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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 숨겨진 골목, '종로 익선동' 이야기

엠빅뉴스 작성일자2016.03.21. | 73,530  view


서울 종로3가역에서 5분 거리에 허름한 한옥 마을이 있다.
북촌과 서촌이 관광지로 유명해지는 사이,
이곳은 보수 공사도 하지 않고 조용히 낡아만 가고 있었다.

100년 가까이 하루하루 허름해지던 마을에, 몇 년 전부터 조용한 변화가 움트기 시작했다.

수십 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
이곳을 떠나려는 사람,
이곳에 새로 둥지를 튼 사람.

출신도, 이해관계도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살아보기로' 한 거다.

100년의 '진짜 서울'을 간직한 마을,

이곳은 익선동 166번지다.


"익선동이 어디죠?"

서울 종로 한복판인데, 스마트폰 지도를 보면서도 선뜻 찾기 쉽지 않다.

물어물어 찾아간 골목은 차 한 대 들어가지 못할 만큼 비좁다.

골목을 채운 한옥들은 하나같이 작고, 허름하다.
빠르게 변한 서울 도심의 심장부에서
오로지 이 동네만 시간을 비껴간듯하다.

재개발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고,
세련된 카페와 공방도 들어서 있다.
낡고 부서진 한옥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조화한 풍경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배경에는
깊은 역사가 서리어 있다

'조선인을 위한 실용적인 주택을!'

1920년 일제강점기,
익선동에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일본식 신시가지로 개발하려던 계획에 반기를 든 한 청년이 이 일대 땅을 사들인다.

한국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독립운동 후원가였던 '정세권.'

그는 일본식 건물 대신 근대식 한옥들로 익선동을 채웠다. 양반이 사는 고급 한옥이 아닌, 서민들을 위한 작고 보편적인 한옥들이었다.

익선동 100년 역사의 시작이다.

한 세기를 거스른 '재개발 평행이론'

84년이 지난 2004년, 이 마을에 또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건물주 간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10년 가까이 실행되지 못하자, 
결국 주민들은 재개발을 포기한다. 

보수 공사를 자주 해줘야 하는 한옥인데, 
재개발에 묶이자
‘도저히 살 수 없는’ 집이 되어갔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될 줄 알고 아무도 집수리를 하지 않았어요.
언젠가 허물 집이었으니까. 망가지면 그냥 덧대거나 최소한만 손 댄 거야.
그러다 보니 낡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

- 천명수 / 익선동 인근 부동산 운영

재개발 문제로 한옥이 방치되면서, 주인 잃은 빈집도 늘어갔다.
그렇게 건물도 기억도 낡아가던 공간에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일었다.

작은 찻집 하나가 생겼고,
마을은 변하기 시작했다.

낡은 골목에 찾아든 나비의 날갯짓

"여기 찻집을 차린 이유는 단순했어요. 가게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한옥의 처마가 아름다웠거든요." 
- 김애란, ‘뜰안’ 대표

2009년, 인적도 드물고 밤이 되면 노숙자들이 찾던 골목에 처음 생긴 찻집 '뜰안.'

주인 김애란 씨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도심에서 옛 정취를 느끼고 싶다’며 익선동을 고집했다.
김 씨의 고집은 헛되지 않았다.
낡은 한옥에 매료된 젊은 창업가들이 김 씨를 뒤따라 하나둘 이곳에 카페와 공방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 빛과 소리를 조심할 것
저녁에는 조도를 반으로 낮추고, 음악도 반으로 줄인다.
. 술은 즐길 수 있을 정도로만. 
소주를 포함한 높은 도수의 술은 팔지 않는다.
. 한옥의 명맥을 이을 것. 
외벽을 허물어서도 안 되고, 골목을 확장해서도 안 된다.
. 익선동의 느낌을 해치지 않고, 스며들 듯 이곳에 자리할 것.

새롭게 문을 연 가게들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그들은 원주민의 삶을 해치지 않는 '착한 변화'를 택했다.

'같이 낡아가기로' 약속한 새 가게 몇 곳을 둘러봤다.

'빛과 소리를 지키는 밥집' 익선동 121

"여기 있는 열 곳의 가게 중 한 곳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우선한다면 익선동은 망가질 거예요. '왜 익선동에 왔는지'에 대한 대답을 찾은 자들만 모이길 바랍니다." 
- 조동욱 대표

밥집 '익선동121'을 차린 조동욱·김리나 씨는 익선동만의 매력을 '인간다움'에서 찾는다. 
동네 주민들의 따뜻한 인심과 허물없는 교류. 
'서울이 잃어버린 단어들'이 어울리는 이곳이 좋았단다. 
주민들과의 '공존 규칙'을 지키기 위해 저녁에는 스피커 볼륨과 조명을 줄인다.
이곳의 메뉴는 평범한데, 특이하다.
된장찌개도 팔고, 수육도 팔고, 카레도 판다. 
안 어울릴 법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익선동의 밥집답다.

익선동 골목 지킴이 '익선다다'

"나이 드신 분들도 종종 저희 가게를 오세요. '어릴 적 다니던 길이 이렇게 바뀌었다'면서 재미있어하시더라고요. 이 낡은 공간에 젊은 저희와 어르신이 함께 모여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이게 바로 익선동'이다 싶어요" 
- 박한아 대표

'익선다다'는 익선동 거리 재생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다. 익선동 거리에 어울리도록 가게들을 디자인해주고, 직접 차리기도 한다. 
찻집 '익동다방', 경양식집 '1920' 등이 익선다다가 운영하는 가게들이다.

박지현·박한아 대표는 우연히 익선동을 발견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기분'에 취했다고 한다. 

그 느낌을 지키고 싶어 '거리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원주민과 공존하는 문화를 만들고 유지하는 일이 
그들의 ‘임무’다.

'스며들듯이, 천천히' 거북이 슈퍼

"마치 원래 있던 슈퍼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 박지호 대표

갓 상경한 충청도 청년에게 서울은 모든 것이 '빨랐다.' 정신없이 타향살이를 하다 발견한 익선동은 그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박지호 씨가 이 골목에 조그만 슈퍼를 낸 배경이다.

영락없는 동네슈퍼지만, 좀 다른 게 있다. 
외벽 일부를 일부러 허물어놨다. 

'동네 주민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싶어서'란다.

오래된 풍경

익선동에 새로 들어선 가게들이 유달리 빛나는 이유는,
수십 년째 이 자리를 지킨 낡은 가게들과 나란히 있기 때문이 아닐까.

빈 가게도 많고, 떠날 준비를 하는 곳도 많지만,

여전히 이 골목의 풍경을 책임지는 터줏대감들도 많다.

"사람들이 그러더라. 변화한 골목이 낯설지 않냐고.
옛날도 좋았지만, 난 지금도 좋다.
길거리에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모습은 내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익선동의 얼굴이니까."

- 황치홍 사장, 57년째 익선동 철물점 운영

익선동의 그림자

'25년'

이름도 없던 익선동의 '세탁소'가 골목 끝자락에서 묵묵히 견뎌낸 세월이다.

하지만 이제 끝이다. 

재개발이 취소되면서, 묶여 있던 임대료가 한꺼번에 오른 탓이다.

다음 달 말이면, 익선동 166번지에서는 더 이상 세탁소 기름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발전하는 동네는 늘 그렇다.
'착한 변화'를 추구하는 익선동에도 이렇게 '돈 때문에' 떠나야 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고 있다.

익선동도 피하지 못한 '골목의 딜레마'다

"마지막으로 4개월만 더 달라고 했어요. 계약은 작년에 끝났지만, 손님들이 제게 맡긴 옷을 찾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제가 떠나는 거야 어쩔 수 없지요. 이제는 괜찮아요."

- 이춘우, 세탁소 사장
이제 손님이 찾아갈 옷은 몇 벌 남지 않았다.
'괜찮다'던 사장님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익선동에 찾아온 소식

"옛 모습이 남아있는 지금의 익선동이 참 좋아요. 하지만 이 분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걱정도 돼요. 이런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짧을 것만 같아요."
- 양혜리(26), 서울 마포구 / 익선동 방문자
100년에 걸친 두 번의 재개발 바람을 비껴간 익선동.
그러나 여전히 '이 도심 한복판에서 이 상태로 보존이 될까' 하는 의구심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달 새로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난개발을 막고 한옥마을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서울시가 익선동을 '지구단위계획' 수립 지역으로 정한 것이다. 
원주민과 새내기 입주민들이 공존하려던 노력이, 

이제 '공식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거리.
서울의 중심에서 '옛서울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재개발 등의 문제로 흩어졌던 그들의 바람은, 
이제 하나로 수렴되고 있다.
늙은이든, 젊은이든, 오래 살았든, 처음 살았든,

"이대로 우리, 함께 살자."

사진 출처 (일부) : 서스테인-웍스 (Sustain-Works)

기사·편집|강연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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