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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니 홉킨스, 완벽한 '치매' 노인되다

조회수 2021. 3. 31. 10: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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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파더' 위대한 안소니 홉킨스가 전하는 격정의 파도

오스카 작품상-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
안소니의, 안소니에 의한, 안소니를 위한 영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의 거장 안소니 홉킨스가 온전히 그를 위해 쓰여진 작품으로 돌아왔다. 캐릭터의 이름부터 안소니인 영화 ‘더 파더’가 그것. ‘양들의 침묵’ 이후 두 번째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 후보로 이름을 올린 안소니 홉킨스는, 이번 작품으로 그의 연기 인생을 통틀어 가장 완벽한 연기를 펼쳐냈다.

평생을 가꿔온 집에서 평온한 노후를 즐기고 있는 은퇴한 80대 노인 안소니(안소니 홉킨스). 그는 자신만의 규칙과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탱해왔던 현명한 아버지면서, 장난꾸러기처럼 탭 댄스를 출 줄 아는 사랑스러운 노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늘 차고 다니던 손목시계를 어디에 두었는지 고민하는 일이 잦아지고, 사랑하는 딸과 아끼던 집마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집에 나타나는 수상한 사람들을 과연 누구이고, 거실에 걸어뒀던 그림은 누가, 어디로 치운 것일까.

현실과 기억의 미로 속에서, 안소니는 길을 잃은 채 미몽을 헤맨다. 균열이 일어버린 현실 가운데, 안소니는 아득해만 가는 그의 삶을 붙잡을 수 있을까.

영화 ‘더 파더’(감독 플로리안 젤러)는 완벽하다고 믿었던 일상을 보내던 노인 안소니의 기억에 혼란이 찾아오고, 완전했던 그의 세상에 균열이 일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플로리안 젤러 감독이 집필한 동명의 연극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연극 ‘더 파더’는 밀도 높은 심리극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프랑스의 토니상으로 불리는 몰리에르 어워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프랑스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이나,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안소니 홉킨스를 위해 영어로 영화를 제작했으며, 캐릭터의 이름 역시 안소니로 설정했다. 각본을 써내려 갈 당시부터 안소니 홉킨스를 생각하며 집필했다고 하니, ‘더 파더’는 안소니의, 안소니에 의한, 안소니를 위한 작품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렇게 안소니 홉킨스를 주연으로 삼은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대단히 훌륭한 결정이었다. 영화 ‘양들의 침묵’(1991)에서 섬세하면서도 온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드는 강렬함으로 관객의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그는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그야말로 경이로운 감상을 남기는 연기를 선보여 박수를 불렀다.

극 중 안소니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는 기억으로 일상에 대한 혼란과 불안을 겪게 되는데, 안소니 홉킨스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인물의 내면을 정확히 포착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현실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 타인에 대한 강박과 집착, 급기야 놓아버릴 수 밖에 없는 정신. 안소니 홉킨스는 스스로를 몰입해 연기를 펼치는 것을 넘어 관객을 자신의 시각과 일치시키며 영화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안소니 홉킨스가 그리는 격정의 파도와 함께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신선한 연출 역시 영화가 눈길을 사로잡도록 하는 주요한 축이다. ‘더 파더’는 치매가 찾아온 노인과 그의 곁에서 함께 힘들어하는 딸 앤(올리비안 콜맨)의, 어쩌면 지극히 평범하며 지난 작품에서도 흔히 다뤄진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허나 그럼에도 이 작품이 보는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데, 영화가 온전히 치매 환자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이유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 신에 들어서기 전까지, ‘더 파더’는 치매 노인 안소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때문에 관객은 얼핏 안소니가 진실로 치매를 겪고 있는 것인지, 혹은 그의 말마따나 딸이 자신의 집을 차지하기 위해 미치광이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이야기의 흐름이 절정에 이르러 여러 단서가 쏟아지기 전까지, 관객은 안소니와 함께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앤에게 보내게 된다.

때문에 영화는 특별히 격정적인 사건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에 달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안소니의 집 외 별다른 로케이션이 없었음에도, 조금씩 달라지는 집의 인테리어와 바뀌어가는 사람들의 얼굴, 뒤섞인 시간대가 보는 이에게 섬뜩한 감상마저 선사한다.

동시에 ‘더 파더’는 연로해 점차 정신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가슴 아파하는 딸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그런 부녀를 향해 냉정한 시선으로 조언을 건네는 이의 말로 삶에 대한 통찰을 전하기도 한다.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인 진실이 영화 저변에 깔려 깊은 울림을 남긴다.

요컨대 절정에 달한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력과 치매 노인에 대한 신선한 시각이 엿보이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스스로의 기억과 맞서는 안소니의 고독함을 통해 관객 역시 혼란과 불안을 겪게 되고, 영화를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게 되기도 한다.

개봉: 4월 7일/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감독: 플로리안 젤러/출연: 안소니 홉킨스, 올리비아 콜맨, 마크 게티스, 올리비아 윌리암스, 이모겐 푸츠, 로퍼트 스웰/수입·배급: 판씨네마㈜/러닝타임: 97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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