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감 ZERO! '사랑스런' 페미니즘 영화라고 들어 봤니?

조회수 2020. 10. 23.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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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페뷸러스' 기막히게 멋진 여성들의 유쾌한 우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어떤 페미니즘 영화보다 사랑스러운

한동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지만, 최근 들어 시들해진 이슈가 있다. 바로 ‘페미니즘’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여성의 권리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할 만큼 하지 않았냐’며, ‘지겹다’며 더 이상의 이야기를 꺼려하기 시작한다.


영화 ‘페뷸러스’는 그런 관객들 조차 빠져들게 만들, 묘한 마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코로나 19 여파로 한 없이 우울한 요즘인 만큼 또 다른 고민거리가 싫을 수도 있겠지만, 스크린에 펼쳐진 이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고민을 더하는 것이 아닌, 고민을 말끔히 덜어주며 관객을 매료시킨다.

영화 '페뷸러스' 스틸. 사진 싸이더스

매거진 ‘톱’의 작가가 되고 싶은 인턴 로리(노에미 오파렐). 그는 정식 작가가 되리란 꿈을 꾸며 인턴의 마지막 날을 힘차게 출근한다. 허나 기대와는 달리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편집장은 유명 인플루언서를 영입해 작가로 활동하게 하겠다는 충격적인 말을 전하고, 로리는 전업 백수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우울함을 달래려 룸메이트 엘리(모우니아 자흐잠)와 술을 마시러 간 어느 날, 할리우드 스타 급의 인기를 자랑하는 인플루언서 클라라(줄리엣 고셀린)와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로리. 우연이 겹쳐 어느새 클라라의 베스트 프렌드가 된 그는 클라라의 인기를 통해 조금씩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늘려가며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기 시작한다.  

영화 '페뷸러스' 스틸. 사진 싸이더스

단순하고 명쾌하게, 유쾌하고 신선하게 그려지는 이야기가 허를 찌른다. SNS를 소재로 펼쳐지는 영화이니만큼 시종일관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동시에 여성 인권에 대한 담론과 그를 향한 사회의 인식이 사실적으로 담겨 공감을 자아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페미니즘을 위해 대단히 전투적이거나, 어떤 사명감을 갖고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진 않는다. 그들은 페미니스트를 대변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한다. 자신의 몸을 상품화하며 삶을 영위하던 클라라는 어느새 자신의 털을 대담히 꺼내 보이고, 세태에 영합해 성공을 꿈꾸던 로리는 자신의 삶이 허영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모든 것을 내던진다. 

영화 '페뷸러스' 스틸. 사진 싸이더스

그러는 와중에도 사회는 여전히 또 다른 성 상품화의 대상을 찾는다. 여전히 자극적이고 성적인 사진이 대중의 선택을 받을 것이고, 온갖 가십거리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할 터다. 아무리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높여도 변하지 않은 채 공고한 벽을 세운 듯한 현실과 너무도 닮았다.


허나 지난한 페미니즘 영화들과 달리, ‘페뷸러스’는 이들의 연쇄를 끊을 수 있다거나, 떨쳐내야 한다는 등의 거대한 목표의식을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세상의 찌든 때를 벗어버린 세 친구를 통해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페미니즘이 어떻게 우리 곁에 있어야 하는지를 말한다. 

영화 '페뷸러스' 스틸. 사진 싸이더스

이는 관객의 공감을 충분히 자아내는 ‘페뷸러스’만의 훌륭한 무기다. 혹자는 비겁하다던가, 소극적이라는 말로 비판할 수 있겠지만, 한걸음씩 밟아가는 작은 변화의 이야기가 어떤 대단한 이데올로기보다 감동적이다.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차치한다면 ‘페뷸러스’에는 특별한 점이 많지 않다. 배경은 현실적이나 개연성이 부족하고, 이야기의 구성 역시 관객들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기이한 마력을 갖는다. 누군가를 상품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고자 하는 우리의 내적 열망이 이 뻔한 우화를 응원하게끔 만든다. 

영화 '페뷸러스' 스틸. 사진 싸이더스

제목 ‘페뷸러스’(Fabulouses)가 의미하듯, 영화는 기막히게 멋진 세 여성의 ‘우화’다.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지만 스크린 속 주인공들과 같은 선택을 하기가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우리는 안다. 그래서 먼저 변화를 거부한다. 상처입고, 다칠까 두려워 함부로 나서길 꺼려한다. ‘우화’와 ‘현실’의 차이다.


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사회와 역사는 그런 작은 두려움을 조금씩, 하나씩, 극복하는 것으로부터 변화해왔다. 영화 속 로리와 클라라 같이 단번에 모든 것을 떨쳐내긴 어렵겠지만, 작고 사소한 변화들이 모여 연대하는 과정 끝에는 우리가 꿈꾸고 있는 모습들이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


개봉: 11월 5일/관람등급: 15세 이상관람가/출연: 줄리엣 고셀린, 노에미 오파렐, 모우니아 자흐잠/수입·배급: 싸이더스/러닝타임: 109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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