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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비워내고, 멍청해지기를 반복했다"

조회수 2020. 10. 14.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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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소리도 없이' 유아인 "쉽게 낙인찍는 사회 향해 여운 남기는 영화"

“너무 간단히 내려지는 판단들…돌아볼 필요 있어”

“홍의정 감독…새로운 시대, 새로운 감독의 등장”

유아인, 유재명 영화 ‘소리도 없이’가 개봉 소식을 알렸다.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는 유아인의 마력이 더할 나위 없이 펼쳐진 작품으로, 영화는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질주하는 이야기를 통해 남다른 인상을 남겼다.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영화 ‘소리도 없이’의 주연을 맡은 배우 유아인을 만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물었다. 

영화 '소리도 없이' 배우 유아인. 사진 UAA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는 유괴된 아이를 의도치 않게 맡게 된 두 남자가 그 아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유아인은 극 중 말없이 묵묵히 일하는 범죄 조직의 소리 없는 청소부 태인을 연기했다. 


특정한 장르의 작품이라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소리도 없이’의 성격과 같이 유아인이 연기한 태인은 무어라 설명할 수 없이 모호한 캐릭터다. 그는 작은 세상에 갇혀 목소리를 내기조차 포기한 채 그저 존재하여 유영하는 인물이다. 마치 자아(自我)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그의 내면을 유아인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태인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쫓거나 신념이 있는 인물은 아니다. 태인을 그리며 많은 생각이 필요했지만, 외려 그런 기준들이 모호해야 하는 캐릭터였다. 철저히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며 자신만의 생각하기나 의지에 대한 표명을 아예 보류하기로 한 인물이라 상정하며 접근했다. 마음껏 상상할 여지가 있고,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가는 재미가 컸다.” 

영화 '소리도 없이' 배우 유아인. 사진 UAA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유아인의 말대로 태인은 흐릿하다. 존재감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가 가진 사고의 결을 따라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의미다. 관객은 태인을 마주하며 연민과 분노, 답답함과 통쾌함, 이해와 경멸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태인의 모습대로 영화를 보시고 어떤 특정 감정이나 감상을 가져가시기보다는, 어떤 사람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를 가져가시길 바랐다. 선입견과 싸우면서 이용하는 것이 영화지만, ‘소리도 없이’라는 영화의 가치는 성급한 판단을 유보하게 만들고 상쇄하게 만드는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간단하게 이뤄지는 여러 판단에 대해 우리 모두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영화 '소리도 없이' 촬영 현장.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경계가 불분명한 태인이었지만 단 하나의 명확한 특성이 존재했다. 바로 말이 한마디도 없었다는 것이다. 말을 못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태인에겐 그 어떤 대사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표현하기 어려웠을 캐릭터에 대사까지 없던 상황. 유아인은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거친 호흡과 표정, 눈빛만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강박을 떨쳐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일터에 나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오면 느낌이 이상할 것 아닌가. 나에게 태인을 연기하는 것은 그런 느낌이었다. 보통 무언가를 안 하더라도 약간의 의지가 비치기 마련인데, 이를 초탈해야 했다. 어지간한 흉내 내기나 태도로 인물이 갖고 있는 설득력을 만들긴 어려웠다는 생각이 들어, 강한 의지를 통해 무언가를 내려놓는다는 의식조차 지양하려고 했다.


생각을 비워내고, 멍청해지기를 반복했다. 계산적이고 치밀하게 가져가려는 노력도 안 했다. 배우들이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아주 분열적인 정신 상태를 겪게 되는데, 그런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는 감각적인 목표를 갖고 현장에 임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툭 나 자신으로 놓여진 상태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움을 이용하고자 했다.” 

영화 '소리도 없이' 배우 유아인. 사진 UAA

그와 같은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된 ‘소리도 없이’의 태인. 허나 유아인은 작품과 연기를 향한 호평을 모두 홍의정 감독의 공으로 돌리며 겸손을 표했다. 이번 작품으로 입봉한 신인인 홍의정 감독임에도 그를 향한 유아인의 신뢰는 대단히 두터웠다. 유아인은 ‘소리도 없이’가 “쇼킹하다고 표현하기에 충분한 영화”라며, 영화를 향한 만족감과 함께 홍의정 감독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희망의 조각과 같았다. 물론 이야기가 희망적이란 것은 아니다.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 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작품이었다. 손쉽게 판단하고 규정하고, 마침표 찍길 좋아하는 우리가 범하는 오류를, 모호하면서도 확실히 끄집어내는 태도가 매력적이다. 영화를 통해 우리가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홍의정 감독은 그러한 영화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다. 무분별한 듯 늘어져 있지만 묘한 질서와 균형을 이루고 있고, 그렇게 만다는 새로운 세계가 자신만의 언어로 이뤄져 있어 독특하면서도 익숙한 반가움을 부른다. 결국 영화라는 것이 자신만의 언어를 꺼내 한 사람의 태도를 그리는 것이라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감독이다. 이번처럼 감독에 대한 믿음이 충만한 적이 없었다. 감히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감독의 등장이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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