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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용산구, 용산구 문화명소 6곳!

조회수 2019. 2. 1. 10: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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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탐방 - 용산구

영험한 용의 기운을 받은 상서로운 땅 

"용산구"


용산’이란 이름의 유래를 두고 

백제 기루왕 21년에 

한강 위로 두 마리 용이 나타났다는 설화와 

용 형상의 주변 산세를 보고 

이름 지었다는 두 이야기가 전해진다. 


영물인 ‘용’을 품은 곳답게 용산구에서는 

비범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다.



114년 만에 공개된 금단의 땅 


18년11월 용산공원 갤러리가 개관하면서 114년간 굳게 닫혀 있던 주한 미군용산기지의 빗장이 열렸다. 용산기지는 1904년 일본이 용산 일대를 조선주차군사령부 주둔지로 사용하면서 출입을 금지했다. 

광복 후에는 미군이 사용중인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용산공원에 대한 공론화 계기와 시민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자 지난 8월 미군 측에 공동 전시를 제안했다. 원만한 협의 끝에 용산공원 갤러리는 용산 캠프 킴(Camp Kim)부지 내 옛 USO(미군 위문협회) 건물에 조성되었다. 

이 건물은 약 110년 전인 1908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일제강점기엔 일본군 창고 사무소로, 한국전쟁 이후부터 2018년 8월까지는 미국위문협회로 운영되었다. 이로써 근현대 역사와 함께 미군 기지 건물 중 첫 번째로 시민에게 개방한 특별한 의미까지 더해졌다. 


용산공원 갤러리에는 73년간 이어진 한미 동맹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사진, 지도, 영상 등 총 60여 점이 전시되었다.용산기지 역할, 한국전쟁 후 지난 65년간 서울의 발전과 함께한 주한 미군과의 관계와 공생 과정을 담았다. 

이는 용산기지 내 주한 미군의 삶과 기억을 존중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용산기지는 용산공원으로 바뀌는데, 용산공원 갤러리가 완전 반환의 첫 단추인 셈이다. 


앞으로 용산공원이 탄생하기까지 남아 있는 많은 ‘단추’를 잘 끼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용산구 문화 명소


용산구는 북으로는 남산, 

남으로는 한강과 맞닿아 있다. 


좋은 지리적 환경 덕에 

많은 사람이 용산구로 모였고, 

오늘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게 되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명소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 용산공예관

우리나라 전통 공예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건립했다. 


1층에는 50개 업체, 600개 품목, 1,500여 점을 전시·판매하는 공예품 판매장이 있고,2층은 전문 공예가 공방과 도자기 체험장이 들어섰다. 3층은 어르신 일자리 창출 기회를 제공하는 어르신 공방으로 꾸몄다. 도자부터 금속, 나전칠기, 한지, 자수 등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살펴보길 권한다.


o 주소 : 용산구 이태원로 274 


(2) 보광동 무후묘

보광사와 나란히 있으며, 제갈공명을 모시기에 무후묘라 부른다. 옛날 중국 상인이 한강으로 올라와 이곳을 지나면서 제갈공명을 모시게 된 것이다. 


중앙에 붉은색 도포를 입은 제갈공명 그림이 걸려 있다. 오른쪽 벽에는 묘를 지키는 수호신인 홍장군과 청장군이, 왼쪽 벽에는 당할머니와 산신이 모셔져 있다. 


o 주소 : 용산구 장문로15나길 6



(3) 서빙고동 부군당

15세기 말~16세기 초에 마을을 수호하고 주민의 안녕과 질서, 화목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제당이다. 1910년 일제가 훈련장을 만들면서 현재 자리로 옮겼다. 


본당 안에는 부군당의 주신인 이성계와 왕비 강씨, 삼불제석을 그린 무신도를 모시고 있다.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에 서빙고동부군당치성위원회 주관으로 유교식 제를 지낸다.


O 주소 : 용산구 서빙고로59길 3-6


(4) 630년 된 느티나무

용산구에 있는 보호수 열아홉 그루 중 수령이 가장 오래되었다. 이 나무 바로 뒤에 왜명강화지처비가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와 왜군 장수가 회담을 한 후 비를 세우고 백송을 심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백송은 2003년에 고사했다.


o 주소 : 용산구 효창원로8길 28



(5)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1902년에 완공한 성당은 붉은색과 회색 벽돌을 쌓아 올린 조적조 양식으로, 전체적으로 약식화한 고딕풍 외관을 갖추고 있다.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521호로 지정되었다.

1901년부터 1950년까지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안치했다. 성당 출입구 안쪽 상부에 김대건 신부의 이니셜과 생존 기간을 로마자로 새겨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o 주소 : 용산구 원효로19길 49주

(6) 효창공원

조선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묘원으로, 왕가 묘를 몇 기 더 모시며 효창원으로 승격했다. 1924년 경성부가 효창원 일부를 공원용지로 책정했으며, 1940년에 공원으로 지정했다. 


지금은 독립운동가 이동녕, 김구, 조성환, 차이석,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선생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일곱 분의 영정과 위패는 의열사에 모셔져 있다.


o 주소 : 용산구 효창동 255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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