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라" 방향지시등, 왜 아끼는걸까?
사람이 살다 보면 깜빡하는 것들이 있다. 출근할 때 지갑을 깜빡하는 것과 같이 사소한 실수부터, 약속을 깜빡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도 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는 나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운전자들과 함께 달린다. 그렇기에 서로서로 지켜야 할 약속이 있으며, 상대방의 안전이나 재산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들은 법으로 강제하여 모두를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운전자들이 사소하다고 생각하지만 매우 중요한, 그래서 법으로도 정해져 있는 도로 위의 약속이 있다. 바로 방향지시등이다.
얼마 전 마카롱 게시판에 수많은 운전자들의 공감을 받은 '혐오하는 차량 리스트 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방향지시등 미점등 차량.'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깜빡이를 제대로 안 켜는 우리나라 운전자는 10명 중 3명꼴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여러 커뮤니티에서 깜빡이 없이 끼어드는 차량에 대한 분노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방향지시등 없이 진로를 바꾸는 것은 명백한 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모든 운전자가 알고 있는 걸까?
또한 최근에는 국민신문고, 스마트폰 앱을 통해 블랙박스로 신고도 많이 하는 추세인데, 왜 아직 도로에는 깜빡이 없이 차선을 변경하는 차들이 이리도 많을까?
이렇게 열심히 신고해도 교통법규를 위반한 운전자들은 경고 조치 또는 미미한 범칙금을 부과 받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범칙금은 고작 3만 원이다. 깜빡이 없이 끼어든 차 때문에 뒤에 오던 차는 사고가 나서 다칠 수도, 차를 수리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 모든 위험부담의 대가가 3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 신고를 투철하게 하여도 위반자가 크게 도로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았다면 경찰의 단순 경고 조치로 끝날 수도 있다.
호주의 경우 방향지시등 법규 위반 시, $187 호주 달러에 감점 2점, 우리 돈으로 약 15만 원에 해당한다. 정지신호 미준수와 같은 신호위반은 36만 원, 속도위반은 초과 속도에 따라 100만 원이 넘어가기도 한다.
2016년 기준으로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한국이 2.0명 호주가 0.7명이었다.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로 따졌을 때는 한국이 9.4명, 호주가 4.9명이다.
통계로만 보면 강한 법규가 교통사고율을 낮춰줄 수 있는 것도 같다. 하지만 범칙금이 약해서 법규를 위반한다는 말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법규는 법규라는 이유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깜빡이를 켜지 않는 행위 자체가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부재한 것도 우리나라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사망사고와 같은 큰 사고가 1건 났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가벼운 사고가 29건, 같은 원인으로 사고가 날 뻔한 잠재적 사고가 300건 있었다는 법칙이다. 때문에 하인리히의 법칙은 1:29:300의 법칙이라 부르기도 한다.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방향지시등과 같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법규도 잘 지켜지지 않는 나라가 교통사고 사망률이 OECD 최상위권이라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