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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세월호'

세월호 2주기, 김훈 허지웅 김관 낭독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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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월, 세월호 침몰 2주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속했습니다. 
잊지 않겠다고.

■ 본 영상은 김훈 작가의 글  「세월호」의 일부를 김훈 작가, 허지웅 작가, 김관 기자가 함께 낭독한 것입니다.

나는 본래 어둡고 오활하여, 폐구(閉口)로 겨우 일신의 적막을 지탱하고 있다. 더구나 궁벽한 갯가에 엎드린 지 오래니 세상사를 입 벌려 말할 만한 식견이 있을 리 없고, 이러한 말조차 아니함만 못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하되, 잔잔한 바다에서 큰 배가 갑자기 가라앉아 무죄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사태가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지 못하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몸을 차고 어두운 물밑에 버려둔 채 새해를 맞으려니 슬프고 기막혀서 겨우 몇 줄 적는다. 

단원고 2학년 여학생 김유민양은 배가 가라앉은 지 8일 후에 사체로 인양되었다. 라디오 뉴스에서 들었다.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씨는 팽목항 시신 검안소에서 딸의 죽음을 확인하고 살았을 적의 몸을 인수했다. 유민이 소지품에서 학생증과 명찰, 그리고 물에 젖은 1만 원짜리 지폐 6장이 나왔다. 

김영오씨는 젖어서 돌아온 6만 원을 쥐고 펑펑 울었다(유민 아빠 김영오, 『못난 아빠』 중에서). 이 6만 원은 김영오씨가 수학여행 가는 딸에게 준 용돈이다. 유민이네 집안 사정을 보건대, 6만 원은 유민이가 받은 용돈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이었을 것이다. 이 6만 원은 물에 젖어서 돌아왔다.

아 6만 원, 이 세상에 이 6만 원처럼 
슬프고 참혹한 돈이 또 있겠는가. 


6만 원을 지갑에 넣고 수학여행 가는 유민이는 어떤 설계를 했던 것일까. 열일곱 살 난 여학생은 무엇을 사고 싶었을까. 얼마나 간절한 꿈들이 유민이의 6만 원 속에 담겨 있던 것인가. 유민이가 가지고 싶었던 것들. 아버지, 엄마, 동생에게 사다주려 했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6만 원은 유민이의 꿈을 위한 구매력에 쓰이지 못하고 바닷물에 젖어서 아버지에게 되돌아왔다. 300명이 넘게 죽었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몸이 물밑에 잠겨 있지만 나는 이 많은 죽음과 미귀(未歸)를 몰아서 한꺼번에 슬퍼할 수는 없고 각각의 죽음을 개별적으로 애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민이의 6만 원, 물에 젖은 1만 원짜리 6장의 귀환을 통절히 슬퍼한다.

아 6만 원. 

유민이의 마음속에서 6만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유민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사소할수록 간절했을 것이다. 이것을 살까, 저것을 살까 망설일 때 그 후보 리스트에 오른 물건까지를 합산한다면 이 6만 원이 갖는 구매력의 예상치, 실현되지 못한 구매력은 몇 배로 늘어난다. 유민이의 선택에서 최종적으로 탈락되었다고 해서 그 탈락된 꿈이 무효인 것은 아니다. 배는 수학여행지에 닿지 못했다. 죽은 많은 아이들의 용돈도 다들 물에 젖어서 돌아왔을 것이므로 그 많은 꿈들은 슬픔과 분노로 바뀌어 바다를 덮는다. 

유민이의 지갑에서 돌아온 6만 원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국가재난 컨트롤타워에 성금으로 보내야 하는가를 생각하다가 생각을 그만두었다. 내가 젊은 날 육군에서 힘들 때 엄마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어렵고 힘들 때는 너보다 더 어려운 이 어미를 생각해라, 라고 적혀 있었다. 고지의 겨울은 맹수에게 물어뜯기는 듯이 추웠다. 엄마의 편지를 받던 날 밤에 나는 보초를 서면서 고난을 따스함으로 바꾸어놓는 엄마의 온도와 엄마의 눈물의 힘을 생각했고 자라나는 고비에서 치솟는 반항기로 엄마를 속썩인 패악을 뉘우치면서 가슴이 아팠다.


유민이의 6만 원에도 내 엄마의 편지처럼, 크고 깊은 슬픔의 힘이 저장되어 있어 세상의 불의와 더러움을 밀쳐낼 수 있으며, 말을 알아듣고 사물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줄 테지만 그렇게 말해봐도 산 자들의 말일 뿐, 젖어서 돌아온 6만 원을 위로할 수는 없다. 


배 안을 수색하는 잠수사들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담요를 둘둘 말아서 배 안의 창문 틈마다 모두 막아놓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버둥거리다가 최후를 맞았다. 골든타임도 에어포켓도 컨트롤타워도 다가오는 인기척도, 아무것도 없었다.  (…)


2014년 4월 16일의 참사 이후로 사태를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각은 발작적인 분열을 일으키며 파탄되었다. 

슬픔과 분노를 온전히 간직해서 미래를 지향하는 동력으로 가동시켜야 한다는 시각과 그 슬픔과 분노를 매우 퇴행적이고 소모적인 것으로 여겨 혐오하는 시각이 교차했다. (…) 

슬픔과 분노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해롭다는 것이 그 혐오감의 주된 논리였다. 


세월호에서 놓친 골든타임이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으로 살아났고 거기에 이념의 날라리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사실 4·16 참사 이후에 경기는 장기침체에 빠졌고, 정부의 부양책은 힘을 쓰지 못했다.

 

모두들 슬프고 분하면 경기는 침체되는 것이니까. 슬픔과 분노가 경기침체의 원인이라는 말도 결국은 동어반복이다. 

어찌 헌옷을 벗듯이, 헌신짝을 벗어버리듯이 
마음의 일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인가. 

돈 많고 권세 높은 자들이 큰 죄를 저질러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형량을 줄여서 선고하고, 형기중에도 특별사면, 일반사면, 집행정지, 가석방, 병보석으로 풀어주는 무법천지를 나는 자유당 때부터 보아왔고 이 무법천지는 모두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죄형법정주의는 무너졌고 경제는 합리적이고 규범적인 토대를 상실했다. 


재벌의 불법을 용인해야 경제가 살아나고, 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시장의 논리도 아니고 분배의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법치주의가 살아 있어도 법이 밥을 먹여줄 리는 없고, 밥은 각자 알아서 벌어먹어야 하는 것인데, 법치주의를 포기해야만 밥을 벌어먹기가 수월해진다면 이 가엾은 중생들의 밥은 얼마나 굴욕적인 것인가. (…)

지금, 그날 벌어 그날 먹거나 

한 달 벌어서 한 달을 먹거나, 

사람들은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다. 


이 겨울에 살기 위한 아무런 방편도 마련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이 중생고(衆生苦)가 수감중인 대기업 총수의 석방 주장을 정당화하고 세월호의 슬픔과 분노에 대해 침묵을 요구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은 기막힌 일이지만, 기막히게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해서 4·16의 슬픔과 분노는 전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결국은 정치의 악다구니 속으로 편입되었고,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편으로 갈라져서 치고받게 되었는데, 세종로에서 단식을 이어가던 유가족들 옆에서 먹성 좋아 보이는 청년들이 통닭과 짜장면을 먹어대고, 또 국회의원 명함을 내미는 웬 여성이 대리운전기사를 폭행하는 짓에 연루됨으로써 이 악다구니와 악다구니에 편승하는 또다른 악다구니들이 온 나라에 넘쳤다. 

슬픔과 분노의 온전한 모습은 파괴되었고 
유민이의 젖은 6만 원의 의미는 실종되었다. 
그 슬픔과 분노는 특별히 재수가 없어서 끔찍한 재앙을 당한 소수자의 불운으로 자리매겨졌다. 

그 소수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다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고 다수가 먹고사는 일에 해로운 결과가 된다고 힘센 목청을 가진 언설의 기관들이 힘을 합쳐서 소리질렀다. 소리질러서 낙인찍었고,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그렇게 해서 4·16의 슬픔과 분노는 특별히 재수없어서 재난을 당한 소수자의 것, 우는 자들만의 것, 루저들만의 것으로 밀려났다.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과 그 모든 배후의 문제를 다 합쳐서 세월호 제1사태라고 한다면, 

제1사태 직후부터 이 나라의 통치구조 전체가 보여준 붕괴와 파행은 세월호 제2사태다. 
이것은 또다른 난파선이다.
 제1사태와 제2사태는 양태는 다르지만 뿌리가 같아서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지 구분할 수 없는데, 과거의 제2사태가 오늘의 제1사태로 터져나오고, 오늘의 제2사태가 미래의 제1사태를 예비하고 있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은 제1사태 때 승객과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했다. 이준석 선장은 1심에서 36년 형,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세월호 제2사태에서도 많은 책임 있는 자들이 난파선을 버리고 탈출했거나 탈출을 시도했고, 이준석을 욕함으로써 자신들의 탈출의 오욕을 희석시키고 있다. 이 난파선은 아직도 표류중이다. 

세월호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고통과 슬픔을 향해 얼만큼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지, 어느 정도에서 발을 빼야 하는지를 놓고 다투다가 여야 합의는 거듭 난파되었고 야당의 리더십은 침몰했다. 

대통령은 사건 당일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일곱 시간 동안 일곱 번이나 각급 지휘관에게 명령을 내렸다고 비서실장이 밝혔다. 그런데 현장의 구조 인력은 기우는 배에 접근하지 않았고, 해경 책임자는 구조 인력 투입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대통령의 명령은 대체 무엇인가. 명령이란, 복종되고 실현되기를 강요하는 의사 표시다. 대통령의 직무는 언어의 형식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 그 명령이 요구하고 있는 내용을 현실로 바꾸어놓는 것이다. 명령은 직무의 발동이고 실현은 직무의 완수다. 이것이 대통령과 9급의 차이일 것이다. 명령을 일곱 번 내렸다고 해서 대통령의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다. 명령은 허공으로 흩어졌는지, 대통령의 명령이 구중궁궐에 갇힌 대왕대비의 신음처럼 대궐 담 밖을 넘지 못한 꼴이니, 그 나머지 일들은 기력이 없어서 더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4월이 와서, 세월호 침몰은 1주년이 되었다.

꽃보라가 흩날리고 목련이 피어서 등불로 돋아나고, 
여자들도 피어서 웃음소리가 공원에 가득하다. 

생명의 아름다움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사람이 입을 벌려 말할 필요는 없을 터이지만, 지난해 4월 꽃보라 날리고 천지간에 생명의 함성이 퍼질 적에 갑자기 바다에 빠진 큰 배와 거기서 죽은 생명들을 기어코 기억하고 또 말하는 것은 내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겨우 쓴다.
늙은이의 춘수(春瘦)는 어수선하다.

새벽의 꿈에, 배 빠진 맹골수로에도 4월이 와서 봄빛이 내리는 바다는 반짝이는 물비늘에 덮여 있었다. 

그 바다에서 하얀 손목들이 새순처럼 올라와서 대통령의 한복 치맛자락을 붙잡고,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장관 차관 이사관 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우는데, 바짓가랑이들은 그 매달리는 손목들을 뿌리치고 있었다. 

그 바다는 국가가 없고 정부가 없고 
인기척이 없는 무인지경이었다. 


손목들은 사람 사는 육지를 손짓하다가 손목들끼리 끌어안고 울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하였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5월에 김영랑(金永郞, 1903~1950)은 모란이 다시 피는 5월을 기다리듯이 나는 생명들이 바다 밑으로 뚝뚝 떨어져버린 4월에, 앞날에 다시 올 4월을 기다리면서 나의 악몽을 달래고 있다. 그러하되 그 새로운 4월은 봄이 오듯이 꽃이 피듯이 날이 흐려서 비가 오듯이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내가 모르지 않는다.  


풍랑이 없는 바다에서 정규 항로를 순항하던 배가 갑자기 뒤집히고 침몰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원인과 배경이 불분명한 사태는 망자亡者의 죽음을 더욱 원통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공허한 것으로 만든다. 

망자들이 하필 불운하게도 그 배에 타서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아무런 정당성의 바탕이 없이 우연히 재수좋아서 안 죽고 살아 있는 꼴이다. 

삶은 무의미한 우연의 찌끄레기, 잉여물, 개평이거나 혹은 이 세계의 거대한 구조 밑에 깔리는 티끌처럼 하찮고 덧없다. 

이 사태는 망자와 미망자(未亡者)를 합쳐서 모든 생명을 모욕하고 있고, 이 공허감은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 우발적이라는 공허감, 

보호받을 수 없고 기댈 곳 없다는 불안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허무주의로 몰아가고, 

그 집단적 허무감은 다시 정치적 공략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선박 불법증축, 과적, 고박 불이행, 평형수 부족, 급변침 등이었다는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결국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배가 빠졌다는 것이다. 밥을 굶으면 배가 고프고, 심장이 멎으면 사망에 이른다는 말이다. 이 사태가 선박의 복원력을 검증하는 물리실험이라면, 정부의 발표는 나무랄 데 없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는 물리실험이 아니다. (…)

한국 국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정치권력에 속아왔다. 


불신은 사람들의 정치정서 속에서 허무주의로 자리잡았고, 그 허무주의는 일상화된 악(惡)이 서식하는 토양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앙이 아니라, 그 일상화된 악의 폭발인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 분담함으로써 시대의 난제를 극복해본 역사적 경험이 전무하거나 매우 빈곤하다. 

고통은 늘 고통을 당하는 계층에게 전가되었고 기회와 정보와 우월적 지위는 늘 강하고 러키한(lucky) 자들의 몫이었다. 


이 불신과 고통분담에 대한 역사적 경험의 빈곤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데, 정부가 제시한 이 무력하고 자기방어적인 ‘시행령’은 갈등과 불신에 기름을 부어서 불을 붙이는 꼴이다.
지금 정부는 공적 개방성을 상실하고 짜장면협회나 상가번영회처럼 사인(私人)의 이익집단 같은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몇몇 고위 관리들이 문책 경질된 것은 책임을 지는 행위가 아니다. 고위 공직의 자리가 개인의 사유재산이 아니고, 잘나가는 공무원의 물좋은 취직 자리가 아니며, 천하의 공물(公物)일진대 그 자리를 내놓는 것이 어떻게 사태를 책임지는 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지게꾼이 지게를 진다는 말이 아니다. 자리를 내놓고, 감옥에 가고, 할복을 하고 분신을 해서 지옥에 간들 이미 그 해악이 세상에 퍼져버린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책임을 진다’는 행위는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말은

쫓겨났다는 뜻이고, 그 쫓겨남으로써 

아무것도 책임지지 못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빈말이다. 그 공허함은 “세월호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침몰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로되,
하나 마나 한 말이다.
“기업이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말도 모두 그러한 것인데, 그 명석함에 가려진 폭력성이 세상의 강자로 행세하고 있다.

주어와 술어를 가지런히 조립하는 논리적 정합성만으로는 세월호 사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진상을 밝힐 수도 없을 것이다. 또 이 사태를 객관화해서 3인칭 타자의 자리로 몰아가는 방식으로는 이 비극을 우리들 안으로 끌어들일 수가 없다. 

나는 죽음의 숫자를 합산해서 사태의 규모와 중요성을 획정하는 계량적 합리주의에 반대한다. 나는 모든 죽음에 개별적 고통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값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과 죽음은 추상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대체가 불가능한 일회적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다. 
그래서 한 개인의 횡사는 세계 전체의 무너짐과 맞먹는 것이고, 더구나 그 죽음이 국가의 폭력이나 국가의 의무 불이행으로 비롯된 것이라면 이 세계는 견딜 수 없는 곳이 되고 말 것인데, 이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체제가 전체주의다. 이 개별적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어떤 아름다운 말도 위안이 되지 못하고 경제로 겁을 주어도 탈상은 되지 않는다.


국가개조(國家改造)는 

안전관리와 구조구난의 지휘부와 조직을 

재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뉘우침의 진정성에 도달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은 좀처럼 개조되지 않는다. 다만 뉘우침의 진정성 위에서 자신을 바꾸어나갈 수 있다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뭉개다가 무너질 뿐이다.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에 수많은 나라들이 멸망했다. 
그 나라들은 대부분 반성하는 기능의 마비, 무책임, 무방비 때문에 망했고 여러 나라들이 줄줄이 망해가는 꼴을 보면서 그 뒤를 따라서 똑같이 되풀이하다가 망했다. 


고통의 맨살, 죄업의 뿌리와 직면하기를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뉘우침의 진정성과 

눈물의 힘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하략)


잊지 않겠다는 약속,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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