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할리우드가 궁금하니?..화려함과 추악함 그 사이 어디쯤

조회수 2020. 11. 18.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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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맹크' 비웃음 당하는 돈키호테와 사랑 받는 어릿광대 원숭이 사이

193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와 추악한 이면
세르반테스가 되고 팠던 데이빗 핀처와 맹크

데이빗 핀처 감독이 수십 년간 고대해 왔다는 영화 ‘맹크’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그의 아버지가 2003년 집필했던 대본을 바탕으로 데이빗 핀처가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1930년대 황금기를 맞은 할리우드의 화려함과 추악한 민낯을 다루며 관객을 흑백 세상 속으로 초대했다. 

출처: 영화 '맹크' 스틸. 사진 넷플릭스

한때 천재라 추앙받았지만, 이제는 퇴물 소리를 듣는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 허먼 J. 맹키위츠(이하 맹크, 게리 올드만). 그는 이 시대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오손 웰스(톰 버트)로부터 각본 의뢰를 받고 작업에 착수한다.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쓰라는 지인의 조언에 자연스럽게 자신이 겪었던 1930년대의 할리우드를 떠올린 맹크. 그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영위하던 황색 언론의 기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찰스 댄스)와 그의 애인이자 배우였던 매리언 데이비스(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만났던 일화를 바탕으로 집필을 시작한다.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 가운데 유성 영화의 탄생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1930년대의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임과 동시에 냉소적이고 신랄한 사회비평가였던 맹크의 손에서 할리우드의 화려함에 감춰진 추악한 이면이 하나둘 들춰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맹크’(감독 데이빗 핀처)는 냉소적인 사회비평가이자 알코올 중독자였던 시나리오 작가 허먼 J. 맹키위츠가 영화 ‘시민 케인’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과정을 통해 1930년대 할리우드를 재조명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출처: 영화 '맹크' 스틸. 사진 넷플릭스

신랄한 사회비평가를 화자로 삼은 ‘맹크’인 만큼, 영화에는 1930년대 할리우드를 향한 온갖 비판이 담겼다. 대형 제작사들은 유성영화의 탄생과 함께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기 시작했음에도 대공황을 핑계로 직원들의 임금을 반으로 삭감했으며, 정권과 결탁해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대중을 선동하기도 했다. 특히 사자가 포효하는 오프닝으로 유명한 MGM 영화사에 대해 혹독히 풍자하는데, 맹크의 눈으로 바라본 MGM은 예술적 창의성은 물론이거니와 일말의 양심과 도덕마저 팔아 치운 암적 존재다.


‘맹크’의 이와 같은 풍자는 단지 1930년대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관객에게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 여전히 만연한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들의 횡포와 폐쇄성, 영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 없이 정치 선전의 도구로 대중을 선동하고, 상업적 성공만을 목표로 질주하는 행태 등 흑백 화면으로 그려진 당대 사회상을 차분히 살펴보고 있자면, 온갖 미사여구와 수식어로 표면만이 세련돼 졌을 뿐, 1930년대와 현재의 할리우드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영화 '맹크' 스틸. 사진 넷플릭스

색을 걷어낸 채 흑백으로 촬영된 ‘맹크’는 여러 색상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에게 강렬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건조한 흑백 화면은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오로지 배우들을 향하게 했으며, 배우들이 자아내는 당대의 분위기를 더 없이 사실적으로 전달해 관객의 뇌리에 색다른 충격을 가했다. 배우들이 1930년대 영화의 스타일을 따라 다분히 과장된 말투와 몸짓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밀한 조명의 구성과 연출,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구성은 어색함 없이 관객을 맹크의 곁으로 위치시킨다.


할리우드의 역사에 대해 공부한 경험이 있는 씨네필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만한 작품이지만, 가볍게 영화를 즐기는 일반 관객에게는 선택에 부담이 있을 수 있겠다. 여러 역사적 사건이나 배경은 여타 설명 없이 무뚝뚝하게 흘러나오고, 이를 미리 알지 못한 관객은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극 중 드문드문 엿보이는 고전 작품에 대한 오마주와 신랄한 풍자가 역시 와 닿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출처: 영화 '맹크' 스틸. 사진 넷플릭스

극 중 주인공 맹크는 바로 그러한 할리우드의 허위와 가식, 부패와 타락을 지적하는 돈키호테와 같은 인물이다. 허나 맹크가 ‘시민 케인’을 통해 신랄히 비판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그에게 ‘자신이 잘난 줄 아는 어릿광대 원숭이’에 불과하다고 비웃는다. 실제 ‘시민 케인’이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방해 공작으로 흥행에 철저히 실패하며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각본상만을 수상해야 했던 것을 고려해본다면 윌리엄 허스트의 말은 사실일지 모른다. 데이빗 핀처 감독 역시 맹크를 향해 호의적인 시선을 베풀진 않았다.


그러나 맹크는 그러한 모든 미래를 예상했음에도 ‘시민 케인’의 집필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기꺼이 세르반테스가 되길 자처했다. 그 역시 영화 한 편의 힘은 미미하고, 한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 하여 침묵한다면 영원히 위대한 돈키호테는 탄생되지 못했을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어릿광대 원숭이와 미쳤다며 손가락질받는 돈키호테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끝내 세르반테스가 되기로 결정한 맹크와 데이빗 핀처에게 박수를 보낸다.


개봉: 11월 18일/관람등급: 15세 관람가/감독: 데이빗 핀처/출연: 게리 올드만, 아만다 사이프리드, 릴리 콜린스, 알리스 하워드, 톰 버크, 찰스 댄스/배급: 넷플릭스/러닝타임: 131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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