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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살아가는 현실 앞에 살기위한 꿈을 노래한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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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한 깊고 음침한 지하감옥. 종교재판을 받기 위해 이곳으로 끌려온 한 남자가 최후변론을 시작한다. 원작 소설의 작가 세르반테스다. 세무 공무원이자 시인이었던 그는 수도원에 세금을 부과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되고, 살벌하게 달려드는 죄수들에 의해 결국 그들만의 재판대에 오르게 된다. 수도원의 부패에 대한 정당한 결백을 주장하며 최후 변론의 방법으로 자신이 쓴 작품을 기반으로 한 즉흥극을 택한다. 작품 속 주인공인 돈키호테를 소환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극 중 극’ 형태(액자식 구성)로 이 극의 서막 또한 열린다.

무대에 캐스팅된 인물들은 지하감옥에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죽음 앞에 방치된 바로 그 죄수들이다.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신의 처지를 개탄하는 주막의 창녀 ‘알돈자’를 하늘에서 내린 여인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그녀의 순결한 본질을 아노라 찬송하는 돈키호테! 그저 허무맹랑한 몽상가처럼 보이는 한 노인이 이리저리 치이며 조롱거리가 되어가는 모습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현실을 비관해 오늘을 포기한 사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흐름에 휩쓸린 사람, 현실 속 이익만을 좇는 사람.. 억척스럽고 이기적으로도 느껴지는 주변 인물들과는 비현실적으로 대비되는 라만차의 기사. 극명하게 드러나는 콘트라스트는 저마다의 현실 속에서 ‘꿈을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잃지 말라!’는 일목요연한 메시지의 수순으로 택한 유희적 시도일까? 짐작하며 그의 행적을 따랐다.


왜 같이 다녀? 얻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알돈자는 그런 돈키호테를 시종일관 무시하고 의심한다. 나는 순결하고 아름다운 둘시네아가 아니야. 더럽고 추잡한 알돈자니 헛된 꿈 꾸게 하지 마! 도대체 내게 원하는 게 뭐야!”라며 절규한다. 여관을 성스러운 성으로 스스로 정하고 그 여관 주인에게 기사 책봉을 받아 감격에 찬 그는 성스러운 여인 ‘둘시네아’에게 정표를 받아오라며 시종 ‘산초’를 보내고 그녀는 묻는다. “그 이상한 사람, 도대체 왜 따라다녀요? 그래서 당신은 뭘 얻지?”

좋으니까 그냥 좋으니까


“좋으니까 그냥 좋으니까 이유가 뭔지 그런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오 하늘에 외치리 나는 주인님이 그냥 좋아” 극 중 극 역할에 오가며 집중했던 미묘한 긴장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천진하다 못해 해맑은 산초의 표정도 한몫했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가며 혹은 충실해지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나름대로의 명목이나 이유 없이 그냥 “좋으니까”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얼마나 있을까?

‘이룰 수 없는 꿈’을 대하는 자세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그 꿈 안에서는 절망하지 않으리”

돈키호테의 꿈은 ‘이루어지리라’가 아니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대하는 자세, 그래서 오늘을 살 수 있는 용기의 기사도를 산초는 알아본 게 아닐까? 젊은 시인 세르반테스와 늙고 쇠약한 돈키호테를 오가는 홍광호의 연기마저 압도하는 그의 목소리는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소. 오직 나에게 주어진 길을 따를 뿐” 으로 시작하는 ‘이룰 수 없는 꿈’의 노래로 완성된다.


국내에서는 2005년 초연된 이후로 15주년을 맞는 <맨오브라만차>(프로듀서 신춘수, 연출/안무 데이빗 스완) 는 코로나19 여파로 개막이 미뤄졌으나, 지난 2월 2일 대망의 막을 올린 후 성원에 힙입어 3월 24일(수)부터 5월 16일(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연장 공연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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