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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 노인이 29세 남자를 고소한 끔찍한 사연

조회수 2020. 8. 12. 15: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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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69세' 주름 꽃 핀 손에도 존엄은 있다

69세 여인 효정(예수정)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29세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치욕적인 일을 당한다. 긴 고민 끝에 동거 중인 동인(기주봉)에게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한 효정. 하지만 경찰과 주변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효정을 치매 환자로 매도하고, 법원 역시 나이 차이를 근거로 사건의 개연성을 운운하며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효정은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고통받는 현실에 깊은 상처 입었지만, 또다시 용기를 내 가해자를 향한 일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영화 ‘69세’(임선애 감독)는 비극적인 상황에 부닥친 69세 효정이 부당함을 참지 않고 햇빛으로 걸어나가 참으로 살아가는 결심의 과정을 그렸다. 제24회 부산 국제영화제 KNN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그동안 국내 영화에서 쉽게 만나기 힘들었던 노년의 주인공이 스크린 중심에 섰다.


인생의 선배이자 조력자로, 젊은이의 꿈을 빼앗는 못된 악역으로, 영화 속 노인 캐릭터는 다양하게 등장해왔다. 허나 동시에 노인은 언제나 도구로서 기능했을 뿐이다. 노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심리를 대변한 영화는 많지 않다. 영화 ‘69세’는 바로 그러한 많지 않은 작품 중 하나다.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우리의 미래가 스크린 한가운데 놓였다. 궁금해하지 않았던, 애써 외면해왔던 그네들의 모습이 여실히 들춰지니 영화는 어떤 화려한 수사 없이, 인생의 그늘을 드리운 것만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늙은이’, ‘노인네’, ‘틀딱’…모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우리의 미래를 지칭하는 단어다. 노인을 부르는 흔한 말에는 이다지도 차별과 무시, 혐오와 편견이 내재해 있다. 영화 ‘69’세는 무시 받는 존재로, 혹은 보호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노년의 여성에게도 존엄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 효정은 자신이 노년에 접어들었다 하여 부당한 대우를 받음을 참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지키고자 하고, 상처를 이겨내려 한다. 지난 영화에서 노인이란 그저 세상을 달관해 삶을 마무리하고 있었다면, 효정은 오늘 하루를, 내일을 여전히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효정을 통해 영화는 노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여과없이 담아냈다. 주름이 생기고 흰 머리가 돋았다는 이유로 한없이 무시 당하는 이들에 대해, 얼마나 손쉽게 우리만의 프레임을 덧씌워 왔던가. 효정은 그와 같은 혐오가 극단으로 치달아 생겨난 폭력의 피해자이자, 청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존을 지켜낸 투사다.

’69세’는 노년의 삶에 대한 막연한 상상이 아닌 한 개인에 대한 현실적이고 사려 깊은 시선이 돋보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가 애써 외면해 왔던 그네들의 존엄에 대해 다시금 고찰하게 만든다. 영화가 노년의 효정을 다뤘다 하여, 단순히 노인에 국한한 이야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여성과 장애인, 어린이와 빈곤층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힘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야기 구성이나 미장센 따위의 말은 구태여 덧댈 필요가 없을 듯하다. 바닥을 나뒹굴지언정 세상을 직면하는 효정의 고아함이 영화의 모든 것이자, 그 이상의 메시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빛을 향해 오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리가 꿈꿔야 할 삶은 바로 그와 같은 모습이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개봉: 8월 20일/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출연: 예수정, 기주봉, 김준경, 김태훈, 김중기/감독: 임선애/제작: ㈜기린제작사/ 배급: ㈜엣나인필름/러닝타임: 100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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