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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말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

왜 칸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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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동안 쌓아놓은 업적이 없어서 불안하다면
앞으로 10년은 이 사람을 공부하면서 나의 전성기를 준비해 보자.

1.혼자만의 10년이 필요한 이유

우리는 서양 철학자 칸트에 관해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아하거나 혹은 싫어할 수도 있다. 윤리 과목에 빠짐없이 등장하며 ‘도덕 법칙’을 외우도록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철학을 생산하기 시작한 최초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를 알든 모르든 우리는 그 덕분에 지금 이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모든 건 그가 숙고의 시간을 보내며 고민한 연구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교수가 된 이후 10년 동안 아무런 업적도 생산하지 못했다. 57세가 되어서야 발표한 야심작 <순수 이성 비판>, 그리고 이후 10년간 발표한 3대 비판서와 중요한 저작들을 쏟아내면서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렇게 ‘칸트 이전과 칸트 이후’라는 표현이 생겼다.

위대한 사람의 업적은 한 번에 탄생하지 않으며, 업적은 누구에게나 숙고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만일 앞으로의 10년 동안 내가 하게 될 생각이 칸트를 공부하기 이전과 이후로 달라진다면? 공부해 볼 만 하지 않을까.

2.칸트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a.k.a 철학의 코페르니쿠스)

물론 칸트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순수 이성 비판>, <실천 이성 비판>, 그리고 <판단력 비판>. 삼십 권도 아닌 세 권을 공부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 그가 하는 이야기는 전부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천동설을 뒤집어 지동설을 제시한 코페르니쿠스 예로 들어보자. 코페르니쿠스 이전, 사람들은 태양을 비롯한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이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으로. 정확히 둘의 관계가 전도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금은 관측이 가능하기에 쉽게 이해하고 믿는 사실이지만, 관측이 어렵던 시대에는 이해 역시 어려웠다.


그래서 칸트의 인식론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도 코페르니쿠스처럼 바꾸어 놓으면서 시작이 된다. 칸트 이전,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믿음처럼 대상(사물)을 중심으로 주체를 생각해왔다. 주체가 대상을 인식하든 말든 관계없이 그 자체로 있는 것이다.

이때 인식은 대상을 비추는 일에 불과하다. 마치 거울이 사물을 비추는 것처럼 마음이 대상을 반사하는 가운데 인식이 이루어진다. 요컨대 칸트 이전의 인식론에서는 마음의 모델을 거울에 두었다.

특히 고대인들은 마음을 거울과 유사한 어떤 것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거울을 모델로 마음을 이해할 때는 인식과 관련된 모든 문제가 ‘깨끗하게 되기(정화)’의 문제로 귀착한다. 깨끗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일차적 조건이 된다. 

반면 마음이 탐욕이나 편견에 의해 더럽혀져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마음에 비추어지는 사물의 형상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고대인은 인간이 빠져드는 모든 오류와 죄악은 여기서 연유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칸트에게서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여기서는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우위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지각은 물론 대상 자체의 성립 조건이 주체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상은 주체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물 자체일 수 없다. 대상은 오로지 주체와의 관계에서만 대상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서 현상에 불과하다. 

이런 변화는 마음 모델의 혁신에서 비롯된다. 칸트에게 마음은 더 이상 거울이 아니라 어떤 기능들의 집합체다. 마음은 감성, 상상, 기억, 지성, 이성과 같은 여러 인식능력들로 이루어진 어떤 장치물과 같다. 이 장치물은 그저 수동적으로 대상을 반사하기만 하는 기계가 아니다. 대상을 적극적으로 종합해내는 정보처리 기계 혹은 표상을 능동적으로 생성해내는 정보발생 장치와 유사하다.

과거에 진리란 대상과의 일치 여부, 즉 정확성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의 활력이다. 표상을 생산하고 대상을 구성하는 인식능력들의 원활한 기능과 자유로운 유희 가능성에 진리가 진리일 수 있는 마지막 조건이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칸트를 알아야 우리는 우리 생각과 우리 마음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3.이상적인 삶을 위한 공부

행복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삶이다. 칸트 역시 행복에 가까워지는 데에 기여한 사람이다. 그는 우리 안의 도덕성이 커질수록 기쁨을 누리고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칸트 이전에 선(goodness)과 법에 대한 인식은 선이 중심이었고 법이 그 주위를 도는 것이었다. 이때 법이란 이상적 삶의 원리인 선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칸트 이후 선과 도덕은 서로의 위치를 바꾸게 된다. 사회 구성원이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칙을 정하고 그것에 절대적인 구속력이 부여되면서 법에 어긋나는 것은 악으로 보게 되었다.

이상적인 삶과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기준은 종교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법은 명확하다. 또한 칸트가 말하는 자유란 개인의 자유가 그 중심에 있다. 스스로 우리가 지켜야 하는 규칙을 제정하고, 제정한 법칙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능력. 따라서 자유 의지로 만들어진 법을 중심에 놓고 선을 추구할 때 행복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쁜 사회일수록 도덕성과 자유, 행복의 거리는 멀어진다. 규칙을 지킬수록 손해보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면 그 사회의 법은 개인의 자유를 반영하지 못함을 의미하고, 행복한 사회와도 멀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칸트는 생각의 태양을 바꿨다. 이 세계가 보여주는 것에 의해 내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의해 이 세계가 달라진다는 관점으로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은 우리 마음 안에 있기 때문에 인식에 대한 모든 물음은 우리 마음을 해부해야만 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칸트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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