인 설정을 잘 활용한 명작. 『코난』에는 아예 이 작품을 오마주하여 인어 전설이 살아 숨쉬는 섬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 「그리고 인어는 없어졌다」가 등장한다. 인어 고기를 먹으면 불로불사한다는 전설을 소재로 벌어지는 사건을 쫓는 이 에피소드는 ‘머더구스’ 동요가 결합되어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크리스티의 작품과 멋진 대구를 이룬다.

2. 자물쇠 잠긴 방 - 밀실 

밀실은 본격 미스터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클로즈드 서클과 마찬가지로 독자와의 두뇌 게임을 좀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탄생하고 발전된 장치인데, 매우 제한된 환경에서 용의자를 압축할 수 있기 때문에 우연을 배제하고 수수께끼 자체에만 몰두할 수 있게 만든다. 어쩌면 밀실은 클로즈드 서클이 매우 집약된 형태라고, 반대로 클로즈드 서클을 확장된 밀실이라고 부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현실에서는 밀실 살인은 좀처럼 구현하기 힘든데다 오히려 용의자를 특정하게 만드는 약점이 있어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러한 이유로 추리소설에서는 언제나 사랑받는 설정이다.

『코난』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설정 가운데 하나로 다양한 형태의 밀실이 등장한다. 테이프로 문이 촘촘히 발라져 밀실이 된 사건 현장의 트릭을 파헤치는 「욕실 밀실 사건」, 방 안쪽으로 체인 록이 걸린 밀실에서 교살당한 변호사의 사건을 푸는 「용의자 모리 코고로」, 타살로 위장한 자살을 다룬 「아이돌 밀실 살인 사건」, 굳게 잠긴 사무실에서 청산가리에 중독되어 죽은 고리대금업자의 수수께끼를 다룬 「금융 회사 사장 살인 사건」 등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쓰인 설정까지 헤아리면 셀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밀실 트릭을 선보이고 있다.

밀실은 수많은 작가에 의해 연구되었으나 현재의 밀실 미스터리는 ‘밀실의 거장’ 존 딕슨 카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불가능 범죄의 하나로 밀실 트릭 작품 다수를 썼는데 그중 『세 개의 관』에서는 아예 주인공의 입을 빌려 자신의 밀실 이론을 펼쳐 보인다. 바로 유명한 ‘펠 박사의 밀실 강의’다. 카는 『세 개의 관』에서 한 챕터를 할애하여 밀실 살인의 유형을 크게 일곱 가지로 분류 및 설명한다.

1. 살인이 아니라 여러 우발적인 일이 이어져 우연히 살인처럼 보이는 경우.


2. 본질은 살인이지만 피해자가 자살하거나 사고사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몬 경우.


3. 방안의 평범한 가구 같은 곳에 보이지 않도록 미리 설치해둔 기계적 장치에 의한 살인의 경우.


4. 자살이지만 살인처럼 보이도록 의도한 경우.


5. 살인이지만 착각과 연기에 의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6. 밀실 밖에 있던 살인범이 저지른 살인이지만, 살인범이 마치 밀실 안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경우.


7. 살인 사건이지만 5번 항목과 정확히 반대 효과에 의존하는 경우.


덧붙여 존 딕슨 카는 밀실의 통로인 문과 창문, 굴뚝을 조작하여 밀실을 만드는 방법을 다섯 가지로 제시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에피소드를 비롯한 『코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밀실이 여기에 해당된다. 역시 밀실의 거장이라 불릴만하다.

3. 수수께끼의 원형 - 암호

코난은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홈스의 영향을 받아 암호라면 사족을 못 쓴다. 아마도 암호가 ‘수수께끼’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달과 별과 태양의 비밀」 에피소드에서는 코넌 도일의 「춤추는 사람들」이라는 단편을 직접 언급하면서, 소년 탐정단과 함께 「춤추는 사람들」에 실린 암호를 연상시키는 그림 암호의 비밀을 파헤친다. 그 외에도 셜록 홈스 팬들이 참가하는 추리 여행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홈즈 프리크 살인 사건」 에피소드에서는 셜로키언을 상대로 한 퀴즈의 형태로 암호가 또 한 번 등장하면서, 홈스와 암호에 대한 사랑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코난』에서 암호는 종종 소년 탐정단과 연결지어지는데, 암호란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가 숨겨 있다는 점에서 살인 사건 같은 범죄와 연결되기보다 보물찾기 같은 놀이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덕분에 암호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아가사 박사의 첫사랑이 남긴 편지의 암호를 토대로 추억의 장소를 찾는 「은행나무색 첫사랑」이라든가, 소년 탐정단이 땔감을 줍다 한자 암호가 적힌 석등을 발견하고, 결국 그 아래 깔려 있던 시체를 발견하는 「기발한 저택의 대모험」처럼 모험물이나 암호에 얽힌 사연 중심의 스토리가 강조되는 편이다. 『코난』에서는 이렇듯 암호의 활용도가 높은 편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접하기 쉬운 장치가 아니다. 「숨기고 서둘러 생략」 에피소드처럼 암호는 종종 그 나라 언어와 연관지어지기 마련이고, 자국 독자가 아니라면 번역되는 과정에서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미스테리아》23호에서 계속됩니다. 

출처: 미스테리아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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