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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가 소개하는 하루키의 음악

[벅스뮤직] 하루키를 읽고 '듣는' 특별한 순간 <기사단장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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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읽고 '듣는' 특별한 순간

(글: 요조) 

우리 아버지는 나랑 뼈다귀 해장국을 먹을 때마다 내가 먹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곤 하셨다. 특히 내 밥그릇 옆으로 쌓이던 뼈다귀들을 바라보며 꼭 던지던 멘트가 있었다.


 ‘너는 뼈를 제대로 발라먹은 게 아니다.’


다른 책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특히 내가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을 떠올리면 아버지의 질책을 이렇게 바꾸어보며 자조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책들을 제대로 발라(!)먹은 게 아니다, 라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서재

아마 하루키의 책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의 책은 다양한 음악적 보고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재즈와 올드팝, 록과 클래식까지 그의 이야기를 뒷받침해주는 음악의 결은 실로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등장했던 음악까지 꼼꼼하게 찾아 들어본 적이 여태 없었다. 나중에 찾아 들어야지 하고 따로 체크해두고선 언제나 거기까지였다.


마음을 졸이면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노라면 노래까지 찾아 들어볼 여유가 그때 당시에는 여간 생기지 않았고, 다 읽고 나서 뒤늦게 다시 음악들을 찾아 들어봐야지 하고는 또 하루이틀 게으름을 부리다보면 영영 그 음악들과 연을 잃은 남남이 되곤 했던 것이다.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가 7월 초 한국에서 출간되며 무리 없이 인기몰이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평소답지 않은 무서운 속도로 나는 진즉 다 읽어버렸다. 물론 늘 그랬듯 읽으며 등장하는 음악들도 다 체크해두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상실의 시대』를 읽었던 스무 살 때부터 17년간 그의 책을 읽으며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그의 책 속에 등장하는 음악들을 하나하나 다시 들어보며 책의 구석까지 다 더듬어보는, 일명 ‘신중택씨가 (우리 아빠 이름이다) 뼈 발라먹듯 독서하기’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한다.


일단 이 책에서 굵은 줄기를 담당하고 있는 두 곡을 먼저 얘기해보겠다.


1. 모차르트, <돈조반니>

『기사단장 죽이기』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라는 오페라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화가 ‘나’는 아내로부터 뜻밖의 이별 통보를 받는다. 깊은 상처를 입고 얼마간 떠돌던 ‘나’는 친구이자 일본의 유명한 화가인 아마다 도모히코의 아들인 아마다 마사히코(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비슷해 헷갈린다)의 도움으로 아마다 도모히코의 작업실에 머물게 된다. 그러다 그 작업실의 다락방에서 우연히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제목의 그림을 발견하게 되면서 기이한 일들을 계속해서 경험하게 된다.


한 번도 오페라를 진지하게 들어본 적 없었던 나는 그저 온순하게 귀를 기울여보았다. 안나를 겁탈하려다 실패한 천하의 호색한 돈 조반니가 안나의 아버지인 기사단장과 결투를 벌이다 결국 그를 죽이게 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어쩐지 그 장면을 일본화풍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것으로 보이는 아마다 도모히코의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에게 이입하면서.



2. <장미의 기사>

Der Rosenkavalier
Various Artists

두번째 음악은 <장미의 기사>라고 하는, 역시 유명한 오페라 작품이다.

이 작품과 함께 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을 소개해야 한다.

‘나’가 살고 있는 아마다 도모히코의 작업실 바로 맞은편 으리으리하고 거대한 흰색 건축물에 살고 있는 신비로운 이웃, 멘시키다.

멘시키는 ‘나’가 과거 돈벌이용으로 그리다 중단한 초상화들을 찾아보았다며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초상화도 그려줄 것을 요구한다. 결국 그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나’는 멘시키를 작업실로 부르게 되고 그때 멘시키는 <장미의 기사>를 ‘나’에게 추천한다.


멘시키의 초상을 그리면서 ‘나’가 처음으로 듣게 되는 <장미의 기사>는 그뒤에 일어나는 기이한 문제들에 대해 멘시키와 상의하면서도 종종 ‘나’ 혼자 고민하는 시간을 보낼 때에도 습관적으로 찾는 음악이 된다. 멘시키가 말한 대로 일단 줄거리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소설 속 ‘나’가 겪었던 비현실적인 사건들과 의미심장한 문구들을 다시 떠올려가면서 듣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다.



3. Monk's Music - 텔로니어스 멍크

지면상 마지막으로 한 곡만 더 소개하고 싶다.

실제로 소설가가 되기 전 오랫동안 재즈바를 운영하기도 했던 하루키가 소설 속에서 언급하는 재즈곡들은 다른 장르의 음악들보다도 더 신뢰가 가곤 했었다. 어쩌면 실제로 그가 요리하면서 자주 듣는 앨범일 가능성도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집에서 무엇이든 요리할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요리를 하면서 슬그머니 이 앨범을 플레이해보아도 좋겠다. 찾아보면 알겠지만 텔로니어스 멍크의 앨범은 굉장히 많다! 혹시 요리할 때 틀었다가 낭패를 보았다면 본인의 취향에 맞는 다른 앨범을 찾아 청소할 때, 산책할 때, 잠들 즈음에 등등 다양한 하루의 부분을 공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입장벽이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는 오페라 같은 장르를 듣자마자 단박에 소설에 쓰인 그대로의 감흥을 느끼게 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 것이다. 다만 이런 경험들을 통해 책을 그저 눈으로만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닌, 보다 더 공감각적인 체험을 통해 하나의 좋은 작품을 더욱 깊이 내 것으로 체화시키고, 나아가 내 인생에서 잘 잊히지 않는 무언가로 만드는 일, 말하자면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길 바란다. 

글쓴이: 요조

홍대 인디 문화의 아이콘이자 싱어송라이터. 본명은 신수진. 요조(Yozoh)라는 예명은 ‘요조숙녀’가 아니라 일본소설 <인간실격>의 남자 주인공 ‘요조’에서 따온 것. 현재 제주도에서 '책방 무사'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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