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부터 <아이 캔 스피크>까지, 이제훈의 뜨거웠던 순간 6
누구보다도 바쁜 한 해를 보낸 배우 이제훈이 부산의 가을 바다를 찾았다. 올해만 그의 출연작 2편이 개봉했지만 이제훈은 아직도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다.
‘한국영화기자협회와 함께하는 오픈토크-더 보이는 인터뷰 이제훈 편’이 10월 14일(토) 오후 해운대 야외무대에서 진행됐다. 이제훈은 독립영화계 스타로 불리던 <파수꾼>(2011) 시절부터 다작 배우가 된 지금까지를 돌아보며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 관객들과 교감했다. 그가 꼽은 ‘이제훈의 뜨거웠던 순간들’을 모았다.
1. “영화와 배우를 동경하던 공대생”
<밤은 그들만의 시간>(2007)이 첫 영화인 이제훈은 올해 스크린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동경해왔던 그는 고3 시절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길 원했다. 부모님의 반대로 생명공학도의 길을 걸었던 이제훈은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했다.
이제훈은 “어린 시절 영화를 많이 봤다. 스크린에 나오는 배우들을 동경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저 속에 있어도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않을까’ 싶어 친근했다”라며 “그 꿈을 안에서만 갖고 있다가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뭘까’를 고심했다”라고 진로를 변경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처음에는 1~2년 정도만 연기를 해보려 했다. 군대에 다녀와서는 계속 공부할 생각이었다. 연기는 1~2년하고 끝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면 할수록 부족한 점이 보인다. 그걸 극복하고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25세에 학교에 새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연기에 인생을 제대로 걸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라며 늦은 나이에 연극원에 입학하기까지 과정을 언급했다.
2. “나 역시 BIFF를 통해 발견된 배우”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겠다는 이제훈의 결심은 3년 만에 결실로 이어졌다. <파수꾼>과 <고지전>(2011)으로 연달아 호평을 받으며 그해 주요 영화제 신인상을 휩쓸였다. <파수꾼>으로 48회 대종상과 32회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고지전>으로 20회 부일영화상와 3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남우상을 받았다. BIFF과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이제훈은 “<파수꾼>으로 2010년에 BIFF에 왔던 기억이 난다. 무대인사도 했다. 그때는 <고지전> 촬영을 마친 직후라 머리를 빡빡 민 상태였다. 내가 출연한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한 걸 본 뒤에 들었던 마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어떻게 보면 나도 BIFF를 통해 발견된 배우가 아닐까 한다”라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3. “<박열>은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한 작품”
충무로 유망주였던 이제훈은 6년 사이 한국 영화계를 이끄는 주역으로 성장했다. 올해만 그가 출연한 두 작품이 관객을 찾았다. 6월 개봉한 <박열>과 9월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는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두 작품은 일제강점기에서 비롯된 한국 근현대사의 그림자를 비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훈은 “<박열>은 가슴 아픈 역사를 다룬 작품이다. 실존 인물이 주인공이기에 이야기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가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대로 해봐야지’라는 욕망이 들어도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가’ 자문하고 관객들에게 메시지가 잘 전달되도록 연기했다”라고 촬영 과정을 회상했다.
<박열>은 이제훈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제훈은 “박열은 속에는 불덩이를 품고 있는 인물이지만 외적으로 굉장히 지저분하게 나왔다. 머리는 산발에 거친 수염은 물론 표정까지 어두웠다. 그런 모습을 내가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관객들이 ‘잘 어울린다’고 해주셔서 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제훈은 이날 CGV 센텀시티 2관에서 진행된 <박열> GV에 참석해 관객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4. “<아이 캔 스피크>,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위로가 되길”
이제훈의 연기 스펙트럼은 <아이 캔 스피크>를 통해 또 한 번 확장됐다. <박열>과 3개월 시간차를 두고 개봉한 작품이다. 극 중 그는 원칙주의자인 9급 공무원 박민재 역을 맡았다.
<아이 캔 스피크>의 박민재는 일제시대의 반항아 박열을 연기한 <박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훈은 “연기는 개인적인 표현 수단이기도 하지만, 관객이 희로애락과 감동을 느꼈으면 하는 생각 때문에 하는 일이기도 하다. <박열> 촬영 당시 나는 실존 인물에 대해 전혀 몰랐다. 작품을 통해 그분이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을 배웠다”라고 밝혔다.
해결되지 못한 한국의 아픈 역사에 대한 관심은 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아이 캔 스피크> 출연으로 이어졌다. 이제훈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 그들이 겪은 일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해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현재진행형인 비극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다.
5. “수지와 최희서 그리고 나문희, 나의 여배우들”
이제훈의 주요 출연작에는 여성 배우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건축학개론>(2012)은 배수지, <박열>은 최희서, <아이 캔 스피크>는 나문희와 함께했다. “배우들과 앙상블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밝힌 이제훈은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과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걸 즐긴다.
이제훈은 “수지와 나는 영화 속에서 동갑으로 나왔다. 실제로는 열 살 차이다. 촬영할 때 세대 차이를 안 느끼게 하기 위해 친근하게 대했다”라고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최희서에 대해서는 “<동주>(2016)를 통해 많은 관객에게 인식됐고 <박열>로 제대로 각인됐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서 손색이 없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중견배우 나문희는 이제훈의 롤모델이다. 이제훈은 “나는 촬영장의 모습과 일상이 간극이 크다. 반면 나문희 선생님은 작품에서 보이는 모습과 일상이 같다. 정말 따뜻하고 포근하셔서 우리 할머니 같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선생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라며 많은 이들에게 친근하게 기억되고 싶은 소망을 밝혔다.
6. “맨몸으로 부딪히는 액션 연기 도전하고 싶다”
조선 최고의 불령선인부터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까지. 이제훈이 품고 있는 얼굴은 다양하다. 그는 “아직도 보여드릴 게 많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올해 두 작품을 개봉하면서 쉬지 않고 달려온 이제훈은 “체력적으로 지치는 순간들도 있지만 좋은 이야기를 만나 연기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린다”라며 촬영장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제훈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또 다른 얼굴은 액션 배우다. 그는 “혈기 왕성한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액션 영화를 하면 참 좋겠다. 젊었을 때 맨몸으로 부딪히는 액션 연기를 해보고 싶다”라며 <본> 시리즈를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이제훈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권투 영화가 많았었는데 최근에는 없더라”며 권투 영화의 팬임을 밝혔다.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넓혀온 부지런한 배우 이제훈. 그의 최종 지향점은 “관객이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은 배우”다. 이제훈은 “연기는 내가 갖고 있는 자양분을 끄집어 보여주는 작업이다. 예술적 감성을 채우기 위해 평소 여행과 미술 음악 감상을 꾸준히 하고 있다. 나 역시 여러분에게 영화로서 예술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며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배우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제훈은 올해 펼친 활발한 활동에 힘입어 ‘더 보이는 인터뷰’ 게스트로 초청됐다. 그는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내년과 내후년에도 이런 자리가 마련돼 많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박열>은 10월 20일(금)까지 BIFF에서 만날 수 있다.
+22회 BIFF에서 이제훈 주연의 <박열>을 보고 싶다면
10월 17일(화) 16:30 |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10월 20일(금) 13:30 | 메가박스 해운대(장산) 5관
부산=글 성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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