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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내 작품임을 운명적으로 느꼈다"

조회수 2020. 11. 9.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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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혐오의 시대 관통하는 김혜수의 말 없는 보듬음 '내가 죽던 날'

“상처 받아들이고, 다음 위해 용기 내는 이야기”

“실제 내가 꿨던 악몽 작품에 반영돼”

이름 석 자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배우 김혜수가 돌아왔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을 통해 깊고 어두운 감정의 골을 그려내며, 가슴 아픈 상처를 지닌 형사 현수를 연기한 김혜수. 그가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김혜수를 만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내가 죽던 날' 출연 배우 김혜수. 사진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가 살아남기 위해 각자 그들만의 선택을 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혜수는 극 중 주인공 현수를 연기했다. 현수는 하루아침에 자신이 믿었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 의문의 자살사건을 맡게 되는 인물로, 김혜수는 평범한 일상이 무너진 인물의 황폐해진 내면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섬세하게 그려내 단숨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현수가 겪는 아픔이 과거 실제로 마주했던 상처와 고통, 절망의 순간들과 겹쳐 보였다는 김혜수. 그가 ‘내가 죽던 날’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며, 현수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일까. 김혜수는 영화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제목부터 마음이 와 닿았다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영화 '내가 죽던 날' 출연 배우 김혜수. 사진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어떤 이야기인지도 전혀 모르고 제목만 봤는데, 그냥 마음에 와 닿았다. 시나리오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는, 이게 비록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감정적으로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누구나 원치 않아도 상처와 고통, 절망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지 않나. 현수를 통해 보시는 분들에게 내가 느꼈던 바를 잘 전달해보고 싶었다.


내가 쓴 것도 아니었는데 각 캐릭터의 대사가 실제로 내가 하던 말들이기도 해서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글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굉장히 궁금하기도 했다. 현수가 ‘나는 정말 몰랐다’라는 말을 한다던가, 세진이 ‘아무것도 몰랐던 것도 잘못이죠’라고 말하는 것. 순천댁이 ‘인생이 네 생각보다 길어’라고 말하는 것도 내게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입버릇처럼 내가 하던 말이다.”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 사진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현수의 이야기가 특정한 사건이 아닌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닮아있었다고 설명한 김혜수의 말마따나 영화는 소재가 되는 실종사건이 아닌 각 인물이 갖는 내면의 상처와 치유, 연대와 성장에 집중한다. 김혜수는 그 가운데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관객이 현수와 같은 감정에 도달하게끔 만들고자 했다. 때문에 사건을 파헤치고 증거를 찾는 것이 주가 아니라, 내면의 고통과 압박,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사건 정황이 아닌 인물의 관계에 집중하고, 사람에 대해 물어본다.


영화가 현수를 위주로 흘러가서 사건을 파헤치고, 그의 상처를 극복하는 것 위주로 보여질 수 있지만, 그보다는 상처를 직면하고 받아들이며, 다음을 위한 용기를 내는 이야기다. 손 길 하나의 위로와 서로 닮은 상처가 느껴지는 사람을 향한 보듬음이 중요한 것이다.”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 사진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타인에 대한 외면과 끝없는 자기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따스한 위로를 건넨 ‘내가 죽던 날’. 현수와 같은 아픔을 갖고 있었다는 김혜수는 영화 속 대사에 그가 1년 동안이나 꿨던 악몽을 그대로 담아내기도 했다.


“극 중 현수가 매일 자신이 죽어있는 것을 보는 악몽을 꾼다고 털어놓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내가 꿨던 꿈이다. 처음부터 그 대사를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연기를 하다 보니, 현수의 감정적인 상황과 무의식에서 드러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그 꿈이 너무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래는 없던 장면을 추가하게 됐다.”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 사진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자신이 죽어 있는 모습을 매일 마주했던 현수와 김혜수. 누구도 곁에 없다고 느껴지는, 구렁텅이와 같은 골 속에서 김혜수는 어떻게 하루 하루를 버텨냈고, 이겨낼 수 있었을까. 김혜수는 “그냥 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 둔다”며 극 중 서로를 공감하고 말 없이 연대했던 이들과 같이 그를 지탱해준 이가 존재했음을 말한다.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용기를 주고 힘내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본인이 당장 고통스러우니까. 그래서 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둔다. 그 시간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겨낼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래도 괜찮아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내 곁에는 무언의 손길을 내미는 친구들이 있었다. 내가 내 스스로를 놓지 않도록 상황을 만들어주고, 지켜줬던,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 물론 그들은 어떤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니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영화 '내가 죽던 날' 출연 배우 김혜수. 사진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영화의 제목은 ‘내가 죽던 날’이지만, “내가 죽었지만, 다시 살아갈 날들. 다시 살기 위한 날”이라며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인 김혜수. 그는 ‘내가 죽던 날’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공유하고 위로 받았던 과거의 자신과 같이, 영화를 통해 지금 이 순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전해지길 희망했다.


“작품이라는 것이 나름대로 운명적인 것이 있다. 그러데 이 작품은 기묘하게도 내 스스로 절망감이 휩싸여 있을 때 만났다. 물론 같은 감정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걸 연기를 잘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그래도 운명적, 시기적으로 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네게 묵직한 위로가 전해졌듯이, 지금 이 순간 나보다 더 힘든 이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인생의 시작을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듯, 끝도 마찬가지다. 다만 삶의 끝을, 어떤 상황 때문에 스스로 앞 당길 때가 있는데, 그런 불행한 상황에서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장 내 눈 앞엔 없지만,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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