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가진 자의 은밀한 욕망, 군사 쿠데타

조회수 2017. 6. 18.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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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XIM 글 김민석/정리 정도윤
'정부에 일격을 가한다'는 뜻의 프랑스어,
쿠데타(coup d'état)의 사례를 살펴보자.
출처: pixabay
대부분의 정변은 군인이 왕이 되고자 하는 것이고 왕조의 교체는 곧 나라 교체였기 때문에 근대적 개념의 쿠데타와는 차이가 있다. 오늘날의 쿠데타란 공화국의 기본 원칙인 국민에 의한 권력 창출이 부정되는 상황이라 규정할 수 있다.
출처: pixabay
군사 쿠데타의 원조, 나폴레옹
쿠데타의 원조라 할 프랑스의 대표적 쿠데타 사례는 역시 나폴레옹이다. 18세기 말, 향락에 빠져 민생을 도탄에 빠트린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낸 뒤 공화정을 이룩한 프랑스는 유럽 전체와 싸우게 된다.
출처: MAXIM KOREA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한 프랑스. 이때 등장한 이가 바로 나폴레옹이다. 코르시카 출신의 장교였던 그는 이집트 원정을 떠난 사이 정부가 오스트리아에 연패를 거듭하는 막장 상황이 벌어지자, 참다못해 정부를 뒤엎을 계획을 세운다.
출처: pixabay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의 성공으로 나폴레옹은 제1통령이 되고, 임기를 10년에서 종신으로 늘린 뒤 결국 황제로 등극한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지지해 성공한 사람이, 결국 스스로 공화정을 끝장낸 후 왕정으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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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망친 일본의 막장 쿠데타
일본에서 일어났던 수차례의 쿠데타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큰 피해를 준 비극적 사건으로 꼽힌다. 나라를 변혁하려던 일본은 한 국가를 모델로 선택하는데, 하필 그게 국가 재정의 3분의 2를 국방비에 쏟아붓던 프로이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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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의 5·15 사건은 런던 해군 군축 조약에 불만을 가진 해군이 이누카이 수상을 죽인 명백한 쿠데타였다. 하지만 이 사건 역시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못한다. 당시 일본이란 나라 전체가 제정신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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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국주의는 결국 태평양 전쟁이라는 참혹한 결말을 낳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일본 정부와 천왕이 쿠데타 세력을 애초에 제대로 처벌했다면 태평양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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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가 뭐 별건가? 우린 맨날 하는데?
한편, 쿠데타가 마치 삼시 세끼 밥 먹듯 자주 일어나는 국가도 있다. 태국은 강력한 왕권을 지니고 있기에 왕을 교체하는 쿠데타가 애초부터 이뤄질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태국에선 아주 특이한 형태의 쿠데타가 벌어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이 당선되면,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왕을 찾아간다. 만약 왕이 허락하면 군인이 총리에 임명되고, 반대로 왕이 인정하지 않는 순간 군대는 얌전히 철수한다. 이렇게 말 잘 듣는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출처: MAXIM KOREA
터키 역시 10여 년 주기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는 나라다. 터키 군부는 '그릇된 정치 세력을 몰아내고 국가를 수호한다'는 논리를 따르고 있다. 근데 말이 국가 수호지 그냥 수틀리면 나라 뒤집는다는 얘기니 영 설득력이 떨어진다.
출처: MAXIM KOREA
우리도 있다! 하극상의 결정판 12·12
대한민국도 쿠데타 하면 빠질만한 나라가 아니다. 특히 12·12 군사 반란의 경우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울 때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해서 군대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 행동이 특히 악질적이라 할 수 있다.
출처: MAXIM KOREA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혼란을 틈타 야심을 품는다. 1979년 12월 12일,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한 전두환과 하나회는 기습적으로 군사력을 동원해 정부 요처를 장악했다.
12·12 군사 반란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다른 쿠데타와 달리 유혈 사태가 크지 않았지만, 불법적으로 정권을 뺏긴 국민이 감수했던 희생은 그 무엇보다도 컸다. 권력을 쥔 이들의 탐욕이 나라 전체를 오래도록 병들게 했기 때문이다.
현대의 쿠데타는 과거보다 대의명분의 확보가
훨씬 중요해졌다.
모름지기 민주주의 국가의 바람직한
변화는 군대가 아닌 시민의 힘으로 이뤄내야 한다.
최근의 우리처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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