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하려고 신발에 병뚜껑 넣고 다닌 배우

조회수 2019. 3. 13.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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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독을 품은 설경구, 갈 데까지 가보자

설경구는 집요하고 단순하다. 일단 목표가 설정되면, 거침없이 달려간다. 한눈팔지 않는다. 그럴수록 이 배우의 온도는 더욱 뜨거워진다. ‘우상’은 설경구의 격렬하고, 때로는 압도적이기까지 한 에너지를 만날 수 있는 영화다. 1년 6개월만이라 더욱 반가운 그 얼굴을 만났다.


사진 CGV 아트하우스

# 견고한 세계에서 내던져진 자의 절박함


‘살인자의 기억법'(2017) 이후 18개월 만에 ‘우상’이 개봉합니다. 유중식이란 인물의 무엇이 설경구를 끌어당겼을까요?


궁금했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참 답답하다’ 싶었거든요. 그게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물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유중식은 구명회(한석규)나 최련화(천우희)에 비해 이해하기 쉬운 인물이예요. 아들 유부남과 견고한 성을 쌓고 살아가죠. 거기에는 아무도 못 들어옵니다. 그게 아들의 죽음으로 깨져버린 거잖아요. 다시 견고하게 만들고 싶겠죠. 그 절박함이 원동력이었을 겁니다.


유중식은 가장 뜨겁게 시작했다가, 가장 차갑게 끝을 맺는 인물입니다. 초중반에는 늘 상기된 얼굴과 목소리로 등장하죠.


이수진 감독이 저보고 ‘항상 독을 품고 현장에 와 있다’라고 했어요. 매 영화가 그렇지는 않아요.(웃음) ‘우상’은 그래야만 했습니다. 중식이는 늘 헐떡이는 캐릭터입니다. 이름부터 점심이란 뜻이잖아요. 아침을 건너 뛰고 허겁지겁 먹어대는 점심 같은 삶을 살죠.


제 신은 항상 숨이 찼어요. 전사가 없는 캐릭터다 보니까, 늘 준비를 하고 현장에 와야했죠. 말도 하면 안 됩니다. 에너지를 머금어야 해서요. 감독님과 대화를 하는 한석규 형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저는 여유가 없었죠. ‘왜 빨리 안 찍나’ 싶고. 하하.


사진 CGV 아트하우스

# 설경구의 노란 머리에 담긴 의미


외모 변화도 눈에 들어옵니다. 머리는 노랗고, 얼굴은 헬쓱하고, 피부는 까무잡잡한 설경구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탈색은 개인적으로 좋았어요. 안 해본 거니까요.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이니, 얼굴도 태닝 했죠. 머리색은 아들과 동질감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아들도 노란머리거든요. (지체 장애가 있다보니) 혹시라도 아이를 잃어버리면 바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담겼어요.


그러고 보니 탈색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극 중 천우희 씨가 눈썹을 밀고 나오는데, 이수진 감독이 그걸 보더니 자기도 눈썹을 밀겠다고 했대요. 탈색을 한 저한테는 “저도 탈색을 할까요?”라고. 제가 말렸죠.(웃음)


극 중 다리를 저는 장면도 등장하잖아요. 몰입을 위해 좀 특별한 방법을 썼다고 들었어요.


그 설정을 표현하려고 병뚜껑을 발바닥에 처박았어요. 아무리 연기라지만, 저도 자극이 있어야 하니까요. 늘 부족함을 느끼거든요. 시사회에서 완성된 영화를 보고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어요. 저는 계산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좀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 장면이 군데군데 있어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 이후 계산한 장면이 더 크게 와닿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사진 CGV 아트하우스

# 귀여운 형님, 부러운 후배


어느덧 데뷔 26년차입니다. 웬만한 현장에서는 하늘 같은 선배님일텐데요. 그런 설경구도 한석규 옆에서는 귀여운 동생 같더군요.


에이, 석규 형이 귀엽죠. 하하. 예민한 스타일인줄 알았어요. 사석에서 알던 사이지만, 현장에서는 또 틀리잖아요. 그런데 형이 현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굉장히 애를 썼어요. 실없는 소리도 하면서요. 감독님과 계속 대화도 하고, 같이 산이랑 들도 갔다오고 그러더라고요. 처음에는 감독님이 “나 집중해야하는데 말 시켜서 힘들어”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고맙더래요. 본인을 이완시켜줘서. 저는 어땠냐고요? 뭐, 계속 예민한 상태로 있었죠. 하하.


한국 영화에서 어려운 여성 캐릭터는 다 천우희에게 간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던데. 현장에서 천우희는 어떤 동료였나요?


부러운 동료였죠. 우희가 배역 때문에 6개월 간 눈썹을 밀었거든요. 그런데도 촬영장에서 ‘헤헤’ 웃더라고요. “뭘 그렇게 웃어?”라고 하니 “그럼 울어요?”라고.(웃음) 최련화도 유중식처럼 되게 예민할 수 있는 캐릭터거든요. 어마어마한 괴물 같아요. 무섭고 파괴적인 면도 있고요.


사진 CGV 아트하우스

# ‘우상’ vs ‘생일’, 설경구 대 설경구


‘우상’과 ‘생일’이 2주 간격을 두고 개봉합니다. 최선을 다한 작품들이 짧은 텀을 두고 경쟁해야하는 상황이 마음이 쓰이실텐데요.


맞아요. ‘진짜 나한테 왜 이래~’ 싶기도 하네요.(웃음) 지난해에는 개봉작이 하나도 없었는데, 올해 상반기는 2주 간격으로 공개되니까요. 상황이 이렇게 주어졌으니 어쩔 수 없죠. 열심히 달리는 수밖에. 둘 다 성격이 틀린 작품들입니다. ‘생일’은 (세월호 참사가 소재라)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해야하니까요.


조만간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 촬영에 돌입하죠?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인 작품입니다.


사실 지난해 가을에 작업에 들어갔어야 했어요. 그런데 전작 스태프들을 다시 모으려고 기다리느라 해를 넘겼죠. 지난해 12월에 소집이 됐고, 사전 작업도 늦게 시작되었어요. 저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팀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건강한 또라이’라고나 할까요? 보통 ‘건또’라고 하죠. 하하! 그 사람들이 다 모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죠. 그런데 유혹이 많았음에도 흔쾌히 시간을 빼줬어요. 기분이 참 좋습니다.


‘소원'(2013) 이준익 감독과는 ‘자산어보’로 다시 만납니다. 아직 사극을 한 번도 안 해봤다는 사실이 의외였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안이 들어온 적은 있는데, ‘나중에 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나이를 먹으니까 마음이 좀 급하더라고요. 배우인데 갓도 한 번 못써보고 끝나나 싶고. 마침 이준익 감독이 사극을 많이 해본 연출자이니까요. 갓을 쓴 제 모습이 궁금합니다. 저예산으로 찍는 흑백 영화인데, 익숙한 배우들이 꽤 모였어요. 저는 멋있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사대부 집안 출신인데 촌부처럼 사는 인물이죠.


성선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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