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을 나누는 방법에 대하여

조회수 2017. 8. 24. 14: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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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를 형성한다는 것

의과대학의 커리큘럼 마지막에는 모든 과를 순환하는 병원 실습이 있다. 공부했던 내용을 병원에서 실제로 체험해보기 위해서다. 나는 맨 처음 소아청소년과로 실습을 나갔다. 

실습 의대생은 가운을 입고 있긴 하지만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실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업무는 그 과의 의료진이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고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도 우리는 소아과 교수님의 회진을 따라서 병동을 돌고 있었다. 평소처럼 교수님은 소아과 병동에 있는 자신의 환자들을 순서대로 진료하고 나서 아래층에 있는 환자 한 명을 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당연히 우리도 조심조심 교수님을 따랐다.

엘리베이터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모양새로 서 있었고, 마침 아이와 함께한 아주머니도 한 분 있었다. 아주머니는 교수님과 안면이 있는 듯, 교수님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교수님도 웃는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느끼기에 교수님이 늘 보던 아이와 보호자는 아니고, 아이를 진료하느라 몇 번 마주친 것 같았다. 의례적인 인사를 짧게 나눈 뒤 조금 어색했던지, 아주머니는 금방 아이 얘기로 화제를 옮겼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요새 골골대는데, 괜찮나 좀 봐주세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잠시 후면 문이 열릴 것이고, 진료 하기에는 적절한 공간도 그런 환경도 아니었다. 의사도 준비된 진료 실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환자를 마주해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막 실습 나온 우리는 교수님이 그 짧은 시간에 과연 어떻게 이 상황에 대처할지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전혀 망설임 없이 아이에게 다가갔다.


어디 보자.

교수님은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그 아이에게 큰 손을 뻗어 눈을 껌뻑이던 아이의 이마에 댔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이마에 손을 대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 모양이 온전히 느껴지게 오른손으로 아이의 이마를 전부 가리고 왼손으로 뒤통수를 감싸셨던 것이다. 아이의 작은 이마와 머리는 교수님의 양손에 눈망울까지 푹 잠겨 제법 귀여웠다. 몸을 굽혀 양손을 뻗은 교수님과 가만히 서 있던 조그마한 아이의 모습은 흡사 열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재는 것 같았다. 교수 님은 한동안 그 상태로 아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나서 말했다.


열은 없는데, 많이 골골대나요?

실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주머니는 아이를 정식으로 진료해달라는 것이 아니었을 게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본 광경은, 이미 충분히 아이를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모습이었다. 그 혼잡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얼마나 더 훌륭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짧은 진료는 아주 완벽하게 끝났다. 아주머니는 선생님이 봐주셨으니 아이가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곤, 감사 인사를 표했다. 교수님은 호쾌하게 아이에게 건강하라는 덕담을 남겼다. 문이 열리자, 교수님은 그다음 환자를 보기 위해 성큼성큼 발길을 옮겼다.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어느덧 의사가 되었다. 환자에게 손대는 일조차 겁나고 무서웠던 학생은 혼자 하루 100여명의 환자를 직접 책임져야 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일과는 매번 혼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예기치 못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졌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당장 눈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열에 달뜨거나 각자의 고통에 시달리다 응급실로 몰려든 사람들 중에선, 위급한 다른 사람 때문에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환자들의 호소와 볼멘소리를 듣고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도 내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견 체온을 측정하는 것 같던 그 장면을 떠올리곤 했다. 의사가 된 나는, 체온을 잴 때는 기계로 재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의 손은 자체의 온도로 인해 체온을 평가하기에 부정확했다. 다만 대략적으로 열기를 판단할 수는 있고, 경험이 쌓이면 심부 체온이 높은 상태와 정상이지만 열감이 있는 상태를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환자의 이마에 손을 대는 일이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정량화된 체온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나는 하루에도 수차례 누워 있는 환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일단 환자 가까이에서 눈빛을 교환하고 나면, 그 환자가 오래 기다린 탓에 힘겨워하고 있다거나, 뒤늦게 나타난 내게 억하심정을 호소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습관처럼 환자에게 다가가 이마에 깊게 푹, 손바닥을 얹는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교수님처럼. 그러면 환자의 이마에서 온기가 느껴지고, 방금까지 다급했던 땀내와 열기가 훅 밀어닥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떻게, 무슨 일로 오셨나요?

그리고 가만히 그의 마음을 느껴본다. 그 사람에게, 같은 사람으로 성큼 다가가는 느낌이다.

배가 아파서 왔습니다.


네, 열감도 조금 있으시네요.


방금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가진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을까. 지금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은 채 온기를 나누어 받고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을까.


나는 대화를 이어가며 그들의 표정이 안온해지는 광경을 본다. 그리고 그들의 호소를 귀담아듣는다. 그들은 이마에 얹혀 있는 손을 통해 마음을 전달받은 느낌으로, 내가 그의 말을 경청하고, 고통을 나누어가질 것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나는 매번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이 혼란스러운 틈바구니에서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마음속까지 큰 보폭으로 한 걸음 다가가 마음을 가늠하며 사람을 대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출처: 글 쓰는 의사 남궁인이 쓴 <지독한 하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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