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역 때문에 머리카락을 아예 밀어버린 배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대표 업적은 한글 창제다. 그런데 훈민정음을 만든 주역이 스님이었다면? 숭유억불의 국가 조선에서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답이 바로 ‘나랏말싸미’다.
# 신미스님은 실존 인물이다
‘나랏말싸미’는 세종(송강호)의 한글 창제 과정 주역이 신미스님(박해일)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한 팩션 사극이다. 그러다 보니 신미스님이 가공의 인물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기록이 엄연히 존재하는 실존 인물이다. 세종은 유언으로 신미스님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란 법명을 내렸다. 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 지혜를 깨우쳐 반열에 오른 분이란 뜻이다.
# ‘살인의 추억’ 주역들이 다시 뭉쳤다
‘나랏말싸미’의 주인공은 세종과 신미스님, 그리고 소헌왕후(故 전미선)다. 송강호와 박해일, 故 전미선은 봉준호 감독 연출작 ‘살인의 추억'(2003)에서 함께 출연했었다. 16년 만의 재회에 대해 송강호는 “해일 씨는 뭐랄까 정말 친동생 같고, 미선 씨는 친누님 같은 느낌이 있는 동생이다. 가족 같은 느낌이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 크다”라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촬영했다
조철현 감독은 신미스님의 행적을 따라 ‘나랏말싸미’를 촬영했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등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지인 만큼, 촬영 허가를 얻기가 쉽지는 않았다. 제작진은 6개월 이상 문화재청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한국 영화 최초로 이들을 스크린에 담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경복궁, 창덕궁, 곡성 태안사, 순천 송광사 국사전 등이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 19겹 의상과 4kg의 가체
‘나랏말싸미’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다채로운 의상이다. 촬영을 위해 총 2,000여 벌의 의상이 동원됐다. 일반적으로 원색을 지향하는 여타 사극과는 달리, 자연스러운 톤이 특징이다. 정성도 많이 들어갔다. 세종은 왕의 품새를 보여주기 위해 19겹의 의상을 입는다. 소헌왕후는 장신구를 포함 4kg이 넘는 가체를 머리에 올리기도 했다. 신미스님을 포함한 불승들의 경우 4개월 동안 수작업으로 의상을 제작했다. 승복 하나하나 손 염색을 거치고, 손바느질로 질감을 다르게 만들었다.
# 박해일, 외국어의 달인이 되다
신미스님은 불경을 기록한 소리글자인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파스파 문자에 능통한 인물이다. 언어에 대한 넓고 깊은 지식은 그가 세종과 함께 한글을 창제할 수 있었던 동력으로 나온다. 박해일은 역할을 위해 인도학 교수에게 산스크리어를 배웠다. 그는 제작보고회에서 “예전에 만주어도 영화 속에서 해봤는데 산스크리트어가 훨씬 어려웠다. 단지 모사, 흉내뿐 아니라 중요한 감정을 담아내야 했다”라고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박해일은 제자로 출연하는 탕준상, 임성재 배우와 함께 템플 스테이와 탁발식을 함께 하기도 했다.
성선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