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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빅뉴스

교회 다니는 레즈비언과 나이 든 게이

[엠빅뉴스] 퀴어축제에서 들여다 본 성소수자 속 소수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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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 교회에 다니는 성소수자도 있을까?

질문 둘. 왜 퀴어 축제에는 젊은이들만 북적일까?

지난 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 축제에 가기 전, 문득 들었던 궁금증이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의외로 답은 쉽게 나왔다. 가슴팍에 '교회 다니는 성소수자' 스티커를 붙인 사람. 성가대 복장을 하고 축제에 참가한 사람.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의 게이.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었으니까.

성소수자 속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사람들. 다른 성소수자들보다 차별과 냉대를 겹으로 받았을지도 모를 그들의 이야기를 퀴어 축제 현장에서 들어봤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

올해로 18번째. 이번 퀴어 축제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스가 있다. '기독교 성소수자'들이 마련한 부스다. 얼핏 보면 형용모순처럼 느껴지는 단어의 조합이지만, 이 부스에 서 있던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그것조차 편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에서도, 성소수자 모임에서도 차별을 받았어요"

성가대 옷을 입고 퀴어축제에 참가한 성소수자 윤혜린 씨. 그는 모태신앙인이다. 성소수자라는 자각을 일찍 했지만, 교회의 싸늘한 시선에 속앓이만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몸 담았던 선교단체에서는 '동성애는 죄'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어요. 반대로 성소수자 모임에서는 크리스천이라고 차별의 시선을 받았죠."

지금은 어떨까. 윤 씨는 여전히 성소수자 축제에 나오고, 교회도 다닌다고 한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저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양 쪽에서 대접 받지 못했던, 윤 씨가 내린 결론이었다.

또 다른 '기독교인 성소수자' A씨. 그는 아직 교회에서 '커밍아웃(자신의 성 정체성을 스스로 밝힘)'을 하지 못했다. "제가 커밍아웃을 하면 교회에서는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색안경을 끼고 좋지 않게 보실 것 같아서요. 설교를 듣는 중에 동성애에 관한 부정적 말을 자주 듣는데, 그런 선입견을 교회에서 주입하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아웃팅(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동의 없이 강제로 드러냄)이 될까봐 더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A씨의 가슴에는 '교회 다니는 레즈비언'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교회에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면 축제에 참가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 그는 어떤 기분일까.

"(기독교)부스에 있으면서 성소수자뿐 아니라 동네에서 볼법한 아주머니·아저씨들도 자녀와 함께 부스를 찾아 후원을 해주시는 모습을 봤어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나이가 준 건 '될 대로 되라' 정신

웨딩드레스와 군용 서스펜더. 어울리지 않을법한 콘셉트의 복장으로 나타난 김도형 씨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도 일일이 웃으며 자세를 취했다. 아마 퀴어축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촬영 대상'이었을 거다. 왜 웨딩드레스와 군용 서스펜더였을까. "동성혼이 빨리 법제화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었고요, 얼마 전 군에서 동성애를 처벌한 데 대한 항의의 의미로 군용 액세서리를 달았습니다."


김 씨의 나이는 마흔을 훌쩍 넘었다.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축제에서 마주치기 힘든 중후함이 얼굴에 묻어났다. 김 씨 역시 젊을 때는 '나이 든 게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궁금증을 가졌다고 한다. 자신도 -그 때는 젊었어도-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았단다. 과거는 지금보다 성소수자에게 더 엄격한 분위기였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은 가장 눈에 띄는 복장으로 성 정체성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무엇이 변한 걸까.

"시간이 흐르면서 '될 대로 되라'는 생각에 용감해졌어요. 그 덕에 지금처럼 자유롭게 옷을 입고 거리를 다닐 수 있게 됐죠. 아마 젊었을 때는 이런 인터뷰를 하는 건 상상도 못 했을 걸요?"

눈을 돌리니 또 다른,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참가자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에서 축제에 참가하러 온 성소수자 하야시 씨. 그는 1990년대 중반 서울에서 2년간 유학을 했고, 그 인연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퀴어 축제에 매번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 한단다. 그의 눈에 비친 그 시절과 지금은 어떻게 다를까. "90년대 한국은 다양성에 침묵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있지요. 한국 사회의 변화에 놀라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젊은 사람들 위주로 축제가 진행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남겼다.

"저야 외국인이라 이렇게 자유롭게 축제에 올 수 있지만, 한국에 사는 나이 든 성소수자들은 여러 이유로 이곳에 오길 꺼려한다고 들었어요."


커밍아웃과 동성 결혼으로 화제가 된 김조광수 감독도 이제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퀴어'다. 매번 퀴어 축제에 참여하는 김조 씨는 중년의 성소수자들이 공개적인 자리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묻자,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저도 30대가 되어서야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인정했어요.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걸 인정하고, 긍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거죠."


그나마 조금씩 바뀌어가는 사회적 분위기를 느끼며, 어쩌면 나이든 성소수자들은 젊은이들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축제에서 만난 그들의 표정에서 기자가 읽은 감정은 부러움보다 행복에 가까웠다. 김조 씨가 기자에게 전한 마지막 말 역시 미래와 행복에 관한 이야기였다.

"성소수자여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걸 긍정하는 게 성소수자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오늘 퀴어 축제 이후, 내일부터는 성소수자들이 더 밝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윤상훈

사진 양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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