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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야기가 아름다운 이유

조회수 2019. 3. 17. 01: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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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한 민준에게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난 친구 소희가 있다. 한 날 민준은 ‘음수와 양수’에 관한 수업을 들으며 소희와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 하게 된다. 수업 내용은 이랬다.


삶이 수학이 된다면?
관계의 음수 양수

“원래 수에는 ‘음수’ 개념 없이 양수만 있었죠.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음수의 개념이 정착했어요. 원점을 0이라고 할 때 오른쪽으로 가는 것을 +1, +2, +3 왼쪽으로 가는 것을 -1, -2, -3으로 나타내면서부터 음수가 드디어 수학에 발을 붙이게 된 거죠. 2-2=0이라는 걸 생각하면 보편적인 개념을 생각할 수 있어요. 

2를 얻었다가 2를 잃으면 본전이죠. 성취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내 성취를 위해 노력한 결과 2만큼의 성과를 얻었다면, 그것으로 인해 2만큼 잃는 게 생기게 마련인 것처럼요. 일에서 성공을 얻는 만큼 가족과의 시간을 잃는 경우도 그렇죠”


“얻는 만큼 잃는 거구나. 연인이 되려면 친구는 잃는 수밖에…”


다음 학기 민준은 소희와 연인이 되었는데 둘은 친구일 때와는 다르게 자주 싸웠다. 그리고 결국 헤어졌다. 민준은 군대에 다녀와서도 소희를 잊지 못하게 되는데 그 이유를 고심하던 중에 ‘2-2=0’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의심을 품게 된다.

역사 속에 민준처럼 의심을 품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 탈러는 ‘2-2=0’이 심리학적으로 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연히 만 원을 주었을 때의 기쁨보다는 만 원을 잃었을 때의 상심이 더 크다는 것이다. 소희와 헤어져도 그저 ‘0’의 상태가 될 것 같았던 민준은 0이 아닌 마이너스 쪽으로 한 없이 추락했다.

삶을 찾는 방법으로서의 수학

내가 배웠던 수학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우리는 왜 수학과 삶을 연결해 생각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을까. 하루에 여섯 장씩. 매일 많은 양의 문제를 풀게 하는 데에만 몰두해 문제를 검토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학을 공부하는 데에 중요한 건 검토하고 반성하는 단계다.

그리스인들에게 수학은 본질을 추구하는 학문이었고, 그들은 수학을 자연스럽게 철학과 연계했다. 수학을 통해 진정한 가치를 찾으려 했고, 그것이 곧 진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Euclid가 집필한 수학서 『원론Elements』은 이렇게 시작한다. "점은 부분이 없다."

존재가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발상이 들어있다. 다시 말해 이 문장은, 수학은 ‘없는 것에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나아간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으며, 부분이 있는 모든 것은 수학의 대상이 된다는 보편성을 드러낸다

없는 것에서 시작한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이런 점, 선, 면이 모여 수학적 연구 대상으로 서의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 점의 이야기는 수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경의 창세기에서도 ‘공허’, 즉 ‘없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천재성, 가능성, 잠재력. 나만 없다고 생각하는 이것들이 사실 모두에게도 없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사실, 이것만 알아도 새로운 시작 앞에 두려움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우리 관계의 음수와 양수가 궁금한 분들에게 이 영상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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