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가정에 주목하라
지난 8월 5일, 상암동의 한샘 사옥 2층 대강당에서는 맞벌이 가정의 실태를 분석하고 새로운 삶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맞벌이 라이프스타일 세미나: 맞벌이 부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열렸다. 가족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위다. 그리고 맞벌이 부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가정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보편화된 사회의 기본 구성단위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세미나는 바로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이번 행사는 크게 다섯 세션으로 나눠 진행했는데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송다영 교수는 ‘격변하는 현대사회, 맞벌이 부부가 나아갈 길을 묻다’라는 제목 아래 IMF 사태 이후 급변한 사회 구조와 전업주부의 쇠퇴, 맞벌이의 증가, 1인 가구의 증가 등 가족 구조의 다양화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그는 ‘자본주의의 고도화나 고령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속도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서구 국가의 경우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초고령화가 한국에서는 불과 9년 만에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단적인 예. 이처럼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가족의 형태 역시 진화했지만 의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가사 분담에서 여전히 남녀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는 시대와 삶의 형태가 급변했음에도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우리의 통념 속에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송다영 교수는 한국처럼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사회에서는 부부의 관계 향상을 위한 상호 간의 배려가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구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 학과 정경숙 교수는 ‘새로운 삶의 질서, 맞벌이 라이프스타일을 고민하다’를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그는 2016년 한샘 디자인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서울시 아파트 거주 한 자녀 맞벌이 가정의 주생활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현재 맞벌이 가정이 처한 문제를 여섯 가지로 구분했다. 또한 가족의 생애 주기별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제품, 단품이 아닌 인테리어 패키지로서 조화로운 가구 및 소품, IT, 가전, 가구, 인테리어가 하나로 통합된 스마트홈 등 맞벌이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세 가지 인테리어의 방향성도 제시했다. 즉 새로운 맞벌이 라이프스타일이 등장함에 따라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후 서울대학교 아동 가족학과 진미정 교수와 연세대학교 아동 가족학과 김명순 교수, 연세대학교 실내건축학과 이현수 교수의 발표가 이어졌는데 이들은 맞벌이 가정을 주제로 그동안 진행했던 연구 과제의 중간 과정을 공유했다. 이들은 시대가 복잡하고 치열해지면서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데에서도 치밀하고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번 세미나에서는 디자인이야말로 이 전략의 수행을 돕는 최고의 파트너이자 가정을 지키는 파수꾼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변화하는 시대의 초상에서 찾은
공간 디자인 트렌드 4
디자인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 안에 담길 정신적 요체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디자이너의 선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한샘 맞벌이 라이프스타일 세미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실제로 한샘은 이날 발표한 전문가들의 분석을 토대로 공간 및 제품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디자인 연구에 힘쓰고 있는 브랜드의 지향점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들이 전문가 5명과 리서치하고 분석한 내용 중 디자이너에게 도움이 될 만한 네 가지 팁을 골라 소개한다.
1. 부부의 공간은 부부에게
맞벌이가 일상화된 오늘날 유독 한국 가정에서만 두드러진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자녀와 동반 취침하는 비율이 유독 높은 것. 한샘 디자인연구소와 정경숙 교수는 2016년 서울 및 수도권에서 66~99㎡ 대 아파트에 살고 자녀가 1명인 맞벌이 가정 41가구를 대상으로 리서치를 진행했는데 조사 대상 가운데 무려 58%가 온 가족이 한 공간에서 취침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낮 시간에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맞벌이 부부의 심리적 죄책감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부부 중한 사람이 침실 바닥에서 수면을 취하거나 싱글 침대를 하나 더 붙여서 좁은 침실을 만들곤 한다. 이는 자녀의 독립심을 키워주는 데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부부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재충전하는 공간이 부재하다는 문제점이 되기도 한다. 문제에 대한 본질적 해결책은 제도 개선과 사회적 인프라 구축에 있겠지만, 어떻게 부부의 생활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는 디자이너도 동참해야 한다.
2. 길 잃은 거실과 부엌의 패러다임
맞벌이 가정의 생활 환경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하나의 공간에 여러 기능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중 가장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공간은 거실이다. 실제 조사 결과 거실은 자녀의 연령에 따라 놀이방에서 학습 공간, 가족의 공동 휴식 공간, 식사 공간 등으로 다양하게 진화했다. 복합적 성격을 띠는 또 다른 공간은 바로 부엌이다. 예전에는 주방은 주부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맞벌이하는 주부는 더 이상 주방을 자신의 공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허물어진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나 문제는 식사 공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오늘날 부엌은 일상용품의 수납공간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시대상을 반영해 공간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3. 물건이 아닌 사람이 주인이 되는 집
“Less, but better.” 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이 말은 디자인에 대한 태도일 뿐 아니라 우리가 갖춰야 할 삶의 태도다. 한 세기 넘게 지속된 소비의 종용은 물질의 풍요를 저주로 바꿔놓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주거 공간이 사물에 ‘포위되는’ 기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주거에서 수납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물건이 앗아간 주거의 주권을 사람에게 돌려놓기 위해 디자이너는 혁신적인 수납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4. 자녀와 함께 성장하는 방
자녀의 방만 큼 기능이 혼재된 공간도 드물다. 오늘날 자녀를 둔 맞벌이 가정의 문제는 아이는 자라지만 자녀의 방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곳에는 새로운 물건들이 적재될 뿐이다. 맞벌이 부부의 가장 큰 화두가 자녀 교육임에도 어떤 공간이 교육과 양육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김명순 교수는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겪는 경험의 질, 강도, 지속성, 방법적 적절성, 시기적 적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양육이 중요해졌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원칙은 자녀의 공간을 구성할 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즉 아이의 성장 주기별 변화와 아이가 가진 고유의 정체성을 면밀히 관찰하고 이에 맞는 공간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해졌다.
맞벌이 라이프스타일 세미나의
말.말.말.
세미나에 참석한 5명의 교수들은 자신의 전문 지식과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벌이 가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설파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디자이너로서 인사이트를 얻을 만한 이날의 발표를 발췌, 요약했다. 한샘 디자인연구소는 이번 세미나의 영상 풀 버전을 네이버 TV를 통해 공개했으니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면 시청하기를 권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테리어 디자인은 어떠해야 할까? 보이는 아름다움을 넘어 즐거움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삶을 바꾸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성공으로 가는 ‘내일의 집’이 될 수 있다. 아이의 꿈을 지원하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집, 가족이 함께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만드는 집, 부부가 재충전을 통해 꿈을 실현하는 집, 이러한 가정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테리어 디자인의 새로운 기능이 필수적이다.
자주 사용하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품을 구분하여 처분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리 정돈을 잘하는 것은 성공의 필수 조건이다. 물건에 내준 자리를 찾고 사람이 주인공인 집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가정의 질서를 되찾을 수 있다.
글 최명환 기자
자료제공 한샘
https://www.hanssem.com/main/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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