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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디자인

음식은 지금 새로운 패션

음식은 지금 새로운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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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음식은 새로운 ‘패션’이자 라이프스타일의 주동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먹거리에 쏠려 있는 듯 합니다. 유튜브를 봐도, 인스타그램을 봐도 다들 미식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옷이나 가방이나 운동화가 아니라, 즐겨 가는 레스토랑이나 좋아하는 음식으로 나를 표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스마트폰 사진첩에도, 인스타그램에도 음식 사진이 한가득입니다. 저는요,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나오는 ‘오늘의 메뉴’를 모으는 버릇이 있습니다(식당 메뉴판 들고 오는 거 아니고요). 나중에 혼자 보려고 ‘지금까지 내가 먹은 것들’이란 폴더에 따로 모아두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 음식은 여행이나 엔터테인먼트 등의 이슈로 넘어가기 위한 가장 친숙한 매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은 <미식 예찬>이라는 책에서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고 했는데, 요즘이 정말 그런 세상입니다. 저 역시 89%쯤 동의합니다. 때론 먹는 일에도 신념이 필요하니까요. 예를 들어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체질이나 건강상의 이유도 있지만 신념과 정치적인 소신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2019년을 ‘비건의 해’로 선언할 만큼 최근 전세계적으로 채식주의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채식 인구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식단을 제한하는 비건을 포함해 1억 80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런 채식주의 열풍은 육식이냐 채식이냐의 논쟁을 떠나 식문화의 다양성 존중과 더불어 우리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카롤린 니블링Carolien Niebling, ‘미래 소시지The Sausage of the Future’, 2017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사람들은 음식 자체뿐만이 아니라 먹는 행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이팅 디자인 & 익스피어리언스eating design & experience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세계 최초의 ‘이팅 디자이너’라고 명명한 네덜란드 출신의 마레이에 보헬장은 이팅 디자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이팅 디자인이 푸드 디자인보다 광의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푸드 디자인은 문자 그대로 음식과 관련된 디자인이지만 이팅 디자인은 파종과 추수, 식문화, 먹거리, 정치, 식사 예절, 음식을 둘러싼 다양한 풍경과 감각을 아우른다. 다시 말해 먹는 행위와 관련한 다양한 의식을 포함하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음식은 우리 생활에서 가장 큰 소비를 차지하는 대량생산품임에도 오랫동안 디자인이 간과되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놀랍습니다.

카타리나 윙어르Katharina Unger, ‘펀지 뮤타리움Fungi Mutarium’


현재 이팅 디자인 & 익스피어리언스는 유럽, 특히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마레이에보헬장은 “네덜란드는 디자인 문화가 매우 고차원적이고 비평적인 데 반해 식문화 수준은 낮은 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라는 흥미로운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풍성한 식문화를 자랑하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미식에 대한 탐닉으로 실험적인 이팅 디자인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사실 식문화만큼 바꾸기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전통과 구체제를 전복하려 했던 이탈리아 미래파가 “파스타는 비관주의와 과거에 대한 집착을 부추긴다”면서 파스타 퇴출을 내세웠을까요. 하여튼 새로운 실험은 때론 불리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촉발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네덜란드에는 특히 새로운 식경험을 제안하는 레스토랑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식문화와 관련된 학과는 식품영양학과 혹은 요리학과가 주를 이루지만 최근에는 디자인학부 안에 식문화와 디자인을 접목한 전공을 설립하는 추세입니다. 이팅 디자인과 관련해서는 마레이에 보헬장이 이끄는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의 푸드 논 푸드학과가 유명합니다.


앞서가는 이팅 디자이너들은 이미 ‘미래에 식량이 고갈되면 무엇을 먹어야 하나’, ‘동물처럼 야생 상태로 음식을 섭취하는 방법은 없을까’, ‘엄마의 손맛을 기술로 후세에 물려줄 수는 없을까’, ‘요거트만으로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는 없을까’ 등의 어젠다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는 SF를 방불케 하고 디자이너가 아니라 미래학자나 생물학자나 의사가 하는 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협업 범위가 광범위합니다. 즉 음식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미래에 누구보다 한발 앞서가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팅 익스피어리언스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닌가 싶습니다.

월간디자인 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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