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공개!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조회수 2017. 6. 30. 15: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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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이후 7년, 다시 이야기가 폭발한다.
지난 2월 일본 출간 소식이 전해진 후 한국 출판계를 들썩이게 만든  무라카미 하루키 7년 만의 본격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가 7월 12일 한국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기사단장 죽이기』를 기다리셨던 많은 분들을 위해, 다음 1분에서 최초로 『기사단장 죽이기』 프롤로그를 공개합니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 후,

나는 산꼭대기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외딴섬처럼 고독하고도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기사단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프롤로그-


오늘, 짧은 낮잠에서 깼을 때 '얼굴 없는 남자'가 앞에 있었다. 그는 내가 잠자던 소파 건너편 의자에 걸터앉아, 얼굴 없는 얼굴 위 가상의 두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키가 크고, 옷차림은 전에 봤을 때와 똑같았다. 챙 넓은 검은 모자를 눌러써 얼굴 없는 얼굴을 반쯤 가렸고, 지난번처럼 칙칙한 색깔의 긴 코트를 입었다.

"초상화를 부탁하려고 왔네."

얼굴 없는 남자는 내가 완전히 잠이 깬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낮은 목소리에 억양도 감정도 없었다. "그려주겠다고 약속했지. 기억하나?"

"기억합니다. 그때는 종이가 없어서 그릴 수가 없었지요." 내가 말했다. 내 목소리도 마찬가지로 억양과 감정이 없었다. "대신 펭귄 부적을 드렸습니다."

"그래, 여기 가져왔네."
남자가 말하고는 오른팔을 똑바로 내밀었다. 매우 긴 팔이었다. 손에는 플라스틱 펭귄 인형을 쥐고 있었다. 휴대전화에 부적처럼 달려 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낮은 유리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딸깍, 작은 소리가 났다.

"이건 돌려주지. 자네에겐 이게 필요할 거야. 이 작은 펭귄이 부적처럼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줄 테니까. 대신 내 초상화를 그려줘야겠어."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갑자기 그러시면…… 저는 아직 얼굴 없는 사람의 초상화를 그려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목이 바싹 말랐다.
"자네가 뛰어난 초상화가라더군. 그리고 무슨 일에나 처음은 있는 법이지."

얼굴 없는 남자가 말했다. 그러고는 웃었다. 아마도 웃은 것 같았다. 그 웃음소리 같은 것은 깊은 동굴 속에서 들려오는 공허한 바람소리와 비슷했다.

그가 얼굴을 반쯤 가린 검은 모자를 벗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얼굴은 없고, 유백색 안개가 천천히 휘돌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작업실에서 스케치북과 부드러운 연필을 가져왔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얼굴 없는 남자의 초상을 그리려 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기점으로 삼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 있는 것은 그저 무(無)였다. 아무것도 없는 것의 형상을 대체 어떻게 빚어낸단 말인가? 더욱이 무를 둘러싼 유백색 안개는 쉼없이 모습을 바꾸었다.
"서두르는 게 좋아. 나는 이곳에 그리 오래 머물 수 없어." 얼굴 없는 남자가 말했다.

가슴속에서 심장이 메마른 소리를 냈다. 시간이 별로 없다.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연필을 쥔 손가락은 허공에 멈춘 채 도무지 움직일 줄 몰랐다. 마치 손목 아래쪽이 마비된 것처럼. 그의 말대로 내게는 지켜야 할 사람이 몇 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얼굴 없는 남자'의 얼굴을 도저히 그릴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눈앞에 있는 안개의 움직임을 노려보았다.
"미안하지만 시간이 다 됐어." 잠시 후 얼굴 없는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얼굴 없는 얼굴의 입에서 희뿌연 강안개 같은 입김을 크게 내뱉었다.

"기다려주세요. 조금만 있으면……"

남자가 검은 모자를 다시 눌러써 얼굴을 반쯤 가렸다.

"언젠가 다시 찾아오지. 그때는 자네도 내 모습을 그릴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때까지 이 펭귄 부적은 내가 보관하겠네."

얼굴 없는 남자가 모습을 감추었다. 안개가 돌풍에 걷히듯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뒤에는 빈 의자와 유리테이블만 남았다. 유리테이블 위에 펭귄 부적은 없었다.
그저 짧은 꿈 같기도 했다. 하지만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만일 그게 꿈이라면 내가 사는 이 세계가 모조리 꿈이라는 뜻일 테니까.

언젠가 무의 초상을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화가가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을 완성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1Q84』 이후 7년, 다시 이야기가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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