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 화폐가치 반토막..ㅇㄱㄹㅇ?
갑오개혁이 한창이던 1894년.
은을 가치의 기준으로 하는
화폐제도인 은본위제가
도입됐습니다.
신식화폐발행장정
(新式貨幣發行章程)을 통해
구리로 만들어졌지만
은화를 기준으로 가치가 정해지는
백동화와 적동화도 함께
주조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주조 비용에 차이가 커
실질적으로 발행된 화폐는
백동화가 86%로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정확히 10년 뒤
백동화의 화폐가치는
1894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는데요.
10년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9세기 말 조선은
안팎으로 근대화에 대한
요구를 받고 있었습니다.
외세는 조선에
개방을 내세우며
침략 욕심을 보였고
내부에서는 부정부패로 인해
일반 백성의 삶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조선 정부는 갑오개혁을 통해
근대적 국가로 전환하려 했으나
만연한 조세 포탈과
심각한 정부 부채 때문에
개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화폐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백동화와 적동화 등
구리로 만들어진 화폐는
만드는 비용이 적으면서도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어
국가 차원에서는
이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백동화 주조는
액면가의
60% 정도
이익이 남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예측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예측은
크게 빗나갔습니다.
새로운 화폐를
널리 유통하기 위해
민간인도 특허권료만 내면
백동화를 주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위조화폐 발행을
크게 늘리는 결과를 낳았죠.
백동화 주조 권한이
정부에서 왕실로 넘어간 것도
화폐 발행이 크게 늘어나는데
일조했습니다.
갑오개혁의 개혁 비용으로
1895년 처음 발행한
백동화의 총금액은
약 16만원이었으나
왕실의 수입원이 된 1899년엔
8배에 달하는 약 130만원이
발행됐습니다.
백동화가 남발되자
화폐 가치는
자연스레 떨어졌습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은
물가가 상승함을 뜻합니다.
곡물 가격이 크게 뛰어
상공업자는 몰락했고
일반 백성은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책이 잘못됐을 때
큰 타격을 입는 쪽은
결국 서민들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