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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소녀의 인생이 바뀐 밤, 엄마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그날 밤, 엄마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분노와 핏빛 이야기는 소녀의 인생을 뒤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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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책을 기억하시나요? 아기돼지 삼형제, 해님달님, 피터팬, 신데렐라 등 우리를 두렵게도, 꿈꾸게도 했던 수많은 이야기들. 


그 중 최고의 이야기를 꼽으라면 소원을 들어주는 파란색 거인, 램프의 요정 지니와 날으는 양탄자가 등장하는 알라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니를 만나면 꼭 빌고 싶은 소원을 미리 생각해보거나 카페트 위에 앉아 날아오르는 상상만으로도 엉덩이가 들썩들썩, 무척 설레였었죠.


그런데 어른이 되어 극장에서 만난 <알라딘>(2019)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알라딘과 결혼하는 공주로만 기억되었던 자스민이 달라졌거든요! "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던 그녀가 이제 “전 왕이 될 준비를 해왔어요”라고 외치는 관점의 변화.

그녀는 자신의 주제곡인 ‘speechless'를 부르며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을 선포합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의 틀 속에 살던 어여쁜 공주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여성으로 성장한 자스민을 향해 대중의 호평이 쏟아졌죠.  


그리고 여기, 고전 문학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전세계적인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읽어준 책 한권에서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낸 소녀, 바로 2012년에 여성문학상을 수상하고, 작품을 출간할 때마다 여전히 최종후보로 거론되는 작가 매들린 밀러입니다. 


"다섯 살때였어요.

잠들기 전이면 『잘 자요, 달님』을 

읽어주던 엄마가 어쩐지 그날은

조금 낡아보이는 두꺼운 책 한 권을 가져오셨죠.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엄마가 사뭇 진지하고 웅장 한 목소리로

그 책의 첫 문장을 읽어주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어요.


이건 진짜다. 진짜 삶이다!"

사서였던 엄마가 어린 매들린 밀러에게 읽어준 책은 다름 아닌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인 『일리아스』 였습니다. 트로이아 전쟁의 10년째 해와 마지막 해인 격변의 시기, 호메로스 이야기의 핵심에는 반신반인인 그리스의 위대한 영웅 아킬레우스가 있었죠.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한 후, 수 많은 그리스인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모든 전투를 외면한 아킬레우스. 

그를 다시 전장으로 불러들인 것은 가까운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인한 크나큰 슬픔과 분노였습니다. 그는 복수를 위해 전장으로 돌아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트로이아 전사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달리면서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죠.


누가 읽어도 그리스 영웅 아킬레우스가 주인공인 이야기. 하지만 어린 매들린 밀러는 아킬레우스가 아닌 그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더욱 궁금했습니다. 아킬레우스에게 이토록 소중했던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일리아스』에서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 인물. 그녀에게는 정말 미스테리였죠. 


"파트로클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온화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저에게는 그 지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온화함은 고대 그리스 영웅들에게는

일반적인 기질이 아니거든요.


최고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극심한 우수성의 문화에 살았던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가 최고인 걸로 충분했던 거예요.


그의 동무가 되고 그의 그림자가 되는 걸로요.

그런 점은 그를 괴롭히지 않았고,

그게 바로 그를 독특한 인물로 만들어줘요.

저는 진심으로 생각했어요.


이 놀라운 인간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다고."


영웅이 아닌 그의 친구를 향한 관점의 변화. 그 변화는 매들린 밀러가 파트로클로스의 인간적인 목소리로 고대 영웅 아킬레우스와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를 새롭게 써내려가도록 이끌고, 10년의 집필 끝에 여성문학상 수상작인 세기의 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가 탄생합니다. 

이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를 각색한 소설 중 단연 최고라는 전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핏빛 전쟁터를 누비는 그리스 영웅들의 강인함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삶. 어떻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어요! 


매들린 밀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관점의 변화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에 스치듯 등장하는 서양 문학 최초의 마녀 키르케에게 새로운 목소리를 부여한 거죠.



"남성 영웅들은 당연하게 갖고 있던 그런 능력을

여성에게도 부여하고 싶었어요.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말하는 여성을 원했으니까요.


그래서 주인공으로 누구를 원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본 적은 없습니다.

항상 키르케, 그녀였거든요."

그녀는 사회가 여자에게 허용해준 힘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여성에게 주어지는 단어가 마녀라는 데 주목했습니다. 틀림없이 키르케가 그런 경우였으니까요. 천성적으로 잔인하고 변덕스러운 여자라는 추측만 무성할 뿐, 『오디세우스』에 아무런 목소리를 갖지 못한 키르케를 향해 묻습니다.


왜 키르케는 남자들을 돼지로 만들기로 한 걸까? 

심지어 강한 신들도 경계할 만큼의 힘을 어떻게 얻었을까?

오디세우스와 1년을 보낸 이후, 그녀의 나머지 삶은..?


그녀를 향한 수많은 질문 끝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소설 『키르케』입니다. 남성중심적인 세계에서 조롱과 멸시로 짓밟힌 운명을 뒤집고, 온전한 자신의 목소리를 쫓아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키르케의 이야기는 세계 최초의 여성대서사시라는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매들린 밀러가 다섯살 소녀였던 그날 밤, 엄마의 손에 동화책 대신 들려있던 책 한권은 그녀에게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관점의 변화로 다시 쓰여진 고전은 누구를 중심으로 계보를 그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듯,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 따라 우리의 삶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죠. 


끝으로 5,000개가 넘는 독자 리뷰 중 인상적인 리뷰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마칩니다.


“소설 한 권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상 전부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는

그 불가능한 일을 어쩌면 가능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22세기 혹은 23세기에는 학생들이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에 기초한

새로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우게 될지도...” 


_시혼 님 (북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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