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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잘못된 증언으로 사형 당한 남자? (반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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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8월

영국 런던.



한 남녀가 다정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는데,
복면강도가 이들을 급습한다!

총을 맞고 쓰러진 두 사람.
범인은 차를 타고 사라지는데.

이 사건은 40년 동안 영국을 뒤흔든 논란의 사건이 된다!

이들은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연인, 마이클과 발레리.
다음날 마이클은 이미 사망한채로 발견되었고.,

발레리는 하반신이 마비되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 사건은 범행장소의 이름을 따, 'A6 사건' 이라 불린다.



얼마 후, 범인이 타고간 차량에서 범행에 사용된 총기와 탄피가 발견되는데!



놀랍게도 지문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던 것!
이 때문에 수사는 난관에 부딪힌다..

며칠 후

유력한 용의자 '피터 알폰'이 체포되는데,
사건 발생일 밤, 탄피가 발견된 호텔에서 숙박하였고
도박으로 인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다.

유일한 목격자인 발레리를 불러, 범인식별절차를 거친 경찰.
범행 당시 발레리가 들었던 말을 해보게 시켰는데.

발레리가 지목한 사람은 '피터 알폰'이 아니었다!

그녀가 지목한 사람은, 25세의 '제임스 핸래티'
그 역시 탄피가 발견된 호텔에 숙박하였으나
사실 그는 주요 용의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발레리는 범인 특유의 눈빛과 런던 토박의 특유의 말투를 기억해냈고, 제임스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제임스는 억울해했지만, 1962년 3월 제임스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에 제임스 핸래티의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저널리스트, 정치인 등 전문 변호인단인 "A6 변호위원회"가 조직되기도 하였다.

이들이 무죄를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첫번째로는 범행동기와 전력인데,
그에게는 개인적인 원한이 없었고,
전과가 있긴 했으나 살인과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었다.

두번째로는 물적 증거가 전혀 없었고, 증언만으로 범인으로 몰렸다는 점을 들었다.

세번째로는 수사과정의 문제점이었는데,
조작된 부분들이 많았던 것!

게다가 진술 자료를 임의로 고친 것이 드러나기까지 하면서, 제임스의 무죄에 9만여 명의 사람들이 동의를 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제임스의 가족을 만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제임스 핸래티는 결국 형을 집행받아 교수형에 처해지고 만다.

이에 사람들은 경찰이 범인을 만들었다며 비난하였고, 발레리를 비난하였다.

발레리는 인터뷰를 거부하며 모습을 감췄고
이 논란은 수십년 동안 계속된다.

사형 집행 35년후, A6사건의 재 수사 의사를 밝힌 경찰.
DNA검사 기법이 발달하였기 때문인데.
당시 총을 감쌌던 손수건과 남은 가족의 DNA를 대조한다.

그런데!!

증거품의 DNA와, 제임스 유족의 DNA가 일치했던 것!!

이에 사람들은 제임스 본인의 DNA가 아니므로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결국 무덤을 파내, 직접 검사한 결과
제임스 핸래티가 범인으로 밝혀진다..!!

이로써 40년간의 논란이 종식되었고.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였으나
또다른 가해자로 비난 받았던 발레리.
사건 종결 1년 후, 62세의 그녀는 인터뷰에 응한다.

한 줄 요약 : 증언만으로 범인이 되어 사형당한 남자, 이에 피해자를 비난한 사람들. 하지만 40년 후 진범으로 밝혀졌고 피해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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