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이 천박하면 왜 안돼?
‘기생충’은 좀처럼 볼 수 없던 상류층 이선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국내에 개봉한 이 영화는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을 제치고 이선균의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새로운 도전에 찾아온 겹경사, 이선균은 “남의 일 같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저희 예상보다 칸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다들 수상을 축하해주시고 흥행에도 시너지가 나니까 신기하고 제 일 같지가 않네요. 정말 좋은 팀을 만나서 감사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합니다.
봉준호 감독님과의 작업이었으니까요. (봉준호 감독)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저런 분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 생각했는데, 그 마음이 현실이 되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부러웠거든요. 좋은 작품에 참여한다는 자체가 부러웠고, 그 일이 제 일이 되니까 정말 행복했어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으면 ‘살인의 추억’(2003)을 얘기했어요. 학창 시절부터 정말 많이 봤던 영화고 교과서 같은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하면 저런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동경을 늘 가지고 있었죠.
‘기생충’이 곧 봉준호 감독님 같아요. 규정지을 수 없는 영화잖아요. 감독님과 대화를 하다보면 재미도 있고,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어요. 엉뚱하지만 적절하고, 직설적인 표현이 감독님과 닮은 것 같습니다.
칸에서 영화를 보는 중간에 박수가 나오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보는구나. 굉장히 잘 호흡하고 있구나’ 하고 놀랐어요. (송)강호 형이 ‘이거 예의상 하는 게 아니라 진짜야’하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 말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벅찬 감정이 들었습니다. 여러 생각도 들었고요. 박수를 받을 때도 박수를 언제까지 쳐야하는지도 모르겠고 감독님 옆에서 오버하면 웃길 것 같고, 멋있는 척을 해야할 것 같았어요.(웃음)
복합적인 장르라고도 할 수 있고, 규정지어지지 않은 이상한 장르라고도 하고 싶네요.(웃음) 가족 희비극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웃다가 먹먹하게 만들고, 진지하지 않은데 큰 울림이 있더라고요. ‘기생충’은 왠지 다시 한번 보고 싶게 만드는 희한한 영화예요. 보통 개봉하면 다시 보지 않거든요. 그런데 ‘기생충’은 관객으로 다시 보고 싶어요.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에 따라 다를 것 같아서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합니다. 참 희한한 영화죠?
봉준호 감독님이 캐릭터를 잘 만들어주셨어요. 박 사장은 재벌이 아니라 IT 벤처 기업 사장이고, 기존 재벌들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나이스하고 직원들과 소통도 잘하고, 가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남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엄청 궁금해하고요. 그런데 내면에는 천박함과 치졸함도 있어요. 연교(조여정)와의 소파 장면을 찍을 때도 어떻게 하면 그런 천박함을 잘 드러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조)여정이가 자기 역할을 정말 잘했어요. 사실 대본 리딩을 할 때부터 웃겼습니다. 호흡도 잘 맞고요. 여정이는 부인하지만, 비타민처럼 활기차고 친절한 에너지가 있어요. 연기와 태도가 굉장히 닮은 것 같아요. 물론 백치미는 연교의 모습입니다.(웃음)
모든 배우가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정말 잘했어요. 그 또한 봉준호 감독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이 판을 정말 잘 깔아주셔서 가족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것 같달까요? 이정은 누나도 엄마처럼 현장을 잘 챙기면서 엄마 역할을 잘했어요. 누구 하나 기죽지 않고 잘 어울리는 현장이었습니다.
사람들이겠죠? 동경하고 꿈에 그리던 봉준호 감독님과 작품을 함께 하고 감독님과 문자도 해보고(웃음), 좋은 동료, 후배, 스태프를 만난 것도 정말 좋아요. 좋은 작품을 만나서 칸 영화제도 가보고 관객 반응도 좋으니까 정말 좋기는 한데, 제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까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지가 않네요. 좋아도 큰 의미 부여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싫은 것도 빨리 털어내듯이, 좋은 것도 최대한 짧게 누리려고 합니다.
유현지 기자
<저작권자(c) 맥스무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