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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시상식 다양성 조건 신설이 의미 있는 이유

조회수 2020. 9. 11. 15: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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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 다양성 조건 신설한 오스카..약일까, 독일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 기준에 다양성 규정 신설

작품상 수상하려면 기준 4가지 중 2개 충족 필수

지난 8일(미국 현지시각)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2024년 제96회 시상식부터 다양성 규정 4가지 중 2개를 반드시 충족시켜야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그동안 ‘백인들의 잔치’(#OscarsSoWhite)라고 불렸던 아카데미 시상식인 만큼 인종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했다.


아카데미 측이 신설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 (A)스크린 속 표현, 주제 및 내러티브, (B) 창조적 리더십과 프로젝트 팀, (C) 산업 접근성 및 기회, (D) 관객 개발. 이 4가지 기준 중, 최소 2가지 영역에서 그동안 주류 영화에서 소외되어왔던 여성, 인종, 민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가 비중 있게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참여 비율은 각 기준마다 세부항목별로 다르다. 먼저 (A)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세 조건 중 하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① 주연 배우 혹은 조연 중 적어도 한 명이 백인 외 다인종 혹은 민족 출신이어야 한다. ② 조단역의 최소 30% 이상이 다인종,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중 2가지 이상을 포함해야 한다. ③ 영화의 주요 줄거리, 주제 또는 내러티브가 소수자 집단에 관한 내용이어야 한다. 


제작 현장을 아우른 (B)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선 다음 두 조건 중 하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① 연출·촬영·작곡·의상·캐스팅·편집·분장·프로듀서·미술·사운드·VFX·작가 등 책임자 직책 중 적어도 두 명이 소수자 집단(다인종·여성·성 소수자·장애인) 출신이어야 한다. ② 전체 제작진의 최소 30%가 소수자 집단 출신이어야 한다.  


(C)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선 제작·배급 분야에서 소수자 집단에 인턴십·교육·기술개발의 기회를 줘야 하며, (D)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선 마케팅·홍보·배급사 내 여러 고위 임원이 소수자 집단 출신이어야 한다.   


와 같은 아카데미 측의 결정은 올해까지 유색인종과 여성 회원 수를 두 배로 늘린 것에 이어 지난 6월 아카데미가 오스카 수상 자격에 다양성을 위한 새 기준 개발 기획팀을 구성한 결과다. 아카데미는 신설 규정을 발표하며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스크린 안팎에서 공평한 표현을 장려하고자 했다”며 “우리는 이번 기준이 우리 산업의 필수적인 변화의 촉매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단, 작품상 외 시상분야는 기존 규정을 유지한다는 것이 아카데미 측의 방침이다. 

백인 중에서도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많은 논란에 휩싸였던 아카데미가 다양성을 위한 방향성을 분명히 했지만, 일각에선 그와 같은 규정을 신설해 강제하는 것이 오히려 역차별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영화가 어디까지나 예술의 영역에 속해있는 만큼,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해당 조건을 만족하는 것이 작품의 질 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영화 ‘1917’, ‘덩케르크’ 등 작품의 시대와 설정 등을 고려했을 때, 작품성이 충분히 뛰어날지라도 아카데미 측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우려의 일부다.  


실제로 최근 디즈니의 신작 ‘뮬란’이 겪고 있는 논란을 고려해본다면 그와 같은 우려의 목소리는 일부 타당하다. 디즈니는 지난 몇 년 동안 여성과 성 소수자, 다민족, 다인종, 장애인 등 소수자 집단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허나 정작 그 결과물로 내놓은 ‘뮬란’은 위구르족 탄압에 앞장선 중국 공안에 감사를 표하고, 아시아 문화권을 이해하지 못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 각색됐다며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뮬란’은 디즈니의 언행이 시대 흐름에 편승해 상업적 수익을 극대화하려 했을 뿐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입증한 셈이다. 

그와 같은 우려의 목소리에도 아카데미 측이 제시한 다양성 규정은 의미 있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다양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요즘이지만, 주조연 배우가 모두 아시안이라는 이유만으로 화제가 됐던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오스카 시상식을 ‘로컬’이라며 꼬집었던 봉준호 감독의 발언을 상기해보자면, 여전히 할리우드에 차별이 만연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1917’, ‘덩케르크’, ‘아이리시맨’과 같이 백인 남성만 등장하는 영화 역시 아카데미가 새롭게 제시한 규정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기도 하다. 캐릭터나 이야기 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규정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건이 있으며, 그 중 2가지만 충족시키면 되니 새로운 규정이 작품의 규격화와 역차별 등을 의미하진 않는다.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종합 예술로서 그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무대 중 하나였던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제야 이와 같은 행보를 공표한 것은 다분히 늦은 것일 수 있다.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이뤄졌어야 했을 현상들이 가시적인 사안으로 대두되고, 명문화됐을 뿐일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설사 아카데미의 행보가 시대 흐름에 편승했을 뿐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해도 충분히 반가운 변화다. 베를린, 베니스, 칸 국제영화제와 더불어 최고의 권위를 자랑했던 영화인들의 축제가 공개적으로 변화할 것이라 공표했다는 것 자체가 향후 세계 영화의 흐름이 뒤바뀔 물꼬를 틀 수도 있다.  


아카데미의 이와 같은 변화를 통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외면받고 있던 영화계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전면에 등장해, 세계 영화계가 더욱 풍요롭고 다채로워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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