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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를 건축한다고?

조회수 2020. 10. 21. 09: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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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겔을 만드는 것은 제작이 아닌 건축입니다.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홍성훈

파이프 오르간은 악기의 제왕이라고도 불린다. 단 한대 만으로도 오케스트라와 같은 연주가 가능할 뿐 아니라 그 크기와 규모 면에서 따라올 악기가 없기 때문이다.
봄비가 내리는 늦은 봄, 파이프 오르간 제작 장인을 만나기 위해, 물안개가 자욱하게 끼인 팔당 댐을 지나 양평에 있는 ‘홍성훈 오르겔바우’ 제작소를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홍 마이스터님.


먼 길을 찾아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르겔 제작자 홍성훈입니다. 반갑습니다.


파이프 오르간을 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사연이 아주 많아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목공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한평생 공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는데… 어쩌다 보니 하게 됐네요? (웃음) 스스로도 이런 직업을 가지게 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어요.


다만 어릴 때부터 문화에 관심이 아주 많았어요. 저는 포크송 열풍을 정면으로 맞은 세대이기도 하고 그 시절 젊은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던 춤과 연기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가지고 있었지요. 예술에 흥미를 느껴 안창호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은 흥사단에서 대금, 장구, 판소리나 경기민요, 봉산탈춤 등을 접하며 한국의 얼을 몸소 체험하기도 했고요. 아니 어쩌면 청춘의 낭만에 젖어 놀기를 좋아하는 청년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마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나 봐요. 서울시립가무단의 단원으로 선발되어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었거든요.

‘오르겔바우’란?

‘Orgel’은 독일어로 파이프 오르간을 뜻하고 ‘bau’는 건축을 의미한다.

그러면 파이프 오르간 제작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선택하신 건 아니었나 보네요.


맞아요. 그저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선택한 결정이었어요. 유학을 선택하긴 했지만 명분이 없으니 기타를 들고 간 것이죠. 사실은 기타를 배우려고나 했을까요? 그런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제가 머물던 곳의 건넛마을에 오르겔 마이스터 한 분이 살고 계셨어요. 다만 그런 악기가 있다는 것도 몰랐고, 직업 과정이 있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기 때문에 독일에 도착해 서도 한동안 방황은 이어졌죠.

유학을 결정하신 것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선택이네요. 대체 1년 사이에 어떤 일을 겪으신 건가요?


같이 유학하던 선배가 제게 항상 하던 말이 있어요. “종교를 바탕으로 형성된 많은 음악들이 클래식을 접한 뒤 크게 발전하였는데, 클래식의 뿌리가 이곳에 있으니, 누군가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여 한국으로 전달해야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는가.” 저는 그럴 때마다 “아이고, 그렇게나 중요한 일이면 형님이 직접 하시던가요.”라며 툴툴거렸는데, 그걸 1년 내내 듣다 보니 세뇌가 됐었나 봐요. 


한국에 필요한 것이 대체 무엇일까, 그것을 내가 가져가야만 하나, 아니 그전에 문화란 건 대체 뭐지? 이런 고민을 했던 거 같아요. 그런 와중에 우연히 오르겔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어째서였을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 뒤론 무언가에 홀린 듯 건넛마을의 마이스터를 찾아가 꾸준히 눈도장을 찍었어요. 


제 뜻이 통하였는지 목공의 기초 과정을 배우고 오면 제자로 받아주겠다 말씀하셨지요. 그때부터 목공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라면 가리지 않고, 손, 발이 부르터가며 닥치는 대로 다 했어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끝에 마이스터에게 인정을 받아 도제 과정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마이스터가 되기까지에는 1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를 들었을 때 한국으로 가져가야 할 소리라고 직감하셨나 봐요. 도제 과정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살면서 허드렛일이라곤 한 번을 안 해본 사람이 뒤치다꺼리부터 하려니 기분이 어땠겠어요.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힘들었죠. 또 잠과 씨름해가며 생소한 독일어를 외우기도 하는 등 처음에는 고생이 많았어요.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일도 점차 숙달되어가니 스승님도 저의 진심을 헤아려주셨죠. 그곳에선 목재를 선별하는 법을 배우고, 도면을 그리며 오르겔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는 등 제작 노하우를 쌓아나갔어요.


그렇게 플라이터(Fleither) 스승님 밑에서 도제 과정을 마친 뒤 오르겔 마이스터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1882년에 창립하여 4 대째 오르겔바우를 운영 중인 오르겔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위대한 마이스터, 요하네스 클라이스 가문의 한스 게어트 클라이스 (Hans Gerd Klais)를 찾아갔지요. 그분 밑에서 긴 시간 인내하며 오르겔에 담겨있는 독일인의 혼을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그안의 제 혼을 담을 수 있을지 부단히 노력했어요. 그런데 당시는 외국인이 마이스터 시험에 응시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클라이스 스승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끝에 간신히 시험을 치를 수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마이스터 자격증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마이스터 자격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지요.


‘국가는 당신이 마이스터가 된 것을 존중합니다.’ ‘당신은 이제 제자를 둘 수 있습니다.’


단 두 개의 문장을 획득하는데 총 12년 반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네요.

현재까지 작업하신 오르간 중에 마이스터님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제가 13번째로 제작한 오르겔 ‘산수화’입니다. 인류는 예로부터 천체의 움직임을 보며 1년을 12달로 구분을 했고, 하루는 두 개의 12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옥타브는 12개의 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가 독일에서 교육받은 기간도 마찬가지로 12년이기도 하지요. 


13은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이전까지는 오르겔에 어떤 소리를 담을지 고민했다면, 산수화부터는 어떤 이야기를 그릴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산수 화’, ‘홍매화’, ‘나비’ 작품에 스토리가 펼쳐지니 자연스레 오르겔에 이름이 붙기 시작하더군요.


산수화의 모티브는 저의 작업실이 위치한 양평의 자연을 바라보며 얻었습니다. 병풍처럼 양평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산등성이. 서울의 식수인 팔당댐의 일렁임이 햇살에 부딪히며 나타나는 보석 같은 반짝임. 그리고 밤이면 어김없이 뻐꾸기 울음이 들릴 정도로 뻐꾸기가 많은 지역이기에 오르겔에 한 마리의 뻐꾸기를 추가하기도 했지요. 매일같이 오르겔 제작을 위해 작업실을 오가며 보아온 풍경을 이야기로 담았습니다. 제작에 긴 시간이 걸렸지요. 


한국적 소리뿐 아니라 한국적 의미를 어떻게 형태로 나타낼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죠. 무수히 많은 스케치를 그리고 지우 기를 반복했습니다. 스케치가 끝났다고 바로 제작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맞습니다. 설치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끝에 지금의 형태가 나왔고 현재는 양평의 국수 교회에 설치되어 있지요.

홍 마이스터님에게 파이프 오르간이란?


음… 애증의 존재가 아닐까요. 이 일을 하는 데 있어 부침이 많아요.

모든 직장인 분들이 그러하겠지만 오르겔을 제작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건 저도 똑같아요. 오르겔의 완성도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최종적으로 설치가 끝난 후에 소리가 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오르겔은 제작 도중에 테스트를 할 수가 없어요.


모든 설치 과정을 마친 후에야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죠. 그러니 그저 상상만으로 파이프의 위치를 고정하고 형태를 그려가며 설계도를 스케치하는 수밖에 없어요.

설계가 끝났으면 직접 제작해야 하죠. 커다란 나무를 재단해서 직접 깎고 붙여가며 필요한 부품을 손수 조립을 해야 합니다. 작은 부품은 가공이 어렵고, 큰 건 운반하는 것만으로도 애를 먹으니 육체적으로도 굉장히 고된 일이죠. 그런 부품이 적게는 2000개에서 많게는 6000여 개에 이릅니다. 


그런 과정 내내 사소한 실수라도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오르겔을 제작하는 최고 책임자로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어요. 또 재정적인 문제도 간과해선 안되죠. 오르겔 한대에 수천에서 수억 원을 호가하지만, 제작 기간 역시 몇 달에서 길게는 4 년 이상 걸리기까지 하는 데다, 함께 일하는 식구들도 생각해야 하니 까요. 모든 작업물이 육체적 고난과 인내 끝에 태어난 산물이고 매번 제작할 때마다 너무 힘에 부쳐 몇 번을 홀로 울곤 해요.

출처: 레전드매거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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