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사랑을 발견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조회수 2021. 3. 8.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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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빠지기엔 멀고 외면하기엔 아른거리는 러브 스토리 '암모나이트'

프란시스 리 버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시얼샤 로넌X케이트 윈슬렛

봄바람과 함께 섬세하게 그려진 러브 스토리 한 편이 관객을 찾는다. 시얼샤 로넌과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을 맡은 영화 ‘암모나이트’가 그것. 영화는 화석 수집가이자 고생물학자였던 메리 애닝의 사랑을 차분하면서도 때론 강렬하게 그려내며 관객을 유혹한다.

1840년대 영국 남부 해변 마을. 생계를 위해 화석을 발굴하는 고생물학자 메리(케이트 윈슬렛)는 오늘도 구석진 가게에서 관광객에게 판매할 화석을 다듬는다. 해양 생물의 화석을 발견하며 학자로서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지질학회에 가입조차 할 수 없었던 메리. 그는 자신에게 불친절한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안고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했던 그의 가게가 잠시 소란스러워지는 일이 발생한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시골로 요양 온 상류층 부인 샬럿(시얼샤 로넌)이 남편의 권유로 메리에게 화석에 대해 배우며 상처를 회복하기로 한 것이다. 너무나 다른 서로가 낯설었던 메리와 샬럿은 되려 다르기에 점차 서로를 갈망하기 시작하고. 서서히 그리고 깊숙하게 서로의 마음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사랑을 피워나간다.

영화 ‘암모나이트’(감독 프란시스 리)는 영국 남부 해변 마을에서 생계를 위해 화석을 발굴하는 고생물학자 메리와 요양을 위해 그곳을 찾아온 상류층 부인 샬럿이 서로를 발견한 후 겪게 되는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을 담았다.

영화 ‘신의 나라’(2017)로 전 세계 평단을 사로잡으며 LGBTQ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올랐던 프란시스 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만큼, ‘암모나이트’는 레즈비언 서사를 담은 작품이다. 실존 인물인 메리 애닝이 레즈비언이었는지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순 없으나, 프란시스 리 감독은 픽션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생애에 강렬한 사랑을 수놓으며 이야기를 꾸렸다.

빠른 전개와 속도감 넘치는 액션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암모나이트’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다. 잿빛에 가까울 정도로 영화의 색채는 흐릿하고, 컷의 전환도, 대사도 적다. 이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 역시 느릿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그리는 사랑만은 강렬함을 넘어 격렬하다. 메리와 샬럿의 만남부터 피어나는 사랑과 서로를 향한 갈구, 헤어짐의 아픔에 이르기까지 ‘암모나이트’는 여타 요소들을 극히 절제하거나 혹은 배제한 채 도도히 흐르는 감정의 격류에 집중하여 스크린을 채운다.

몇 마디 없는 대화와 두 인물 사이 흐르는 묘한 긴장감, 눈빛으로 오가던 감정의 나눔은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야 팡파르가 터지듯 분출된다. 여성은 사회활동조차 제한됐던 19세기, 비밀스럽고 비좁은 방안에서야 환희에 젖은 채 사랑을 외친다.

여타 장면들에서는 극도로 자제하다 단번에 분위기가 반전되니 소프트 포르노를 보는 듯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적나라하게 그려지는 육욕의 늪이 되레 경직됐던 인물, 배경 등과 대비돼 다양한 심상을 떠오르게 만든다. 영화는 단순한 관음적 욕구를 넘어 굽이치는 삶 속으로 보는 이를 이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프란시스 리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함께 케이트 윈슬렛과 시얼샤 로넌이라는 걸출한 배우들 덕이 크다. 감독이 침묵 속에서 맴도는 감정을 짚어내는 눈으로 영화의 바탕을 그렸다면 두 배우는 자칫 피상적이고, 인형으로만 보일 수 있었던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살아있도록 만들었다.

허나 앞서 언급하였듯 ‘암모나이트’는 느릿하다. 누군가 “지루하다”고 평한다 한들 아무런 변명거리가 없다. 메리와 샬럿의 감정은 충실히 드러나지만 스크린에 나타난 인물들의 삶에 관객이 공감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여러 미학적 요소와 미장센, 카메라의 시각을 염두하며 관람하는 관객은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물과 관객이 교감할 수 있느냐지만, ‘암모나이트’는 자신의 내적 아름다움에 심취하는 과정에서 관객과 눈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듯 하다.

사랑은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감정이기에 공감하기 쉽지만, 누구나 각자만의 사랑이 있었기에 다루기 어려운 소재기도 하다.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사랑을 포착해 그리는 것을 통해 관객에게도 울림을 주기 위해선 사랑의 보편성과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나, 사랑에 취해 감정의 골 속으로 깊이 파고들기만 한다면 관객과 철저히 유리되기도 한다.

프란시스 하 감독의 ‘암모나이트’는 그와 같은 측면에서 아쉬운 감상을 남긴다. 메리의 입장에서 충분히 암울한 시대였을 것이고, 샬럿과의 사랑만이 그를 숨쉬게 할 수 있을 것임에 분명하나. 정작 공감하기 어려우니 그의 모든 대사와 행동은 그저 칭얼거림과 도피, 한탄과 자조로만 비춰져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개봉: 3월 11일/관람등급: 청소년 관람가/감독: 프란시스 리/출연: 시얼샤 로넌, 케이트 윈슬렛, 피오나 쇼우, 젬마 존스, 클레어 러시브룩/수입·배급: 소니픽처스코리아/러닝타임: 118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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