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그 '님' 찾기 민진웅 | 야누스의 비기

조회수 2017. 2. 27. 11: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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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의 편수는 많지 않지만 민진웅은 늘 극 중에서 자신의 존재감으로 반짝거렸던 배우다.

증거도 없이, 자백만으로 목격자가 살인범으로 뒤바뀐 사건이 있었다. 억울하다고 말하기에도 벅찬 기가 막힌 실화. 김태윤 감독의 <재심>은 일명 ‘약촌 오거리 사건’으로 불리는, 2000년도에 전북 익산에서 벌어진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다.

출처: <재심>은 목격자에서 살인자로 바뀐 기구한 운명의 청년 현우(강하늘)와 그를 돕는 변호사 준영(정우)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 오퍼스픽쳐스

목격자에서 살인자로 바뀐 기구한 운명의 청년 현우(강하늘)와 그를 돕는 돈도 소속된 회사도 없는 벼랑 끝의 변호사 준영(정우)의 이야기를 담은 <재심>은 휴먼 드라마의 익숙한 구조에 버디물의 장르적 결합으로 실화의 힘을 증폭시키는 작품이다.



다소 고르지 않은 호흡의 연출이지만 <재심>이 관객을 끌고 가는 힘은 강력하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어촌 마을의 풍광을 배경으로 분노를 일으키는 악역, 눈물이 절로 나오는 가족 관계 거기에 낯선 두 남자가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는 관계의 서사까지 <재심>은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에 붙들어 맨다.



<재심>이 관객을 설득하고 몰입시키는 대부분의 힘은 배우들에게서 나온다. 주인공 현우의 어머니를 연기한 배우 김해숙이라는 단단하고 든든한 기둥을 중심으로 각 배우의 명징한 이미지로 자신의 가지를 곧게 뻗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tvN,2013)와 <히말라야>(2015)에 이어 <재심>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역할을 맡은 정우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진지함에 더해진 진한 감정연기로 누군가를 다독여줄 수 있는 가볍지만 무거운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지난해 <동주>의 윤동주 역할을 통해 청년의 해사함에 시대의 무게를 더했던 강하늘은 부서질 듯 강인한 청년의 여리고 진중한 모습을 또 한 번 훌륭하게 입체화했다. 여기에 더해 기억해야 할 배우가 있다.

출처: <재심>에서 민진웅이 연기한 살인범 오종학은 기함할 정도로 뻔뻔스러운 동시에 이상하게도 처연한 인물이다. 사진 오퍼스픽쳐스

<재심>의 중반부 여러 번 시선을 빼앗는 배우는 진짜 살인범 오종학을 연기한 민진웅이다. 민진웅은 <재심>의 장르적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다. 억울한 누명의 세월 뒤로 사라져 숨어있던 진짜 살인범 오종학은 기함할 정도로 뻔뻔스러운 동시에 이상하게도 처연한 인물이다. 출연 분량은 많지 않지만 수사극과 드라마의 중간 다리 역할로서 굉장히 중요한 캐릭터인 동시에 배우로서는 서사의 단면에서 복합적인 감정 표현을 연기해야 하는 쉽지 않은 역할이기도 하다.



<패션왕>에서 만화책 속 인물과 놀랍도록 닮아있던 두치, <동주>에서 송몽규의 곁을 함께하던 청년 강처중 그리고 놀랄 만큼 유쾌한 성대모사로 재미의 센터를 지켰던 <혼술남녀>(tvN,2016) 민진웅 교수까지 필모그래피의 편수는 많지 않지만 민진웅은 늘 극 중에서 자신의 존재감으로 반짝거렸던 배우다.



지금까지 작품에서 배우 민진웅은 슬픔을 감춘 채 웃던 광대와 같은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왔다. 다소 과장된 캐릭터의 결들은 민진웅이라는 배우가 가진 특유의 유쾌함 덕에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생활형 코믹 캐릭터로서의 안정감을 얻었다.

출처: 민진웅은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쓴 민진웅 교수를 맡아 웃음과 눈물을 적재적소에 드러냈다. 사진 tvN

특히 드라마 <혼술남녀>의 민교수 캐릭터는 희비극의 경계에 서 있는 현대인 캐릭터를 배우의 꼼꼼한 해석과 능숙한 연기를 통해 만들어낸 민진웅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웃음 뒤에 감춰진 눈물을 적재적소에 꺼내 보일 줄 알았던 민진웅에게 <재심>은 그가 가진 웃음과 눈물의 저장고 사이 어딘가 위치한 어둡고 끈적이는 감정들을 내보인 작품으로 큰 의미가 있다.



<재심>에서 민진웅의 몸과 목소리를 통해 살인마의 섬뜩한 미소와 분노와 격정으로 들끓던 표정은 선연하게 스크린에 수놓아졌다. 어떤 감정을 드러내고 거두는 일을 능란하게 해내는 민진웅의 섬세한 연기에 보는 내내 감탄했다. 마치 클라운 닥터처럼 희비극을 오가던 야누스 같던 민진웅의 또 다른 비기는 아마 그가 가진 무수한 패 중에 여전히 작은 한 부분일 거란 생각이 든다.

글 진명현(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영화의 순간을 채색하는 천변만화의 파레트, 배우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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