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가수 현실은 고아가 샤넬을 성공시킨 비결

조회수 2020. 1. 2.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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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보다 현실이 더 위대해 질 수 있다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가 ‘잠자리에 들 때 몸에 걸치는 유일한 옷’이라는 말로도 유명한 샤넬 No. 5는 디자이너 이름을 내세운 최초의 향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샤넬은 왜 향수 이름에 숫자를 넣었을까? 

여러 가지 추측이 있습니다. 향수의 샘플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향의 번호가 5번이어서 그랬다는 설과, 샤넬의 행운의 숫자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샤넬의 애칭은 ‘코코’

1883년 프랑스 소뮈르에서 태어난 샤넬은 12살에 어머니를 잃은 뒤, 아버지에게도 버려져 자매들과 함께 보육원과 수도원을 전전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후 열여덟 살이 된 그녀는 고아원을 나와 보조 양재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뮤직홀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실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의 어린 시절 꿈은 오페라 가수였습니다.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를 즐겨 불렀던 샤넬은 이 노래에서 ‘코코’라는 애칭을 얻어 코코 샤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기회를 잡지 못해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샤넬은 당시 교제하고 있던 ‘에티엔 발장’의 도움을 얻어 모자 디자이너로서 ‘샤넬 모드’라는 그녀의 첫 브랜드가 탄생하게 됩니다. 

우리가 몰랐던 샤넬의 라이벌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로 흔히 코코 샤넬을 떠올리지만, 그녀를 능가하는 라이벌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는 1876년생으로, 샤넬과 같은 시대를 산 여성 디자이너라는 점에서 종종 비교됩니다. 

그러나 내성적이었던 성격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코코 샤넬보다 상대적으로 패션 사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녀 옷의 특징이 샤넬이 추구했던 것과 닮은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그것인데요. 

그녀는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코르셋과 패드와 같은 재료들은 인위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여성의 옷에서 모두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녀는 샤넬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했지만, 20세기 위대한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비오네를 자신의 스승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거리를 점령한 샤넬슈트

‘영원한 스타일’이라 불리는 샤넬 슈트의 역사는 192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샤넬 슈트란 깃이 없는 카디건에 재킷에 무릎길이의 스커트를 매치한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샤넬의 시그니처인 인조 진주 목걸이와 작은 모자가 코디된 “완벽한 샤넬룩”은 1920년대와 30년대 프랑스 거리를 샤넬룩으로 물들였습니다. 

이후 1957년에는 샤넬 슈트로 인해 미국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패션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슈트 한 벌에는 다양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트위드 재킷의 스티치, 브레이드(장식 끈) 테두리, 호주머니, 장식단추 등 이 모든 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축적된 샤넬의 노하우와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옷에 움직이고 걷고 일하고 생활하는데 편리함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코코 샤넬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흰색 카멜리아와 퀼팅무늬

샤넬의 시그니처하면
떠올려지는 것은 무엇인가요?

대표적으로 카멜리아(동백꽃), 이미테이션 진주, 퀼팅, CC마크, 향수에 붙어있는 5번이라는 숫자, 등 수많은 디자인 아이콘이 있습니다. 1913년 샤넬에 처음 등장한 카멜리아는 CC마크 못지않은 샤넬의 유명한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멜리아의 기본형은 하얀색 동백꽃으로, 1930년대 코르사주, 머리 장식, 커프 링크스 등 다양한 형태로 발표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후 샤넬의 트레이드마크로 우뚝 서게 됩니다. 현재는 쇼핑백이나, 향수 시향에 쓰이는 시향 지 등에 인쇄되어 널리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마틀라세’는 프랑스어로 ‘퀼팅’이라는 뜻으로, 코코 샤넬은 경마장 기수가 입는 체크무늬 재킷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지는데요. 처음에 마틀라세는 가방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가공이었지만, 이후 그 자체로 샤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샤넬의 전설 칼 라거펠트

‘패션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히며 지금까지 ‘샤넬’과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한 인물이 있습니다. 

1982년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입성한 칼 라커펠트는 지금까지 37년간 샤넬의 수장으로 전 세계 패션계를 장악했는데요. 코코 샤넬의 사망 이후 방황을 겪으며 잠시 주춤했던 ‘샤넬’을 라거펠트는 그만의 독특만 아이디어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대담한 혁신과 새로운 소재를 이용해 샤넬이 다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한 그는 샤넬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패션계의 교황’이라 불리기도 했던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그가 디자인한 옷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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