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의 소설은 언제나 옳다.

조회수 2019. 2. 10. 1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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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A to Z

새해를 맞아 《미스테리아》22호에서는 수년째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일본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에 대해 심층 분석하였습니다.


 ‘인기’ 혹은 ‘재미’를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재미없고 무모한 시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중적인 호소력의 원인에 대한 탐구가 한국의 미스터리계에도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봅니다.  


1. 작가가 된 ‘책을 읽지 않는 소년’


히가시노 게이고는 1958년 오사카에서 출생했고, 1985년 『방과 후』로 데뷔했다. 데뷔 전에는 공과대학을 나와 제조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고, 학창 시절에도 책과는 거리가 먼 소년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소설, 그것도 미스터리를 쓰게 된 것은 교사로 일했던 작은누나의 영향 덕분이었다. 작은누나의 책장에 꽂힌 마쓰모토 세이초의 책을 읽어보고 (초등학교 때 읽은 『플란더스의 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재미있다고 생각해 마쓰모토의 다른 작품들도 차례차례 읽었다. 에도가와 란포나 에드거 앨런 포가 누구인지도 모를 만큼(후자가 일본에 귀화해 전자의 이름으로 개명한 줄 알았다고 한다) 장르에 문외한이었던 그가 추리소설 집필에 도전하게 된 것도 마쓰모토 세이초의 영향 때문이었다.

출처: 마쓰모토 세이초와 그의 대표작 『모래그릇』

습작 추리물을 친구들에게 읽히던 히가시노는 차츰 욕심을 내 『인형들의 집 (人形たちの家)』이라는 소설을 집필해 제29회 에도가와 란포상에 응모했다. 수상은 못 했지만 2차 예선까지 통과했다. 이듬해 『마구』로 재도전했으나 최종 후보작까지 오르고 낙선. 마침내 1985년 『방과 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았다. 

사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초기에는 익숙한 세계인 학교를 배경으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여학교를 배경으로 한 것은 여학교의 비상근 교사였던 아내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히가시노 게이고는 1983년 결혼했고, 이후 이혼했다). 『방과 후』가 상을 받자 히가시노는 전업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 당돌한 결정에 담당 편집자가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무명 시절이 꽤 긴 작가였다. 매해 두세 권의 신작을 낼 만큼 성실했고 개중 호평을 받아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한 경우도 있지만, 증쇄하지 못하고 절판되는 소설도 있었다고 한다. 데뷔작 이후로는 상과도 인연이 닿지 않아서 십 수 번의 낙선을 경험했다. 1998년 발표한 『비밀』 역시 나오키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신인상에서 낙선했으나, 대신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장편 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6년 『용의자 X의 헌신』이 제134회 나오키상, 제3회 서점대상, 제6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휩쓸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이 48세 때의 일이었다. 

출처: 히가시노 게이고(알라딘 도서DB)

2. 미디어가 먼저 발견한 작가


앞서 무명 시대가 길었다고 했지만, 작가로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대 강점은 성실성과 생산성이다. 언급한 것과 같이 데뷔 이래 매해 적게는 두 종에서 많게는 다섯 종까지 신작을 발표할 만큼 부지런했으니 인지도가 아주 없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초기작 『마구』가 198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18위, 1989년 『조인계획(鳥人計画)』이 15위에 오르는 등 장르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그럭저럭 반응을 얻고 있는 작가였다.


스토리텔러로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능성에 먼저 주목한 것은 미디어 업계였다. 그의 작품은 꽤 일찍부터 영상화되어서 1986년 『방과 후』를 시작으로 1989년 『윙크로 건배』, 1992년 『교통경찰의 밤』 등이 텔레비전 드라마·단막극으로 제작되었다. 이후 『오사카 소년 탐정단』, 『악의』, 『탐정클럽』, 『도키오』, 『숙명』, 『백야행』, 『탐정 갈릴레오』, 『유성의 인연』, 『명탐정의 규칙』, 『신참자』 등 다수의 작품이 안방극장에서 대중을 만났다.


(중략) 1980년대 후반은 ‘추리소설’에서 ‘미스터리’로의 전환이 일어난 시기였다. 정통 추리물을 탐독하던 독자층이 나이를 먹어 감소하는 가운데 TV 방송국에서 대중성이 강한 미스터리들을 두 시간짜리 드라마로 각색해 시청자들을 끌어당겼다. 이로 인해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인지도는 확장되었지만, ‘추리물이기 때문에’ 책을 선택하는 경우는 급감했다. 다카라지마샤의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가 발행된 것도 이 무렵이다(1988년). 애호가들의 취미 영역에서 벗어난 미스터리 장르가 투표라는 형식을 통해 대중의 기호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출처: 국내에서 영화화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이 시기(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 히가시노 게이고는 변화를 기민하게 감지했던 듯하다. 초기에 본격 미스터리 노선을 걷던 그의 작풍이 점차 미디어·대중 지향적으로 변화해간다. 정통 추리물의 룰을 비튼 『명탐정의 규칙』이 1996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1998년 『비밀』이 9위, 1999년 『백야행』이 2위, 2001년 『초 살인 사건-추리 작가의 고뇌(超.殺人事件―推理作家の苦悩)』이 5위, 그리고 2005년 『용의자 X의 헌신』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런 변화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진 증거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히가시노의 작품 중 영화로 제작된 것으로는 『비밀』, 『호숫가 살인 사건』, 『변신』, 『편지』, 『용의자 X의 헌신』, 『방황하는 칼날』, 『백야행』, 『새벽 거리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이 있다. 이 중 『백야행』, 『방황하는 칼날』, 『용의자 X의 헌신』은 일본 외에 한국에서, 『비밀』은 프랑스에서 각각 영화화되었다. (중략) 


출처: 미스테리아 22호

왜 사람들은 계속 히가시노 게이고를 읽을까? (유진: 편집자)의 글을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해당 기사 전문은 《미스테리아》 22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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