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안티고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

조회수 2020. 11. 12.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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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안티고네' 스크린 속 현대적으로 재탄생한 소포클레스의 비극

“전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거예요”
신념 따라 권력에 맞선 소녀의 저항

고대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돼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어떤 힘도 없는 미약한 소녀 안테고네는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무자비한 국가와 시스템 앞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다. 

출처: 영화 '안티고네' 포스터.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캐나다 몬트리올에 정착한 한 평범한 이민자 가족.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그들에게 갑작스런 비극이 닥친다. 두 오빠 중 하나가 경찰에게 총을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또 다른 하나는 구속된 것이다. 경범죄를 수차례 저질러 출생국가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오빠 폴리네이케스. 안티고네는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오빠를 탈옥시키고 자신이 감옥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영화 ‘안티고네’는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싶은 안티고네(나에마 리치)가 오빠 대신 감옥에 들어가며 SNS 영웅이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제44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캐나다 장편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 선정과정에서 캐나다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출처: 영화 '안티고네' 스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수천 년도 더 전에 나온 이야기지만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들이 있다. 영화를 연출한 신예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안티고네’ 신화를 읽고 영화를 기획하기 시작했단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신념을 잃지 않고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꺾이지 않는 안티고네의 찬란함이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영화는 그러한 안티고네의 모습과 함께 현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접목시켰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속 안티고네가 크레온에 맞서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지키려 했다면 영화 속 안티고네는 이민자 집단을 비롯한 소수를 향해 어떠한 배려도, 이해도 없이 따가운 눈총만을 보내는 사회로부터 가족을 지키려 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것이라며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외친 안티고네는 신화와 같이 끝내 굴복하길 거부하고, 다시금 반복되는 과거 자신과도 같은 모습의 이민자 가족을 보며 되풀이되는 비극에 대한 절망과 달라질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된다. 

출처: 영화 '안티고네' 스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는 경찰의 부적절한 진압으로 안타까운 사망에 이르렀던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비롯해 갖가지 사건을 상기시킨다. 스크린 속 이야기는 고대의 한 소녀를 모티브로 함에도 현재와 맞닿아 있어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누군가는 무모하고, 무지하다며 안티고네의 선택을 매도할 수 있겠지만, 가족에 대한 그의 사랑과 비정한 사회 구조의 결함은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남기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영화에 담긴 메시지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여러 요소들과 신화 ‘안티고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소피 데라스페 감독의 신선한 발상 역시 ‘안티고네’의 매력을 한층 증폭시킨다. 다채로운 색감과 SNS 시대에 발맞춘 감각적인 영상미는 이목을 집중시키고, 재해석된 신화 속 인물들의 여러 면면을 관찰하는 것은 묘한 즐거움을 남긴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를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작품의 소재도, 배경도, 분위기도 모두 다르지만, 관통하는 메시지 자체는 동일하다. 끊임없이 절벽으로 밀어붙이는, 무심하기 그지없는 폭력들.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른 채 제자리걸음 하는 아픔들. 서로를 향한 혐오와 극단만이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개봉: 11월 19일/관람등급: 15세 관람가/감독: 소피 데라스페/출연: 나에마 리치, 라와드 엘-제인, 앙투안느 데로쉬에, 누르 벨키리아, 하킴 브라히미, 라치다 오사사다/수입: 그린나래미디어㈜/배급: 그린나래미디어㈜, ㈜키다리이엔티 /러닝타임: 109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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