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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감동으로 읽는 밥벌이의 역사

조회수 2021. 4. 23.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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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본읍 김좌수가 흥부를 불러 하는 말이 “돈 서른 냥을 줄 것이니 내 대신 감영에 가서 매를 맞고 오너라.” 흥부 생각하되 ‘서른 냥을 받아 열 냥 어치 양식 사고 닷 냥 어치 반찬 사고 닷 냥 어치 나무 사고 열 냥이 남거든 매 맞고 와서 몸조섭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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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매 맞을 몸’을 거래하는 이 안쓰러운 대화는 조선시대 한글 소설 ‘흥부전’의 한 대목이다. 여러 사료에 따르면 당시 일용 노동자 하루 임금은 약 스무 푼. 한 냥이 100푼이니, 곤장 맞는 조건으로 받는 돈 서른 냥은 무려 150일 치의 임금에 해당했다. 조선시대엔 실제로 ‘맞아야 사는 사람’, 이름부터 안쓰러운 ‘매품팔이’가 존재했다. 벼랑 끝 서민들이 감내했던 이 극한 직업은 한 개인의 고달픈 인생을 넘어 당시 사회의 생활, 풍습, 법규, 문화 등을 보여준다.

『조선잡사』(민음사 刊)는 강문종·김동건·장유승·홍현성 등 4명의 한국학 연구자들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의 직업 67개를 발굴·연구해 엮은 책이다. 이중 이색적인 조선시대 ‘밥벌이’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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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이색 ‘밥벌이’

■ 신부 도우미 ‘수모(首母)’ 

수모는 ‘머리 어멈’을 이르는 수식모(首飾母)의 준말이다. 지금의 헤어 디자이너다. 궁중 여성들이 머리에 착용하는 가체를 손질한 사람도 이들이었다. 인기 많은 수모를 부르는데 뒷돈이 오가는 부정이 횡행하자 정조가 가체 사용을 금지하는 법령을 내리기도 했다. 


■ 변방 가사 도우미 ‘방직기(房直妓)’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하면 1년 동안 의무적으로 최전방인 함경도 등지에서 복무해야 했다. 이때 방직기를 한 명씩 배정해 함께 숙식하며 도움을 받도록 했다. 당번병이자 가사 도우미였던 셈이라 적지 않게 로맨스가 싹트기도 했다고 한다. 


■ 장거리 연락책 ‘보장사(報狀使)’

세종실록에는 잘 달리는 무사들을 고을에 번갈아 배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을과 고을을 오가며 공문을 전달하던 직업이 보장사였는데, 대개는 가난한 아전들 가운데 임명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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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건너지기 ‘월천꾼(越川軍)’

길손을 등에 업거나 목마를 태우고 사내를 건너게 해주고 품삯을 받던 사람들이다. 섭수꾼(涉水軍)이라고도 했다. 가마나 무거운 짐을 옮겨 주기도 했다. 


■ 극락왕생 비는 ‘매골승(埋骨僧)’

시신을 수습해 주는 승려를 이르는 매골승은 고려조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고려말 요승으로 불렸던 신돈도 매골승이었다고 한다. 


■ 분뇨처리 ‘예덕(穢德)선생’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 처리하는 분뇨 처리업자를 말한다. 더럽지만(穢) 덕(德)이 있다는 뜻이었다. 놀랍게도 당시 이 직업의 연봉이 60냥이었다고 한다. 18세기 한양의 괜찮은 집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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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읽어주는 ‘전기수’

소설책 읽어주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을 전기수라고 했다. 이들은 저잣거리에 좌판을 깔고 공짜로 소설을 읽어 주며 일부 푼돈을 챙기다가 나중에는 일정한 돈을 받고 부유층을 상대하기도 했다.


■ 군대 대신 가는 ‘대립군(代立軍)’

조선시대에는 16세부터 60세까지 양인 남성은 모두 군사훈련을 받고 유사시에 전장터로 동원되었다. 이 때 품삯을 받고 군역을 대신하는 사람을 대립군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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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과학수사대 ‘오작인’

죽은 변사체를 검시했던 전문가를 오작인 또는 오작사령이라고 했다. 오작인은 해부 대신 상흔 등을 꼼꼼히 관찰해 사인을 확인하곤 했다. 연고가 없는 시신을 처리하는 일까지 맡아 천시받는 직업이었다.


■ 부동산 중개업자 ‘집주름’

조선시대 집주름은 정보 독점 하에 장사하는 것이라 꽤 인기 직종이었다. 중개 수수료도 천냥을 매매하고 10%인 백냥을 수수료로 받았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까지 명맥을 유지하다가 복덕방에 역할을 물려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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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좀비물’로 인기를 끌었던 화제의 드라마 〈킹덤〉에서 주인공 세자 못지않은 무술 기량을 뽐냈던 ‘영신’. 그의 직업은 ‘착호갑사(捉虎甲士)’였다. 산속에서 목숨 걸고 호랑이를 잡는 특수 부대 출신이었으니, 쉴 새 없이 좀비를 처치하는 실력이 납득되는 설정이었다. 누군가의 생존, 누군가의 탐욕 속에 탄생하고 스러져간 수많은 직업의 이야기는 색다른 방식으로 조선을 다시 보게 한다. 


이규열(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참고도서] 조선잡사 | 강문종, 김동건, 장유승, 홍현성 | 민음사

※ 머니플러스 2021년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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