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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하지 않아서 굴비' 사실일까?

YTN '재미있는 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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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나 관용구에는 어떤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YTN의 '역사이야기' 에서 같이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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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코 굴하지 않겠다' 뜻 가진 굴비, 어원은?

고려 중기 막강한 외척가문이었던 인주 이씨 이자겸은 16대 예종에게 딸을 시집보낸 후 왕의 장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 둘의 소생인 17대 인종을 보위에 올리고 외손주 인종과 그의 셋째 넷째 딸과 혼례를 치르게 하였습니다. 이쯤 되자 2대에 걸쳐 왕의 장인이 된 이자겸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고 마침내 이자겸은 이 씨 성을 가진 자가 나라를 얻는다는 도참설을 내세워 난을 일으켜 왕이 되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종과 합세한 무신 척준경에 의해 난은 진압되었고, 이자겸은 영광 법성포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난에 실패한 분을 참지 못한 이자겸은 그 곳의 특산품인 말린 참조기를 왕에게 진상하면서 고기의 이름을 '굴비'라 지었습니다.

"선물은 주되, 결코 비굴하게 굴복하지 않겠다."

이때부터 말린 참조기는 굴하다 굴 아니할 비의 한자 이름 굴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선물은 주되 결코 비굴하게 굴복하지 않겠다."
2.조선시대에 말을 기르던 곳 '마장동'

조선시대 말 한필은 노비 3명과 맞바꿀 정도였으며 국가적 재산으로 중요 관리 대상이었습니다. 말의 수요가 많아지자 전국에는 나라의 말을 기르는 '양마장'이 설치됐고 현재의 '마장동'은 말을 키우던 최적지 중 한 곳이었습니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마장동의 역사는 조선초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장동'은 말 그대로 말을 기르던 양마장이 있던 데서 그 지명이 유래됐습니다.

청계천을 끼고, 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었던 마장동. 질 좋은 풀을 공급할 수 있어 말을 기르기에 그야말로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오호 마장동은 말을 기르는데 최적화된 곳이었군요!
3."도로 묵이라 불러라" 말짱 도루묵

때는 바야흐로 1592년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선조시대….선조는 궁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황급히 피난길을 준비하다보니 매번 부실한 수라상을 올려야했던 신하들은 황망한 마음에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이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한 어부는 손수 잡은 생선을 진상하기에 이르렀는데요. 생선의 맛을 본 선조는 참 맛이 좋다하여 어부를 불러, 생선의 이름을 묻기 이르렀는데 그 이름이 묵이라 하자, 맛에 비해 이름이 하찮다하여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궁으로 돌아간 선조 호화로운 수라상에도 그리운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묵이라 불렸던 생선, 은어! 그때 그 맛을 느껴보고자 다시 받은 은어. 그런데, 그 맛을 본 선조의 얼굴은 당황함이 가득했습니다.

"도로 묵이라 불러라"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도로묵이 된 이 생선은 도루묵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요즘에는 별 소득이 없는 일을 뜻하는 '말짱 도루묵'이라는 표현으로도 쓰인 답니다.

도로 묵이라고 전해라~
4.'노다지'의 뜻에 담긴 슬픈 우리 역사

이 이야기는 고종과 미국인 선교사 알렌과의 친분에서 시작되는데요. 언변과 사교술이 뛰어났던 알렌은 고종을 설득해 광산채굴권을 따냅니다. 이후 알렌에게 운산광산 채굴권을 넘겨받은 미국인 사업가들은 조선인들을 고용해 광산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금이다!"

"No touch! No touch!"

"뭐라는 것입니까! 노타지? 노다지! 미국 사람들은 금을 노다지라 하는가 보오!"

광산에서 금이 발견되면 미국인들은 가져가지 말라고 노터치를 조선인들은 금이 나왔다며 노다지라 불렀던 겁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금이나 우연히 귀한 것을 보면 노다지라 했다고 합니다. 사실 알렌은 고종에게 단돈 25만원을 주고 채굴권을 가져갔는데 당시 운산금광의 연간 생산액은 4950만원, 요즘 시세로 3에서 4조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뜻밖에 횡재를 하거나, 귀한 것을 일컫는 말 노다지. 그 속에는 개화기 서양인들에 의해 경제적 수탈을 당하는 지도 모르고 자신들의 일만 묵묵하게 해냈던 조선 광부들의 슬픈 역사이야기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노다지에 이런 슬픈 역사가 담겨 있었군요...흑흑
5.막사발이 일본의 보물로 칭송된 이유는?

일본 차 문화의 창시자인 센리큐에 의해 일본의 보물 이도다완이 된 막사발. 그가 막사발을 선택한 이유는 막사발의 모양이 당시 일본 찻잔과 달랐기 때문인데요. 대칭적이고 규격화된 완벽의 미를 추구했던 일본 찻잔에 반해 파격적인 미를 갖추었던 막사발. 분청자가 입혀진 거친 단면은 자유분방함의 미를 뿜어냈다고 합니다. 또한 자연스러움의 미를 갖춘 막사발의 자태를 본 센리큐는 “찻잔 내면이 마치 작은 옹달샘과 같구나!” 라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자연과 인공의 솜씨가 절묘하게 배합된 막사발에 일본인들이 반한 것이죠.
(중략)
안타까운것은 현재까지 200여점이 전해지는 전통 막사발은 일본에 있고 정작 막사발의 종주국인 우리에게는 전통기술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일본열도를 강타한 우리의 그릇 막사발. 다시 찾아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자유분방함의 미를 뿜어내는 우리의 막사발...
꼭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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