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출간된 어느 97세 할머니의 일기
어느 97세 할머니의
일기가 최근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제목은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울 겨울'
입니다.
강원도 양양
송천마을에 사는
이옥남 할머니의
1987년부터 2018년까지
일기 중 151편을
묶어낸 책입니다.
1922년에 태어난
이 할머니는 7살 처음
밭일을 시작했습니다.
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여자가 글 배우면
시집가서 편지해
부모를 속상하게 한다는
부모님의 만류에
오빠 어깨너머로
글자를 익혔습니다.
아궁이 앞에 앉아
재에다가 몰래 '가나다'를
연습해볼 뿐이었습니다.
17살 시집을 간 뒤에는
자식 돌보랴
시집살이에 시달리랴
공부는 꿈도 못 꿨죠.
남편을 먼저 보내고 어느 날
할머니는 도라지를 팔아
공책을 한 권 샀습니다.
글씨를 이쁘게 적고 싶어
날마다 연습했죠.
"글씨가 삐뚤빼뚤
왜 이렇게 미운지…"
그렇게 할머니의
일기가 시작됐습니다.
조용한 아침이고 보니
완전한 봄이구나.
산에는 얼룩 눈이
여기저기 쌓여 있는데
들과 냇가에는 버들강아지가
봉실봉실 피어 있고
동백꽃도 몽오리를
바름바름 내밀며
밝은 햇살을
먼저 받으려고 재촉하네.
일기장에는
할머니가 보고 느낀
세상이 빼곡하게
적혀있습니다.
매 계절 바뀌는
자연을 묘사한 내용은
일기라기보다는
시에 가깝죠.
자식을 향한
그리움을 적어낸
부분도 있습니다.
누가 집으로 들어가기에
큰딸이 온 것 같애서
얼른 일어서서
집으로 오는데
진짜 딸이 왔네.
정말 반가웠지.
그런데 금방 가니
꿈에 본 것 같구나.
자식이 뭔지
할머니는 자식들이
늘 보고 싶고
늘 궁금합니다.
100년 가까운
시간을 살았어도
여전히 성가신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치매 검사한다며
할머니를 찾아와
지금이 몇 년도인지 묻던
보건소 직원 이야기
끝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한 마디가 적혀있습니다.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90년이 넘도록
호미를 잡았지만
할머니의 하루는 여전히
바쁩니다.
복숭아꽃 피면
호박씨 심고,
뻐꾸기가 울기 전에는
깨 씨를 뿌려야 합니다.
할머니는
개구리처럼 방안에
가만 누워있는
겨울이 가장 싫다고
말합니다.
나뭇잎도 피고
풀도 솟아올라
할머니의 손이 바빠지는
봄이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올 가을에는
할머니의 일기장에
어떤 이야기가
적힐까요.
할머니의 소박한 일상이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조하영 인턴기자/
류혜경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