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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김윤석 보다 훨씬 선배인 배우 출신 감독

조회수 2019. 4. 3. 13: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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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보다 낯선'①] 예수와 밥 먹는 영화의 파란만장 탄생기

‘세상 밖으로’(1994) ‘1724 기방난동사건’(2008) 여균동 감독이 신작 ‘예수보다 낯선’으로 돌아왔다. 예수와 밥을 먹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영화감독(여균동)의 이야기다. 80분 러닝타임은 7명의 스태프와 2명의 배우가 만든 결과물이다. 누군가는 기적이라 말하지만, 이들에게는 그 어떤 영화보다 치열하고 행복한 현장이었다.


# 9명의 스태프와 배우가 만든 로드무비


‘예수보다 낯선’은 여균동 감독의 복귀작입니다. 무려 10년 만인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여균동 감독(이하 여균동): 촬영장을 방문한 동료가 ‘감독님, 굉장히 행복해 보여요’라고 하더군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대요. 뭔가에 쫓기는 것 같고. 반면 이번 현장은 편안했어요. 막상 저는 못 느꼈는데, 타인이 보기에 그렇다면 맞는 말이겠죠. 스스로 달라진 점도 있고요. 예전에는 모르면서 안다고 큰소리쳤는데, 이젠 ‘잘 모르겠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굉장히 큰 변화죠.


준비 과정은 치열했지만, 막상 촬영은 소수 정예로 여유롭게 진행이 됐습니다. 하루 찍고, 하루 쉬었다고요.


여균동 : 조명 감독의 제안이었죠. 추운 겨울날 아무 사고 없이 즐겁게 놀다 보니 촬영이 끝나버렸어요. 한 번은 오후 2시에 촬영이 끝난 적도 있습니다. “더 찍자”라고 했더니, 조명 감독이 “아이, 우리 영화 정신에 어긋나잖아요”라고.(웃음)


조복래 배우(이하 조복래) : 메인 스태프가 8명이었어요.


여균동 : 너까지 포함해서 9명이었지. 참여 스태프들이 다들 베테랑입니다. 영화 수십 편씩 했죠. 하지만 다들 허전했던 것 같아요. ‘예수보다 낯선’을 찍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일을 하면서 마음을 치유할 수도 있다는 거죠. 행복한 영화 정신이라고나 할까요. 부족하고 거칠지만, 그것 자체가 하나의 영화라고 볼 수 있어요.



‘예수보다 낯선’의 본질은 행복해지고 싶은 영화감독의 로드 무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가 등장한다는 점 때문에 종교 영화로 비춰지기도 하는데요.


여균동 : 원래는 감독의 이야기죠. 영화를 만든다는 행위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는 (그 영화의) 소재인 거고요. 그래서 시나리오상의 제목도 ‘영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나중에 짐 자무쉬 감독의 ‘천국보다 낯선'(1984)을 차용해서 타이틀을 바꿨어요.

조복래 : 제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영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바뀐 제목이 더 좋아요. 영화 이야기인 줄 알고 봤는데 예수가 나오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도 있으니까.

# 성실한 배우, 여균동 블랙코미디를 만나다


여균동 감독은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86년생인 조복래 배우에게는 낯선 이름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여균동 : 저를 몰랐겠죠. 너, 내 영화 본 적 있니?


조복래 : 많이 봤죠. 왜 모르겠어요. 기회가 되면 뵙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연출자로서 활동은 물론, 극단 차이무 출신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인상이 강하고, 목소리가 좋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사실 감독님보다는 이야기에 흥미가 있었어요. 미팅에서 보니 재미있고 특이한 분이더군요. 배울 점도 많을 것 같았고요.


여균동 감독은 조복래 배우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여균동 : 김조광수 감독이 소개해줬죠. 처음 봤는데, 허우대는 멀쩡한데 좀 껄렁껄렁하다 싶었죠. 근데 연습할 때는 성실하더라고요. 에티켓도 좋고, 번듯하게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속으로 ‘저런 애가 왜 배우를 하지. 배우는 양아치 같고 삐딱한 면이 있어야 하는데’ 생각했습니다. 좀 재수 없기도 하고.(웃음)


조복래 : 으하하하!


여균동 : 연습할 때도 처음에는 대충 하다가, 나중에는 진짜처럼 했어요. 대사에 대해 의견도 많이 피력하고요. 어느 순간 이 친구가 연기를 잘하겠구나 싶었죠. 그런 토양이 보였어요. 연극이라는 토대가 있었던 덕분이겠죠. 저는 촬영 전 늘 2~3개월은 연습을 시키거든요. 어떤 배우들은 당황하기도 해요.


조복래 : 연극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어요. 감독님이 말씀을 가감 없이 툭툭하시는 편이거든요. 대학로에서는 다들 그렇게 배워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극 중 예수가 쉬운 캐릭터는 아니죠. 진짜 예수인 듯하다가, 또 어떤 장면에서는 예수가 아닌 듯 보여야 하니까요.


여균동 : 저는 천연덕스러운 바보가 현명한 질문을 하는 모양새를 원했어요. 중요한 동작을 앞두고 심호흡을 하지 않았던 이유죠. 조복래 배우가 멍청함과 진지함 사이를 오가길 바랐습니다. 현실적인데, 어떻게 보면 몽상가 같기도 하고요. 그 틈새에 우리가 놓쳤던 세계를 보는 눈이 있는 거죠. 여균동식 블랙 코미디론이라고 할까요.


조복래 배우에게는 난관이었겠네요. 대사도 자주 바뀌었다면서요.


여균동 : 일단 제가 대사를 안 외우니까요. 하하. 저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혼자 많이 중얼거려봐요. 외우진 않아도 덩어리를 알죠. 게다가 극 중에 저 자신으로 나오니까요. 연기를 안 해도 되는 겁니다. 반면 이 친구는 연기를 하죠. 누가 유리하겠어요?(웃음)


조복래 : 당연히 감독님이 유리하죠. 대사를 까먹기도 하시더라고요. “지금 우리 어느 신 찍는 거야?”라고 하시고. 사실 첫 촬영 때 감독님의 멘탈이 무너진 게 느껴졌어요. 조율해야 하는 일들이 많으시니까요. 몸살도 앓으시고.


여균동 : 10년간 안 하다가 하려니 그렇죠, 뭐. 순차적으로 촬영했는데, 첫날이 붉은 책방 신이었어요. 머리가 안 돌아가더라고요. 열도 나고. 참 바보스럽게 찍었죠.


# 예수가 한겨울 바다로 뛰어들기까지


‘예수보다 낯선’의 화법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핵심 메시지에 해당하는 대사인데, 물 흐르듯이 슥 지나가더군요. 종교적 비유도 많고요.


조복래 : 그런 부분을 건들기만 하고 속 시원하게 벗기지는 않더라고요. 시나리오상의 개념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제가 따로 공부할 수도 있지만, 감독님의 의중이 어떨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니까요. 덕분에 질문을 많이 했죠. 그래도 곱씹어 볼수록 재미있는 대사들이라, 나중에는 되려 좋았어요.


여균동 : 정말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정신 사납고 멍청한 감독을 만난 거죠. 하하.


조복래 : 사실 그건 저만의 궁금증 아니었어요. 조감독님과 다른 스태프들이 ‘이상한데’라고 공통적으로 말을 하면, 제가 그 힘을 바탕으로 감독님께 이야기를 한 거죠.


여균동 : 어, 나만 완전 독재자 역할이야?


조복래 : 아닙니다. 되게 열려 있었어요. 다 받아주셨고. 하지만 제 뒤에는 감독님의 두 딸들이 있었죠.(웃음)


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예수보다 낯선’ 조감독과 미술감독이 여균동 감독의 가족입니다. 두 딸이 아버지의 작품에 참여했어요.


여균동 : 원래는 둘 다 미술 관련 전공입니다. 대충 영화와 관련은 있는 거죠. 분장까지 담당했어요. 매일 배우들에게 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그럴 돈이 어디 있나요. 밥값도 없는데. 그래서 제 딸이 ‘1724 기방난동사건’ 분장 감독에게 속성으로 1시간 교육을 받았죠. 그걸 영상으로 찍어서 정리를 하더니, 해내더라고요.


영화감독의 딸은 극한 직업에 노출되어 있군요. 생고생으로 치면 조복래 배우도 빼놓을 수 없죠. 한겨울 바닷가에 입수했어요. 예수는 물 위를 걸어야 하니까.


조복래: 예수니까 물 위를 걸을 수 있을 줄 알았죠. 하하. 어차피 NG 나면 다시 해야 하니 그냥 천천히 걸어 들어갔어요. 발가락 하나가 물에 닿았을 때부터 너무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여균동 : 돌이켜 생각해보면 해서는 안 되는 신이었죠. 설악산 계곡물에 발 담그고 있으면 아프잖아요. 그거의 열 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살아나온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죠. 그 뒤로 스태프들이 복래에게 잘해주더라고요.


조복래 : (제가 못 돌아왔으면) 다들 감옥에 갈 뻔했으니. 죽다 살아나면 이런 것들이 좋아지는 거죠.


# ‘낯선’ 시리즈, 유쾌하고 부드럽고 귀엽게


‘예수보다 낯선’은 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관객을 만났어요. 다들 반응이 어떻던가요?


여균동 : 많이 걱정했는데, 잘 웃더라고요. 굉장히 호의적으로 영화를 봐줬어요. 물론 갈수록 조용해져서 ‘내가 뭔가 잘못했나’ 싶긴 했지만. 제주에서도 상영을 한 적 있는데,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게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네요. 평범하고 쉽게 지나가는 대사들인데, 사실은 좀 어려운 말들이 있거든요. 여유가 있다면 2~3번은 보시면 좋겠어요.


조복래 : GV 영상을 녹화해서 관객에게 주석처럼 보여주면 어떨까요. 클릭하면 감독님이 주석을 달듯이 말씀하시는 거죠.(웃음)


하고 싶은 일을 행복하게 하면서 타인과 공존하는 삶이 ‘예수보다 낯선’의 메시지죠. 보편적인 주제를 뻔하지 않게 풀어냈습니다. 


여균동 : 요즘 험악하고 심각한 영화들 많아요. ‘예수보다 낯선’은 부드럽고, 귀엽고, 다소 형이상학적인 영화입니다. 무겁지 않으니 많이들 보셨으면 좋겠어요.


조복래 : 감독님이 ‘낯선’ 시리즈 3부작을 준비 중이거든요. ‘예수보다 낯선’ 다음 작품이 정말 재미있어요.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데, 후반작업 중입니다. 관객들이 고찰할 수 있는 부분이 예쁘게 잘 담겨 있어요. 그런 것들이 여균동 감독만이 가진 색깔인 것 같아요. 


성선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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