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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하워즈 엔드’ 파스텔 톤 그림으로 마주한 역사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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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포스터 문학의 정수를 스크린으로

한 폭의 유화 같지만, 생동감은 사라져

영화 ‘하워즈 엔드’는 영국의 소설가 E.M 포스터가 1910년 집필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계급 간의 전쟁을 그린 작품이다. 한 세기가 지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1992년에 제작된 영화이니만큼,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하워즈 엔드’에 특별히 대단한 재미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허나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포착한 포스터 문학의 정수는 시각적 아름다움에 있어 여전히 매력적인 잔향을 남긴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통해 부드러운 화질로 감상이 가능해진 ‘하워즈 엔드’는 한 폭의 아름다운 유화를 마주한듯한 감상과 함께 지난 역사의 단면을 충실히 재현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슐리겔 가문의 둘째 헬렌(헬레나 본햄 카터)은 런던 근교의 저택 하워즈 엔드에 머무르며 윌콕스 가문과 짧은 인연을 맺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한 계절의 짧은 인연으로만 여겼던 두 가문은 런던에서 이웃으로 다시 만나고, 윌콕스 부인(바네사 레드그레이브)과 슐리겔 가문의 첫째 마거릿(엠마 톰슨)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은 윌콕스 부인은 마거릿에게 자신의 소유인 하워즈 엔드를 물려주려 하지만, 윌콕스 가문의 사람들은 이를 모른 척 넘어간다.


“단지 연결하라!” 극의 대사이자, 원작자 E.M. 포스터의 좌우명이다. 포스터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와 사회의 연결과 공존을 꿈꿨던 인물로, 캐릭터의 심리가 아닌 행동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통해 개인과 국가, 문화에 대한 자성을 그려냈던 소설가다.  

그런 이의 소설 중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 ‘하워즈 엔드’인 만큼, 이를 영화화한 작품 역시 의미 있는 담론은 내포하고 있다. 전원을 가진 저택 하워즈 엔드는 당대 영국을 상징하고, 윌콕스 가문은 식민지 아프리카에서 부를 축적했지만, 허영에 매몰된 산업자본가를, 슐리겔 가문은 진보적이며 약자를 향한 연민을 지닌 중산층을 대변한다. 철로 바로 옆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레너드는 당연하게도 도시 노동자 계층이다.  


세 계층은 ‘하워즈 엔드’(영국)를 누가 상속할 것인가를 두고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서로의 다름을 마주한 개인들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결국 하워즈 엔드는 ‘연결’을 바랐던 포스터의 꿈대로, 계급과 문화의 뒤섞임과 공존 자체인 헬렌과 레너드의 사생아에게 상속된다. 

이처럼 의미 있는 메시지에 더해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 입체적인 캐릭터가 기본적인 바탕을 이루니, 스크린에 옮겨진 ‘하워즈 엔드’의 풍경은 다분히 매력적이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풍요로운 미장센을 무기로 한 폭의 유채화 같은 감상을 남기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여럿 선보이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허나 소설이 아닌 영화 ‘하워즈 엔드’에 생명력이 남아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당대를 살아가는 각계각층의 삶을 충실히 묘사해 역사의 단면을 비추는 듯한 역할은 수행하고 있으나, 이 유산 영화(Heritage Cinema)에 포스터의 원작 소설을 재현한 것 이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1992년 ‘하워즈 엔드’가 처음 개봉했을 당시 받았던 고전적 영상미에 대한 박수를 다시 한번 되새김질할 뿐이다.  


개봉: 9월 3일/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출연: 안소니 홉킨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엠마 톰슨, 헬레나 본햄 카터, 사무엘 웨스트, 제임스 윌비/감독: 제임스 아이보리/수입∙배급: 알토미디어㈜/러닝타임: 142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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