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관객을 드라마 속으로 인도합니다

조회수 2020. 11. 2. 09:59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뮤지컬 음악감독 오민영

관객을 드라마로 인도하는 피아노 컨덕터

뮤지컬 음악감독 오민영

저의 가장 큰 임무는 관객을 자연스럽게 드라마 속으로 안내하는 거예요.

안녕하세요. 오민영 음악감독님.


반갑습니다! 뮤지컬 음악감독 오민영입니다.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다 우연히 접한 뮤지컬에 흥미를 느껴 제 진로가 뒤바뀐 것이 벌써 16년 전의 이야기네요. 뮤지컬에 빠져 지내다 보니 찾아주시는 분이 많아져 음악감독의 자리에 입봉 하게 된 지도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그동안 〈렌트〉, 〈아이다〉, 〈시카고〉,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등의 작품에 넘버를 책임졌고, 특히 7년 만에 뮤지컬 〈렌트〉의 음악감독으로 다시금 관객들을 뵙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코로나 19로 잔뜩 움츠러들었던 공연계가 점차 기지개를 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코로나 19 사태가 종식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여 4월 말부터 조심스럽게 렌트의 준비에 들어갔어요.

6월 중순경부터 상연을 시작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하며 다시금 공포가 확산되기 시작하였죠. 고강도 거리두기가 다시 시행되면 막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뮤지컬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심 또 조심하고 있어요. 관객이나 저희 중에 한 분이라도 감염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에 외부인을 비롯하여 관객과도 접촉을 금하고 있고, 관객용 통로와 배우용 통로를 따로 분리하는 등 방역에 각별히 힘쓰며,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공연에 임하고 있습니다.

뮤지컬과 클래식 피아노, 언뜻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론 쉽게 매치가 안되기도 합니다. 우선은 피아노를 배우게 된 계기부터 질문드릴게요.


저와 비슷한 세대의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텐데, 저희 어릴 때는 피아노를 배우는 게 일종의 통과의례였거든요. 저도 7살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게 되었죠. 하지만 피아노에 커다란 흥미를 느낀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를 그저 묵묵히 수행하는 아이에 가까웠어요. 


그런데 진득하니 앉아서 연습하거나, 어려운 과제를 내주더라도 다른 아이들처럼 쉽게 흥미를 잃지 않는 제 모습에 어떤 재능을 발견하셨나 봐요. 선생님께서는 진지하게 피아노를 전공해보란 말씀을 종종 건네셨어요. 음악가 집안도 아니었고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인해 중학생 때까지도 꾸준히 피아노를 치게 되었고, 그러다 예술고등학교를 지원해서 합격하게 됐어요. 그 뒤로 클래식에 대해 흥미가 깊어졌고 피아노에 대한 애정도 더욱 커지면서 대학 전공으로 까지 이어졌고요. 그 후에도 클래식을 더 깊게 탐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뮤지컬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신 건가요?


뉴욕에서 대학원을 준비하다 한국에 잠시 귀국할 일이 생겼어요. 피아노에 대한 애정 하나로 유학 생활을 버티다가 건강이 안 좋아졌기 때문인데요. 그때 마침 친구에게 뮤지컬 반주를 권유받았어요. 처음에는 그간 해온 연주와는 사뭇 다른 일이라 주저하다가 경험이라도 쌓을 요량으로 수락하게 되었는 데… 우연처럼 다가온 뮤지컬에 너무나 큰 매력을 느껴 유학도 포기하고 완전히 눌러앉게 되었네요.


뮤지컬 음악감독의 업무는 무엇인가요?

하나의 뮤지컬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는데요. 뮤지컬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협업을 요하는 작품이에요. 우선 극작가가 드라마를 구성하면 작곡가가 그 이야기에 걸맞은 분위기의 음악을 작곡합니다. 줄거리와 음악이 완성되면 연출과 음악감독이 투입되는데, 연출가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무대화시킬지 구상하는 일을 맡아요. 그리고 음악감독은 각각의 씬에 걸맞게 음악을 배치하고 그에 따른 편곡과 악기를 구상합니다. 


또 극장의 규모를 고려하여 총 무대 연출을 위해선 어느 정도 규모의 악단이 필요한지를 논의 및 편성합니다. 또한 작곡가와 상의를 거쳐 개별 씬별로 음악을 수정, 보완하고 무대나 배우 교체에 따른 지연 시간을 고려하여 음악을 늘리거나 줄이는 등의 어레인지를 하기도 하고요. 음악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면 안무가가 투입되어 안무를 구상하는 데, 악센트나 포인트의 추가에 따라 안무가와 논의하면서 음악을 계속 수정해나갑니다. 그리고 무대 연습을 하며 세트와 조명을 씬에 맞춰 포커싱 하면 기본적인 작업이 끝나게 됩니다.

그렇게 무대화를 위한 준비를 마치면 음악감독은 배우를 캐스팅하고 훈련에 돌입합니다. 배우와 연습은 6~7주 정도 진행되는데, 바로 이때 제가 뮤지컬에 발을 들이게 된 리허설 피아니스트와 함께 합니다. 이때는 뮤지컬 넘버를 피아노 한 대로 어레인지하여 연주해요. 음악감독은 배우의 노래를 지도하고 노래가 완성된 배우들은 안무감독이 손에 이끌려 안무 연습을 하게 됩니다. 또 작품의 주연급 배우들은 연기 연습을 위해 연출가가 데려가기도 하고요. 3주 차쯤 되면 배우들 스스로 자신의 부족점을 파악하고 적재적소에서 연습을 하게 되고, 음악감독은 이때부터 뮤지컬의 음악을 담당하게 될 악단과의 연습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음악을 맞춰본 뒤, 드디어 배우와 악단이 만나 시츠프로브를 진행하게 됩니다.


배우들은 그동안 피아노 한 대에 의지해서 연기를 하다가 실제 악단이 이루는 하모니를 처음 듣게 되는 것이고, 악단도 그동안 노래 없이 반주만 연습하다 드디어 보컬이 붙으면서 비로소 하나의 넘버가 완성되게 됩니다. 시츠프로브를 통해 파악한 문제들을 보완해나가며 뮤지컬이 상연되기 전까지 계속 연습을 이어나가지요. 그런 과정을 거쳐 여러분들이 객석에서 보시는 뮤지컬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츠프로브 : 뮤지컬이나 오페라 공연 전에 의상 등의 준비 없이 오케스트라와 진행하는 리허설


음악 파트에서 수장을 맡고 계신 만큼 다양한 안목으로 음악을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감독님은 어떤 음악을 선호하시나요?


뮤지컬은 그 소재가 다양하고 하나의 작품에서도 여러 감정이 나오기 때문에 특정 장르의 음악을 선호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같은 장르의 음악이 지나치게 반복되면 관객이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에 다양한 음악을 사용해요. 그러다 보니 특정 장르의 음악을 선호한다기보다 뮤지컬 넘버뿐 아니라 짧은 연주곡이나 분위기를 환기해주는 효과음들까지, 뮤지컬의 드라마에서 노래로 전환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흐름을 유도하는 형태의 음악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또한 음악은 드라마를 바탕으로 하기에 노래를 통해 배우의 심리가 드러날 수 있어야 해요. 대사가 아닌 노래를 선택한 것이 어색하거나 작위적이지 않아야 하고, 배우의 감정이 관객에까지 전달되어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흐름에 빠져들 수 있게 이끌어야 해요.


뮤지컬 음악감독의 고충으론 무엇이 있을까요?


몸이 아파요. (웃음)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몸이 너무 힘들어요. 뮤지컬이 진행되는 내내 초 긴장을 유지하며 집중해서 지휘하다 보니 어깨가 항상 돌덩이예요. 무대를 내려올 땐 완전 파김치가 돼서 거의 기다시피 내려와요. 또 나도 모르는 새에 여기저기 멍이 들기도 하는 등 육체적으로 지칠 때가 많아요.


육체적인 피로 외에는 없는 건가요?


예전에는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기도 했어요. 음악감독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제의가 들어와야 작품에 참여할 수 있거든요. 작품이 없을 때면 더 이상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없나, 이제는 잊힌 것인가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한 작품을 마칠 즈음엔 다음 작품에 대한 걱정과 조바심부터 들었어요. 10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전전긍긍하다 보니 이제는 걱정을 하는 것 자체에 지쳐버려서 그냥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어요. 사서 걱정하는 건 그만두려고요. 마음을 내려놓으니 작품에 더욱 몰두하고 끝까지 집중을 유지할 수 있게 됐어요. 뭐 당장 일이 없더라도 나중에 더 재미난 작품이 들어오지 않겠어요? 호호. 그러면 그때 더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물로 작품에 보답하면 되겠죠.

음악감독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드려요.


대학을 졸업하고 뮤지컬에 입문하고자 하는 친구들에게 문의를 받곤 해요. 많은 친구들이 음악적으로만 접근하려고 생각하는데, 뮤지컬은 드라마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만큼 드라마를 분석하는 시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음악감독으로서 많은 장르의 음악을 공부하고 깊이 있는 이해도와 다양한 해석적 안목은 당연히 갖추어야 할 요소인 것이고요. 


틈틈이 악기도 연습해보셔야 해요. 여러 악기를 직접 다룰 줄 알면 그만큼 오케스트라나 밴드와의 소통이 쉬워지고 편곡적으로도 유리한 점이 많거든요. 하지만 무엇보다 극에 대해 공부하고 각본을 이해해야 돼요. 드라마를 통해 배우의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어 관객에게 전달되는지, 그것을 돕기 위한 음악감독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찰해야 해요. 뮤지컬 음악감독이라면 드라마를 분석하고 그것을 음악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에 대해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


출처: 레전드매거진 2020년 8월호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