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반발을 일으킨 할리우드 감독

조회수 2020. 1. 23. 09: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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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의 '이소룡 희화화'..모독과 자유 사이

지난해 10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개봉과 함께 후끈한 논쟁을 일으켰다. 197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전설적인 액션 아이콘 이소룡이 희화화 된 채 등장한다. 당연히 중국은 크게 반발했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중국 상영이 취소됐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시상식 시즌이 한창인 최근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면서 해당 사건이 재조명됐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최근에도 중국 개봉이 취소된 점에 불만을 표출했지만, 여전히 작품 뒤에는 ‘인종 차별’ ‘고인 모독’과 같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렇기에 ‘창작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과연 묵과할 문제인지에 대한 토론이 거듭 이어졌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1969년 미국 LA를 배경으로 웨스턴 TV 시리즈 스타인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스턴트 배우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화근이 된 영화 속 장면은 극중 전설적인 액션 스타 이소룡이 한낱 스턴트맨인 클리프 부스와의 3판 2선승제 결투에서 실컷 두들겨 맞는 장면이다. 해당 장면은 가상 인물 클리프 부스의 싸움 실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상상으로 꾸민 허구적 상황이다.


이소룡 역을 맡은 재미교포 배우 마이크 모는 이소룡을 스스로를 세계 최고로 치켜세우는 오만한 인물로 묘사했다. 심지어 “무하마드 알리를 때려눕힐 수 있다”는 이소룡의 대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이소룡의 생전 발언, 주변 인물들에 의해 알려져 온 인품과는 괴리가 있는 장면들이 상당 분량 동안 이어졌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인 지난해 8월, 이소룡의 딸 섀넌 리는 한 매체를 통해 “쿠엔틴 타란티노가 아버지를 조롱했다”라며 분노했다. 그는 “극장에서 관객들이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웃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는 심정을 밝히며 쿠엔틴 타란티노에 사과를 요구했다. NBA의 전설적인 선수 카림 압둘-자바 역시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며 인종 편견으로 힘들어한 내 친구 이소룡을 모욕했다”고 통탄했다. 그는 “이소룡은 싸움을 할 때 ‘선택지가 있다면 싸우지 않는 것을 늘 첫 원칙으로 삼았지만, 영화는 이를 완전히 무시했다”고 타란티노를 비판했다.

북미 현지 팬들도 다른 인물들에 비해 오직 이소룡만 실제와 달리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한 것을 꼬집으며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창작의 자유’를 주장하며 쿠엔틴 타란티노를 응원하는 무비팬들도 상당수 의견을 내며 대립이 이어지기도 했다.


해당 논란은 이소룡을 여전히 추억하고 사랑하는 중국에까지 퍼져나가 삽시간에 전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했다. 논란을 인지한 중국국가전영국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상영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은 물론, 이소룡 가족 측 요청으로 영화 제작진에 캐릭터 수정을 요구했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논란이 예측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 매체는 극중 이소룡을 상대해야 했던 브래드 피트조차 촬영 당시 이소룡을 조롱하는 장면을 두고 타란티노에게 이의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브래드 피트의 항의로 시나리오가 한차례 수정됐다는 소식이 함께 전해져 타란티노 감독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논란 속에서도 쿠엔틴 타란티노는 떳떳한 입장을 고수했다. 감독은 “이소룡은 실제로도 거만한 사람이었다. 영화 속 모습은 내가 만든 게 아니며, 그의 아내가 쓴 자서전에도 이소룡이 무하마드 알리와 싸우겠다고 말한 내용이 적혀 있다”는 주장과 함께 사과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중국 상영을 위해 해당 장면을 특별히 편집할 의향이 없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며 소신을 지켰다.

그럼에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전세계적으로 3억7000만 달러 이상(미국 박스오피스모조 기준)을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작품성을 인정 받은 영화는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골든 글로브 등에서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극중 이소룡을 두들겨 팬 클리스 부스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는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미국 배우 조합상, 전미 비평가 협회상 등 수많은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인들에게 최고 영예로 여겨지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무려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샘 멘데스 감독의 ‘1917’,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함께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거론된다.


최근 시상식 시즌을 맞아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한 쿠엔틴 타란티노는 지난 14일(북미 기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개봉을 거부한 중국에 “굉장히 실망했다”는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며 “만약 클리프가 케이티에 공격하는 장면을 네 번에서 두 번으로 줄여달라고 한다면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한 국가가 특정한 장면이 불쾌하다고 전체 장면을 삭제하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배급사 소니 픽쳐스의 톰 로드먼 대표 역시 “쿠엔틴 타란티노가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감독을 두둔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1970년대, 저물어가던 할리우드 황금기와 히피 문화가 뒤섞인 격동의 시대를 그렸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그 시대를 살아가던 영화인들에 헌사를 바치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고, 전세계 영화팬들에 추억과 즐거움을 안겼다. 그렇기에 ‘이소룡 비하’로 얼룩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무비팬들에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논란과는 별개로 수상 행렬을 이어온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과연 오스카에서도 성과를 이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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