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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뒤에 감춰진 할리우드 레전드의 불행한 삶

이슈 | ‘주디’ 주디 갈랜드, 다섯 번의 결혼·약물 중독…할리우드 레전드의 기구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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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젤위거 열연으로 완성된 영화 ‘주디’가 호평을 받으며 극장가 침체 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이다. ‘주디’는 미국 할리우드 레전드 가수 겸 배우 주디 갈랜드의 마지막 런던 공연을 담았다. 주디 갈랜드는 화려한 필모그래피와 달리 불행한 삶을 살다 47세 나이로 생을 마감한 할리우드의 희생자다.

1922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난 주디 갈랜드는 미국 가수 겸 배우로 2세에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 것을 시작으로 3세부터 언니들과 검 시스터즈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1935년 13세에 제작사 MGM 오디션에 합격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스타의 삶과 불행이 함께 시작됐다. 주디 갈랜드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당시 제작자들은 주디 갈랜드에게 억지로 각성제와 수면제를 먹이는 등 어린 나이부터 혹사했다. 식욕을 떨어뜨리기 위해 흡연을 강요받고 살을 빼기 위해 수프만 먹기도 했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가 성접대를 강요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 관계자, 어머니로부터 혹사당한 주디 갈랜드는 평생을 열등감과 애정 결핍, 약물 중독에 시달려야 했다. 텅 빈 마음을 채우고 위로 받고 싶었지만 다섯 번의 결혼으로도 이를 채울 수 없었다.


주디 갈랜드는 1941년 19세 나이로 영국 가수 데이비드 로즈와 결혼했다. 데이비드 로즈는 방송 음악, 영화 음악 편곡 등을 맡았으며 주디 갈랜드 곡도 편곡 작업한 바 있다. 주디 갈랜드는 데이비드 로즈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어머니와 제작사 등의 강요로 강제로 낙태했다. 주디 갈랜드의 첫 번째 결혼은 1944년 끝이 났다.


1945년에는 감독인 빈센트 미넬리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빈센트 미넬리는 미국 영화 감독으로 뮤지컬 영화 ‘파리의 아메리카인’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1944년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로 주디 갈랜드와 함께 작업했다. 주디 갈랜드는 빈센트 미넬리와 결혼해 첫째 딸 라이자 미넬리는 낳았지만 1951년 이혼했다. 라이자 미넬리는 주디 갈랜드와 마찬가지로 배우 겸 가수로 활동했다.

1952년에는 공연 프로듀서인 시드니 러프트와 결혼했다. 시드니 러프트와는 1965년까지 약 13년간 살면서 가장 오랜 기간 부부 관계를 유지했다. 시드니 러프트 사이에서 딸 로나 러프트, 아들 조이 러프트를 낳았다. 영화 ‘주디’에서 주디 갈랜드는 두 아이와 함께 공연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이후 런던 공연에 올라 공연비로 양육권을 해결하려고 했다.


네 번째 남편 마크 헤론과는 1965년부터 1967년까지 짧은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시드니 러프트와 법적으로 이혼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했다. 동성애자인 마크 헤론은 처음부터 위장결혼을 목적으로 주디 갈랜드에게 접근했다. 마크 헤론은 주디 갈랜드의 첫째 딸 라이자 미넬리의 남편인 피터 앨런과 눈이 맞았다. 이 사건으로 주디 갈랜드, 라이자 미넬리 모녀가 동시에 남편을 잃는 사태가 발생하고 주디 갈랜드는 자살 기도까지 했다.


계속된 불행에 주디 갈랜드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고, 약물 의존도 심해졌다. 4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주디 갈랜드는 1969년 12세 연하 미키 딘스와 결혼했다. 다섯 번째 결혼식을 올린 주디 갈랜드의 행복은 너무 짧았다. 3개월 후인 1969년 6월 주디 갈랜드는 약물과다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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