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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여교수의 욕망' 함부로 보면 안되는 이유

마음이 배고픈 이들을 위한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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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이 있습니다

비엔나의 한 음대.

출처다음 영화

젊은 제자는 나이많은 교수님에 호감을 느낍니다.

출처다음 영화

교수님은 젊은 제자를 정복하고 싶어합니다.

출처다음 영화
까칠

보통의 여교수와 제자 레토릭이 재현되는 줄 알았으나.. (이 곳은 화장실이긴 합니다만..)

출처다음 영화

매일 포르노샵을 들락거리던 사도마조히스트 교수님은 제자에게 '사슬로 묶고 채찍질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출처다음 영화
좀 웃어봐

제자는 그 얘기에 따라 아주 가혹하게 주먹을 휘두릅니다. 교수님의 노모에게 까지도요.

출처IMDB

자기가 시켜놓고서는.. 칼을 들고 복수하러 제자를 찾아간 교수님은 결국 자신을 찌르고야 맙니다.

출처다음 영화
좌절
무슨 이런 변태같은 줄거리가 있냐고요?


그런데요...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 '피아노 치는 여자'

『피아노 치는 여자』는 2004년 옐리네크에게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으로, 자전적 성격이 짙은 소설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소설은 남편의 빈자리를 딸이 대신해줄 것을 기대하며 딸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간섭하는 어머니와 그에 억눌려 욕망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출하는 딸 에리카의 이야기를 그린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에리카는 어머니의 지나친 집착과 간섭으로 인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사디즘 성향과 함께 아버지가 쓰던 면도칼로 자기 몸을 자해하는 마조히즘 성향을 함께 지니게 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오스트리아의 여성 소설가 겸 시인이자 극작가인 엘프리데 옐리네크(57・사진)가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7일 “옐리네크가 소설 등의 작품을 통해 비범한 언어적인 열정으로 사회의 진부한 사상과 행동, 그리고 그것에 복종하는 권력의 불합리성을 잘 보여줬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여성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는 1996년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이후 처음이며 통산 10번째다.

한림원은 “옐리네크 작품들의 중요한 주제가 진부한 이미지들로 가득찬 세계에 완전히 굴종하는 여성의 무능력”이라면서 대표작인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에서 폭력과 굴종의 냉혹한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깜짝!
1983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200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에 앞서 2001년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던 '피아니스트'는
칸 영화제 그랑프리 및 3관왕의
대작으로 인정받기도 했죠.

그랑프리 / 여우주연상 / 남우주연상..그야말로 압도적 위용.

출처IMDB
(로만 폴란스키가 아니라
미하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입니다)

이 소설(영화)에 대해 더 궁금하시죠?
감상평들을 모아 봤습니다.
소설가 정한아가 읽은 '피아노 치는 여자'

이십대의 어느 날, 이 책을 읽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었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입속에는 침묵이 가득 찼다.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고, 나 자신조차 무서워 들여다본 적 없는 스스로의 심연을 보아버린 느낌이었다. 어떤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험이 된다. 감당할 힘 없이 진실을 마주했다가, 우리는 자멸해버릴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미쳐버린 사람들도 알고 있다. 경고하건대 이 소설은 함부로 첫 장을 넘길 책이 아니다.

"포르노같지만 형이상학이다"

한 피아니스트의 변태적 욕망과 사랑을 충격적으로 그린 영화 내용과 더불어, 주인공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의 몸서리쳐질 듯 정확한 연기도 주목의 대상이었다 한다. 결국, 우리 식으로 하자면 2등이라 할 그랑프리(심사위원 대상)와 남녀 주연상이 모두 <피아니스트>에 돌아갔고, 너무 많은 상이 아닌가 하는 질투와 의혹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는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좌파 페미니즘 작가이자 신화 파괴적 글쓰기로 유명한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때로 포르노그래피라는 오인과 공격을 받을 만큼 노골적인 성 묘사로 이름 높은 옐리네크 소설이 원작이니, 지난 해 칸에서의 소란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작 소설에 근접하려고 애쓴 <피아니스트>가 단순히 "야한 소란"만을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일으켰던 화제를 염두에 두고선 아랫도리의 흥분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는다면, 잔혹할 만큼 차가운 주인공 피아니스트의 "엽기적" 욕망에 당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더욱이 포르노그래피의 외피를 어느 정도 덧입고 있는 이 영화가, 실상은 지극한 형이상학의 뼈대 위에 세워진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면 헛된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quot;억압된 사랑의 급류 풀어준 영화&quot;

오스트리아 음악학교 독신녀 피아노 교수 에리카(이자벨 위페르)는 금발의 공대생 클레머(브누아 마지멜)의 슈베르트 연주를 듣고 난 후부터 매력적 안티 러브스토리가 시작된다. 그 이전 에리카 교수는 매일 어머니와 함께 잠을 자며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보살핌을 동시에 받는다. 이로 인해 모녀간의 갈등도 재연된다. 그렇지만 그는 엄격한 피아니스트 교수로 학교생활을 영위해 간다. 그의 내면의 세계는 자신만이 추구하는 이성적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의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해 자동차 전용극장에서 일어난 청춘남녀의 섹스장면을 목격하기도 하고, 섹스숍에서 포르노 쇼를 보기도 하며, 포르노 잡지를 구해 보기도 한다. 누구나 겉으로 보기엔 우아하고 완벽한 교수지만 자신 속 내면의 세계는 사랑에 대한 억눌림과 감정이 항상 동시에 잠재돼 있다. 그의 운명은 공대생 마지멜을 사랑하면서 불온적 사랑이 이어진다.

그녀는 클레머에게 일방적 규칙에 따른 변태적 섹스를 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역설적으로 클레머의 반발적 변태(폭력) 섹스 요구를 강요받는 아이러니한 일로 비화된다. 그러면서 차츰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잘못된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 칼을 찌르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피아니스트>는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스토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장르영화가 다 그렇듯이 어떻게 보면 스토리는 단순한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의 사운드 배치나 한 씬 한 씬 넘어갈 때의 긴장감, 여 주인공의 표정연기 등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영화 <퍼니게임>으로 잘 알려진 미하엘 하네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누구도 상상치 못한 "억압된 성"의 급류를 풀어 준 계기를 마련했다. 이 영화 러브스토리의 시사점이라면 아마도 "억압된 성"의 모순들을 세상에 알렸다는 점이 아닐까.함께 피아니스트를 본 친구는 "보통 사람들의 사랑과 구별된 피아니스트 등 이런 유사한 직업에 종사한 사람들의 이면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랑이 내재돼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편집자 리뷰

1983년에 발표된 옐리네크의 대표작 『피아노 치는 여자』는 자전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다. 주인공 에리카 코후트처럼 옐리네크도 어린 시절 자신을 탁월한 피아니스트로 만들기 위해 철저하게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켰던 어머니를 증오했고,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으로 음악대학을 졸업하고도 음악가의 길을 가지 않고 독문학과 연극을 공부했다고 고백한다. 옐리네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종속적이고 비정상적인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동정 혹은 서글픔 같은 감정은 완전히 배제된, 섬뜩할 만큼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피아니스트가 되는 데 실패하고 음악원 피아노 선생으로 남게 된 에리카는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어머니에게 ‘내 귀여운 회오리바람’이라고 불린다. 어머니에게 있어 딸은 남편(남근)의 부재를 채워주고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줄 유일한 존재이다. 어머니는 에리카의 생활 전체를 통제하고, 딸에게 ‘유일하고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될 것을 역설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한다. 자신과 딸 사이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 에리카가 옷, 구두, 장신구 따위를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도 딸이 예쁘게 꾸미고 다녀 남자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딸이 오로지 ‘자신만의 에리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어머니의 통제는 어려서부터 에리카에게 남들이 가진 물건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갖게 했고, 그것은 곧 자신이 갖지 못한 물건들을 파괴하고 그 소유자들을 학대하려는 사디즘 성향으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지배로 인해 에리카는 사디즘뿐 아니라 자신을 학대하는 마조히즘 성향도 갖게 된다. 자기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아버지가 쓰던 면도칼로 자기 몸을 베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통해 그녀는 자해를 하는 권력자와 그 고통을 감수하는 순종적인 피지배자라는 두 가지 자아를 연출하며 사도마조히즘 성향을 드러낸다.

어머니에게 남성을 대신하는 의미로 존재하는 에리카는 자신의 여성성을 증오하고 부정한다. 가끔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핍쇼(peep show)를 보러 가서 남성들 틈에서 남성적인 태도로 관람하지만, 아무 감정 없이 대상을 관찰하기만 할 뿐, 남성이 될 수도, 남성이 느끼는 감정을 가질 수도 없고, 결국 자신은 여성일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에리카의 제자인 대학생 클레머가 에리카에게 남성으로서 접근해온다. 그는 에리카와 성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집요하게 노력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클레머의 ‘일반적인’ 욕망과, 성적관계에서 남성의 지배자 역할을 박탈해 자신이 그 위치를 점하고자 하는 에리카의 비뚤어진 욕망은 결코 맞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에리카는 성적 흥분이 고조에 달해 고통을 느끼기까지 하는 클레머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하고는 클레머의 몸을 관찰하며, 자신이 원하는 행위, 즉 사슬로 묶고 채찍질을 해달라는 등의 비정상적 요구를 편지에 자세하게 적어 클레머에게 전달한다. 그러면서도 내심 클레머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보통의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이중적이고 자가당착적인 심리를 보인다.

클레머는 남성인 자신이 주도하는 성적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것에 모욕감을 느끼고 복수심에 에리카를 찾아가 그녀가 편지에 쓴 대로 그녀를 폭행하고 성적으로 학대한다. 에리카는 그 일로 깊은 심리적 상처를 입고, 다음 날 칼을 지니고 클레머를 찾아가지만, 마음먹은 대로 하지 못하고 자기 어깨에 칼을 꽂고 만다. 점점 강렬해지는 햇볕을 받으며 걸어가는 에리카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다. 그녀는 집으로, 즉 ‘어머니에게로’ 돌아간다. 결국 에리카는 자신을 철저하게 성불구자로 만든 어머니에게서 끝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출처문학동네
이제 이 무시무시한 소설이
노벨문학상에 선정된 게 납득이 가시나요 :)

영화 '피아니스트' 에 삽입된
주옥같은 클래식 사운드트랙도
함께 소개합니다.
행복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번 다 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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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작 '피아노 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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