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싸우는 배우의 이유있는 수상

조회수 2020. 3. 11. 10: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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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심은경의 이유 있는 수상..시대와 싸우는 기자, 그리고 배우

배우 심은경이 지난 6일 개최된 제43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신문기자’(감독 후지이 미치히토)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국내 배우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시상식이 시작된 지난 1978년 이래 최초의 기록이다. 뿐만 아니라 제 29회 타마 시네마 포럼 최우수 신인여우상, 제34회 다카사키 영화제 여우주연상, 제74회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여우주연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일본 영화계에 자신의 존재를 단단히 각인시켰다.

신문기자’는 도쿄신문 사회부 소속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의 동명 논픽션을 원작으로, 실제 아베 총리가 연루됐던 사학 비리 사건을 다뤘기에 논란의 중심에 선 작품이다. 일본 열도를 뒤집은 충격적인 익명 제보와 고위 관료의 석연치 않은 자살 및 가짜 뉴스들, 이 사이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기자의 투철한 기자 정신을 그려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일본 언론이 가진 질문을 던지며 포문을 연다. 정치적 변화와 기술 혁신으로 지면 매체가 줄고, 디지털 매체가 보급되면서 큰 기로에 선 일본 미디어의 문제점을 짚는다. 권력자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국민들에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하는 미디어의 본분이 어떤 형국으로 치닫게 됐나, 미디어가 과연 이 시대와 싸울 의지를 잃은 게 아닌지를 걱정하는 언론인들의 목소리가 TV에서 연신 흘러나온다.

이 목소리를 배경으로 누군가는 손에 펜을 쥐고 공부를 하고, 누군가는 푸른 모니터 앞에 앉은 모습이 교차되며 대비를 이룬다. 펜을 쥔 이는 4년 차 사회부 기자 요시오카(심은경)이며, 나머지 한 명은 온라인 매체에 가짜 정보를 실어나르는 내각정보 조사실의 스지하라(마츠자카 토리)다.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를 둔 신문사 사회부 기자 요시오카는 아버지의 전처를 밟아 일본의 한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고, SNS를 통해 목소리를 높이는 젊은 기자다. 짧은 머리에 머플러를 휘날리며 달려다니는 그는 항상 어수선해 보이지만, 기자의 본분을 다 할 때만큼은 눈빛을 달리 한다. 어느날 1면에 ‘눈 먼 양 그림’이 그려진 의문의 제보 파일을 팩스로 전해 받을 때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 내각부가 추진하는 한 대학의 설립계획이 담긴 파일을 확인한 후 의구심이 생긴 요시오카는 스지하라의 도움을 얻어 정부와 내각정보부를 상대로 취재에 착수한다.

영화는 요시오카의 시선에 맞춘 느린 호흡으로 이 사건을 탐구한다. 정부의 지시로 어떻게 거짓정보가 형성되고, 그 정보를 언론이, 네티즌을 빙자한 공무원들이 어떻게 확산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이에 대항하는 소수의 기자를 비추며 정의로운 사회에 한 발자국 다가서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자 하지만 치밀하지 않은 추리 구조가 이를 저해한다. 디테일을 구축하기 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탐사물은 매력을 반감시키기 충분하다.
그럼에도 일본 영화계가 영화 ‘신문기자’와 심은경을 주목한 이유는 기자정신을 발휘하는 요시오카의 강단을 연기해낸 심은경의 눈빛 때문이 아니었을까. 요시오카는 언어 장벽은 물론, 기자였던 아버지가 오보 논란에 휘말리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과거 등 기자로 활동하는데 갖가지 장벽을 지닌 인물이다. 심은경은 이 장벽을 도전 삼아 몸을 던지는 요시오카의 내면을 훌륭히 연기하며, 영화의 느슨한 전개와 떨어지는 긴박감을 원활히 보완했다.

영화는 한국배우 주연, 사회고발 영화라 점에서 갖가지 핸디캡은 모두 안고 출발했으나, 우려와는 달리 일본 사회에 큰 울림을 전하고 평단으로부터 호평 받으며 해피 엔딩을 맞았다. 허나 일본 사회는 여전히 정치 권력이 미디어를 장악중이며, 미디어 역시 이 사실을 쉬쉬한 채 순환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해당 주제로 영화를 만드는 것조차 진정한 기자정신의 연장선일 테다. 이 영화에 참여한 제작진 모두사회를 위해 운동하는 투쟁가이며, 누구보다 영화 전면에 나선 주연 배우 심은경의 용기만큼은 시대와 싸우는 ‘배우의 정신’일 것이다. 심은경의 일본 아카데미상 수상이 너무나도 당연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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