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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칼레도니아 무인도 체류기 -조금은 느리고 몰라도 괜찮은 2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한번쯤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모든 번뇌와 시름 잊고 살아보면 어떨까.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쓴 여행작가 이병률과 『달리는 청춘의 詩』를 쓴 윤승철 작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꿈꾸며 뉴칼레도니아의 무인도로 훌쩍 떠났다. 한없는 게으름에 대한 그들의 로망은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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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피우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힘들구나

_윤승철(작가)

나는 병률 형을 처음 만난 기차 안에서 가끔 혼자 떠나는 무인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세상의 고요와 홀로 대적할 수 있는 곳, 사랑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를 유리병에 넣어 띄울 수 있는 곳, 무수히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밤을 지샐 수 있는 곳이라고. 그랬더니 형은 단 며칠이나마 휴대전화가 아예 터지지 않는 곳에서 못 읽은 책 몇 권을 읽고 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남태평양 한가운데 뉴칼레도니아에 있는 무인도에 가기로 한 것도 형을 처음 만난 그때 시베리아의 여름을 달리면서였다. 기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빼곡한 자작나무 푸른 숲들을 보면서 그만큼만 푸른 무인도로 가자고 약속했었다.

쁘띠 테니아 섬은 뉴칼레도니아의 누메아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떨어진 마을 블루파리(Bouloparis)로 간 다음 다시 30분 가량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워낙 살기가 힘들어서 무인도는 무인도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무인도로 들어가는 배 안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보트 운전을 해주던 아저씨가 다른 섬 하나를 가리키며 87세의 할머니가 반평생 혼자서 저 무인도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무인도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더니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너무 쨍쨍해서 원망했던 태양의 전복이자 완벽한 복수. 천장이 뚫린 텐트를 부랴부랴 비닐로 덮고, 배낭을 나무 아래로 옮기는 동안 애써 피운 불은 꺼졌다. 땔감으로 모아둔 나뭇가지들로 이미 다 젖었다. 무섭게 비를 토한 먹구름은 10분 만에 다시 해를 내놓고 사라졌다.

큰 나무 아래에 있는 젖지 않은 나뭇가지를 모아 다시 불을 피웠다. 불 주변으로 나무를 모아 말렸고 며칠간은 불씨를 유지할 수 있도록 큰 나무에 불을 붙였다. 병률 형은 숲으로 들어가 장작을 척척 해왔다. 이런 상황이 짜증날 법도 할 텐데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습한 기온과 모기에 맞서며 나뭇가지들에 다리가 긁히는 줄도 모르고 묵묵히 땔감을 날랐다. 형은 게를 잡아서 구워 먹을 때도 열정적이었다. 구운 게의 다리를 뜯어 먹으면서 얼굴 가득 시커먼 재들을 뒤집어쓰고도 오직 게에 집중했다.

물만 넉넉하다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먹을 것은 많았다. 물속엔 손가락만한 크기부터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있었고 바위 틈으로는 조개들이 보였다. 물이 빠졌을 땐 바게트보다 굵은 해삼이 떡 하니 해변에 놓여 있곤 했다. 그날 이후로 계속 날씨가 흐리고 파도가 많이 치는 바람에 물에 들어가기엔 위험한 날들이 계속 되었다.

어느 저녁, 느닷없이 검은 새 한 마리가 우리 앞으로 날아와 앉았다. 우린 얼마가 지나서야 가만히 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텐트를 날릴 듯한 거센 비바람은 새들에게도 두려웠나보다. 어스름이 지는 바다를 날아 새들이 섬으로 피신하고 있었다. 섬에 들어와 해변에서 새들의 발자국을 본 적이 있었는데 발자국을 따라가니 끝에 수많은 구덩이가 있었다. 게들의 집이라기엔 구덩이가 너무 컸고 그렇다고 새가 땅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더욱 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조금 전 날아든 새들이 이 섬으로 와 땅을 파고 머물다 가는 거였다.

새를 잡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가가도 총총 뛰어다니며 도망갈 뿐이어서 가만히 다가가 목을 움켜잡으면 그만이었다. 털을 뽑고 손질을 한 다음 갈라진 배 안으로 마늘과 파, 양파를 넣은 후 많은 별을 보며 한잔, 별똥별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또 한 잔씩 마시려 했던 와인을 부어 숙성시켰다. 그리고 긴 나뭇가지에 꽂아 숯불 위에서 살살 돌려가며 훈제를 시작했다. 바람이 적절히 불어주어 숯은 붉고도 강렬한 색을 은근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새 한 마리를 먹기 위해 꼴딱 밤을 샜다. 기름이 빠지면서 구석구석 익은 야생 새의 껍질은 바삭했다. 섬에 들어온 이후로 씻지도 못하고 맨손으로 야생의 새를 먹고 있는 모습에 서로 웃음이 나왔다. 세상 가장 외딴 곳에서,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동물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서로 실감하면서 말이다.

무인도는 살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알려주는 곳이다. 이를테면 불을 피우는 것보다 그 이후 불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란 사실. 열매를 따기 위해 오른 나무에서 정작 내려올 때가 무서워 한동안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것도. 정상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정신없이 내달리다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는 것을. 그간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졌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아왔는지, 자연 앞에선 나란 존재가 얼마나 무기력할 수 있는지까지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가 숨어야 할 마음속 한 켠의 작은 방 하나. 오직 파도와 소나무와 별뿐인 그 방에 누워서 아무 걱정과 눈치 보는 일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다는 게 나는 늘 좋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무인도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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